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을 뽑았으면 썩은 무라도 잘라야 하는데…이거 영…."

인천 구도심 마지막 노른자위 땅으로 평가받는 부평 삼산 4지구의 부동산 투기를 발본색원 하겠다며 서슬 퍼런 칼을 빼들었던 부평경찰서 체면이 말이 아니다. 뽑았던 칼을 제대로 휘둘러 보지도 못한 채 칼집에 넣을 수도 있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삼산4지구는 부평 삼산택지지구와 부천 상동신도시 사이에 위치한 22만여평 규모로 행정구역은 인천 부평구지만 생활권은 부천 상동신도시권으로 경인고속도로와 서울외곽순환고속도로가 교차하는 서운분기점 인근으로 교통도 편리하다.

또한 개발제한구역에 묶여 있는데다 농경지로 택지를 개발해 분양하면 대박을 터트릴 수 있는 그야말로 '기회의 땅'인 셈이니 민간 개발업자들이 군침을 흘리지 않을 수 없는 곳이기에 과열경쟁이 빚어진 것은 당연한 귀결.

지난해 하반기부터 시간차를 두고 삼산4지구로 불나방처럼 모여든 민간 개발업체는 6곳으로 개발에 필요한 토지 확보 경쟁으로 인해 공시지가의 300%에서 시작된 땅값은 최고 350%까지 치솟았다.

땅값이 치솟는 만큼 업체간 경쟁은 이전투구 양상으로 진행됐고, 그런 와중에 경찰에는 각종 불·탈법 제보가 잇따랐다.

경찰이 칼을 빼든 것은 지난달 중순. 민간 개발업체 가운데 규모가 가장 큰 편인 A사를 전격 압수수색했다.

A사가 토지거래허가구역인 삼산4지구에서 부평구청 허가를 받지 않고 토지거래를 한 혐의가 포착된 것. 현행 국토의 계획 및 이용에 관한 법률은 토지거래허가구역에서 관할관청 허가를 받지 않고 토지거래 계약을 체결하면 2년 이하의 징역 또는 2천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할 수 있다고 규정해 놓고 있다.

경찰은 지난달 15일 A사에 대한 압수수색을 통해 이런 혐의를 입증할 수 있는 수십여건의 매매계약서 등 관련서류를 확보하는데 성공했다.

간단하게 마무리될 것으로 보이던 수사는 그러나 뜻하지 않은 암초를 만났다.

A사가 '토지거래허가를 받을 것을 전제로 체결한 계약의 경우에는 이 처벌조항을 적용할 수 없다'는 취지의 대법원 판례를 들이대면서 경찰의 무리한 법 적용에 강력하게 반발하기 시작한 것이다.

A사는 구청 허가는 받지 않았지만 삼산4지구를 민영 방식으로 개발하기 위한 예약매매로 실제 거래목적이 아닌 만큼 형사처벌 대상은 아니라며 경찰수사의 순수성(?)까지 의심했다. 다른 경쟁업체들도 똑같은 방식으로 계약을 체결하고 있는데 유독 자신들만 수사대상에 오른 것은 형평성에 어긋날 뿐더러 불순한 의도(?)가 있는 것 아니냐는 불만이었다.

급기야 '경찰 고위 간부의 청탁을 받고 수사를 진행하고 있다'는 요지의 진정서까지 부평경찰서 및 인천지방경찰청에 접수시켜 경찰을 당혹케 만들었다.

그러나 경찰이 휘둘릴리는 만무. 우선 A사가 낸 진정서 가운데 삼산4지구에서 활동 중인 나머지 업체들의 불·탈법 관련 내용이 신빙성이 있다는 판단에 따라 추가 압수수색을 준비했다. 형평성 논란도 잠재우고 무엇보다 부동산투기 세력 뒤에 '몸통'이 도사리고 있다는 정황이 감지되면서 경찰의 움직임이 빨라졌다.

삼산4지구 민간 개발업체들은 토지주와의 원활한 접촉을 위해 대부분 전직 공무원 등과 손을 잡고 있는 실정으로 경찰로서는 이전투구 양상을 보이는 업체간 경쟁을 잘만 활용하면 큰 힘 안들이고도 생각지도 않던 '몸통'까지 건져올릴 수 있는 기분좋은 상상이 가능해졌다.

이에따라 지난달말 추가 압수수색 영장을 신청했지만 이번엔 검찰이 두손을 가로저었다.

A사 논리처럼 단순히 허가를 받지 않고 토지거래 계약을 체결했다는 사실만으로는 법원에서 무죄로 판결날 가능성이 있다는 이유에서다. 검찰은 추가 압수수색보다는 수사의 '속도 조절'을 주문한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 관계자는 "삼산4지구와 유사한 사건이 현재 법원에 계류중인 만큼 재판 결과를 지켜본 뒤 형사입건 여부를 결정할 계획이다"며 사실상 수사에서 한 발 물러서 있다는 것을 애써 부인하지 않았다.

상황이 이쯤되자 경찰 주변에서는 '칼을 너무 성급하게 뺀 것 아니냐'는 소리가 터져나오고 있다.

하지만 공영과 민영개발 사이에서 어느 한쪽의 손을 일찍 들어주지 못해 결과적으로 분란을 야기했다는 지적을 받고 있는 부평구청이 경찰 수사로 말미암마 지난달 26일 전격적으로 공영개발의 손을 들어준 것은 경찰의 공로(?)로 인정해 줘야 하는 것 아니냐는 지적도 있다.

그러나 수사가 진행 중인데도 A사는 물론 다른 업체들이 전혀 위축되지 않고 예전처럼 토지주들과 계약을 체결했다는 점에서 구겨진 경찰의 체면과 자존심을 되찾기에는 아직 2% 부족한 감이 없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