▲ 사진/전두현기자·dhjun@kyeongin.com
10년이상 닫혔던 수원천의 하늘이 드디어 열린다. 수원시는 최근 수원천 지동교~매교(780)구간 복개를 뜯어내고 자연형 하천으로 복원하겠다고 선언했다. 하천을 덮어 도로와 주차장으로 활용하는게 급하던 시대가 있었다. 불과 10여년 전이다. 하천을 자동차에 내준 그 시간동안 수원천은 동맥경화를 앓는 환자처럼 아무리 예쁘게 꾸며도 왠지 서글퍼 보였다. 허리께를 짓누르는 콘크리트 무게를 그렇게 버텨왔다. 다행히 머지않아 수원천의 활짝 웃는 모습을 보게될 것 같다. 그 수원천의 어제와 오늘을 짚어본다.

수원천 지동교~매교 구간이 복개된 것은 지난 94년이다. 복개의 효용성 문제를 떠나서 10년동안 형성돼 왔던 복개구간의 풍경도 이제 곧 옛이야기가 될 것이다. 지금 복개구간에는 누가 살고 있을까. 그리고 어떤 생활 풍경들이 펼쳐지고 있을까. 길을 걸으며 스케치했다.

전체 복개구간은 크게 수원교를 중심으로 상·하부로 나눌 수 있다. 상류쪽인 지동교~수원교(250) 구간은 한마디로 시장통이다. 수원의 대표적인 시장인 영동시장과 지동시장이 좌우측에 나란히 위치해 있고 이를 중심으로 소규모 점포들이 다닥다닥 붙어있다.

수원상권의 중심이었으나 여느 재래시장과 마찬가지로 최근엔 대규모 할인마트의 등장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 그래도 시장통은 늘 활기차다. 복개 구간과

붙은 영동시장은 종묘, 잡화, 문구 등 다양한 점포들이 입점했다. 어느 상인의 말처럼 "없는 것 빼곤 다 있다"고 한다. 맞은편 지동시장엔 해산물 점포들이 멀리 화성 앞바다 갯내음을 실어나른다.

북적대는 상류쪽과는 달리 공구상이 밀집한 수원교~매교(530) 구간은 다소 한산하다. 건설·기계산업이 한창 꽃을 피운 70년부터 자연스럽게 군락을 이룬 이 공구거리는 경기남부지역에서 제법 연장을 만져봤다고 하는 기술자들이라면 한번쯤은 들렀던 곳이다. 일반 공구에서부터 특수 공구에 이르기까지 쇠로 만든 것들 천지다. 대장간, 철공소 등의 간판이 이곳 사람들의 '강인함'을 상징하는 것 같다.

전체 구간의 공통점은 이 일대 상인 대부분이 수원 토박이거나 20년 이상 자리를 지켜온 사람들이라는 것이다. 그만큼 사연도 많은 사람들이다. 수원산업유통상가연합회(구천동 공구상가) 회장을 맡고 있는 박명희 명일종합공구 사장은 "40년정도 이 곳에서 일하면서 참 정도 많이 들었다"면서 "뭔지 몰라도 좀 아쉽기는 하다"고 말했다.

◆"예전엔 이랬다네"
"매다리는 아이들에겐 최고의 놀이터였지. 여름이면 멱감고 겨울이면 썰매타고. 캬! 그 시절 그립네."

20년째 팔달구 구천동 수원천변에서 공구상을 운영하고 있는 유덕준(55) 성일금속 사장은 금세 동심으로 돌아간 표정이다. 유 사장은 "세류초등학교 다닐땐데, 어찌나 물고기가 많던지 그물도 없이 손으로 움켜잡아도 고기를 잡을 정도였다"며 너스레를 떨었다.

특히 매다리에 대한 유 사장의 기억은 애틋했다. 당시 수원시의 인구는 10만명을 갓 넘을 정도로 적었지만 수원천변의 영동시장 일대는 화성, 용인 등을 통틀어 가장 큰 상권을 형성하고 있었다. 영동시장으로 가는 초입이 바로 매다리였다.

그는 "곡반정동이나 권선동 등에서 시금치, 배추 등 농산물을 실은 우마차가 도착해 짐을 부리는 곳이 매다리였다"면서 "짐들은 다시 마차에 실려갔는데 그래서 이곳엔 상시 20여대의 마차가 대기하고 있었고 말 편자 고치는 대장간도 있었다"고 기억을 더듬었다.

유 사장과 비슷한 시기에 유년시절을 보낸 다른 50대들의 기억도 비슷했다.

매교동 천변 가옥에서 태어나 53년째 한번도 자리를 뜨지않고 마을을 지키며 살아온 심원보 원일공구 사장은 "매다리부터 광교풀장까지 걸어다녔지. 그땐 광교풀장이 수원에서 유일했는데 3원정도 했던 것 같다"고 옛추억에 젖어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