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6일 포천 동장군 축제 폐막식에서 사물놀이가 펼쳐지고 있다. /포천시 제공
"8272만 누르세요. 30분안에 달려갑니다."

'중국집 혹은 심부름센터, 아니면 새로나온 대리운전 번호인가?'

예상은 보기좋게 빗나갔다. 동네 전봇대에 붙어 있는 전단지의 현란한 광고문구를 연상시키는 듯한 이 전화번호는 다름아닌 남양주시의 생활불편처리반 번호다. 시민의 '짱가'를 자처한 남양주시의 이 '무모한(?)' 시도는 아주 사소한 몇마디 대화에서 시작됐다.

한 시민이 시청 대표번호로 전화를 걸었다.

"지금 도로변에 나무가 쓰러져 있는데요…."

"네, 어느 부서를 찾으시죠?"

"그러니까 나무 때문에 교통사고가 날수도 있다구요."

시민은 교환과 한참 실랑이를 벌인뒤 겨우 관련 부서인 교통과와 연결됐다.

"지금 도로변에 나무가 쓰러져 있는데요…."

"누굴 찾으시죠?"

"누굴 찾는 게 아니라 나무 때문에 사고가 날 수도 있다구요."

시민은 버럭 화가 치밀었다. 혹여 사고라도 날까봐 벌써 몇분째 전화통을 붙들고 있었는데 상대방은 부서와 업무구분이 우선인가 보다.

"글쎄 누굴 찾는게 아니라…."

하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더 황당했다.

"아, 죄송하지만 지금은 담당자가 자리에 없어서…."

시청에 전화를 해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번쯤은 겪어 본 흔한 상황. 고객의 개인적인 취향까지 파악해 맞춤형 상담을 벌이는 민간기업 측면에서 보면 상상조차 힘든 상황이지만 아직도 행정기관에서는 볼 수 있는 풍경인 것이다.

그랬던 시청이 이렇게 바뀌었다.

"네, 지금 당장 조치하겠습니다. 시민의 전화번호를 알려주시면 조치결과를 알려드리겠습니다."

당연히 시민들의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지난해 9월 출범한 8272반은 시범운영 4개월동안 98%의 만족도를 이끌어냈다. 거창한 청사진으로 시민들을 현혹하기 보다는 아주 작은 변화로 시민의 마음을 얻은 경우다.

공직사회가 푸른 변화의 바람을 타고 있다. 이름하여 블루오션. 고객인 시민을 만족시키기 위해선 상투적인 행정서비스만으로는 어림도 없음을 조금씩 깨우치는 분위기다.

포천시의 동장군축제도 신선한 발상의 전환이다.

시원한 백운계곡과 푸짐한 이동갈비로 유명한 포천시의 고민거리는 여름 한 철 장사 뿐 겨울에는 관광객이 거의 찾지 않아 긴 겨울잠을 자야한다는 것이었다. 수십년간 그러려니 하고 살아왔던 포천시가 3년전 '동장군(冬將軍) '을 아이디어로 승부수를 띄웠다. 진짜 겨울다운 겨울풍경을 보여주겠다는 어찌보면 지극히 상식적인 발상이었다. 추억의 얼음썰매, 송어·산천어 얼음낚시, 계곡 눈썰매, 얼음기둥쇼, 가마솥 동지 팥죽 등 동장군과 찰떡 궁합을 이룬 정겨운 프로그램들은 이렇게 탄생했다.

적막하던 겨울 포천은 동장군 덕분에 연 20만명의 관광객을 추가 유치하고 짭짤한 경제적 수익도 올리게 됐다.

이뿐이랴. 앉아서 기다리지 않고 직접 고객을 찾아 나선 경우도 있다.

경기도문화의 전당은 '모세혈관 문화운동'을 통해 산골마을, 학교 등 문화에 목말라 있는 시민들에게 음악을 배달하고 있다.

또 농촌진흥청에선 간부 공무원들이 자신만의 고객리스트를 관리한다. 직무에 따라 고객은 버섯재배사이기도 하고, 종묘사이기도 하고, 혹은 정부기관이나 언론기관이기도 하다. 보험회사 영업사원을 연상케 할 정도로 많게는 100명까지 욕심을 내는 공무원도 있다고 한다.

경기도 혁신분권과 홍광표 과장은 "이제 철밥통 시대는 갔다"면서 "블루오션과 식스시그마도 더이상 민간기업만의 전유물은 아니다"고 말했다.

▲ 경기필하모닉 리듬앙상블 단원들이 삼성전자 공장에서 근로자들에게 즉석 음악공연을 펼치고 있다. /경기도문화의전당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