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제 황태덕장
가장 많은 이름을 가지고 있는 생선인 명태. 명태를 얼렸다 녹이기를 반복하면서 바람에 건조시킨 황태가 단연 겨울의 주인공이다. 육질이 누른빛을 띠기 때문에 황태라는 이름이 붙은 수천 수백의 주인공들이 덕장에 펼쳐진 풍경을 만나러 직접 인제로 떠나보자.

12월부터 진부령 일대는 수백, 수천 마리의 명태가 도열한 채 햇볕과 바람의 사열을 받는 진풍경을 연출한다. 특히 설악산 일대에서 생산되는 황태는 오염되지 않은 공기와 햇빛, 설악산의 청정 바람까지 골고루 몸에 받아 보약이나 마찬가지 음식이 된다. 황태는 기름기가 없어 담백하고 고소한 맛을 내기 때문에 누구나 부담 없이 먹을 수 있다.

▲ 용대리 황태매장
인제군 용대리는 황태덕장으로 유명하다. 6·25 전쟁 이후 이곳에 터를 잡은 사람들은 농사를 시작했지만 결과가 나빴다. 바람이 매섭고 기온이 낮아 농작물이 잘 자라지 못했기 때문이다.

결국 고성, 속초 등지에서 명태를 잡거나 들여와 바람에 말렸다. 차가운 바람은 명태 말리기에 제격이었다. 황태는 한겨울에 명태를 얼렸다 녹였다를 반복하며 45일 정도 말린 것이다.

용대리 황태는 구수한 맛이 진해 인기를 얻었다. 1960년대부터 덕장이 하나씩 생기기 시작했고 지금은 그 수가 20여 개에 달한다. 덕장에서는 매년 국내 생산량의 70%인 1천600만 마리의 황태가 생산된다.

44번 국도를 타고 미시령으로 향하다 보면 길옆으로 빼곡하게 늘어선 황태덕장이 시선을 사로잡는다. 눈이 오면 풍경이 더욱 볼 만하다. 하얗게 변한 내설악, 그와 어우러진 눈이 수북하게 쌓인 고랑대(황태를 거는 가로 나무 막대)가 장관을 이룬다. 그 모습을 구경하기 위해 일부러 덕장을 찾는 이들도 많다. 덕장에는 황태가 지천이다. 큰놈은 30㎝가 훌쩍 넘는다. 작은놈은 20㎝ 안팎이다. 모두 지난해 12월에 넌 것이다. 눈알이 무시무시하지만 몸통은 누렇게, 맛있게 말랐다. 바짝 마르지 않고 살이 통통하게 오른 것이 먹음직스럽다. 사실 여기 걸린 명태는 모두 러시아에서 들여온 것이다.

황태 한 마리는 서른세 번의 손길이 만들어낸다. 이제 곧 '수확'이다. 작은놈은 2월 중순부터, 큰놈은 3월 초부터 걷는다. 옛날에는 일하다가 허기가 지면 황태 몇 마리를 즉석에서 구워 먹었다. 하지만 요즘은 라면 같은 새참이 그 자리를 대신한다.

"정말 맛있었어요. 여기 봐요. 쭈글쭈글한 거 말고 몸매가 미끈한 게 맛이 좋아요."

확한 황태는 창고에 저장해 두고 이듬해 3월까지 판매한다. 수확이 끝나도 작업은 계속된다. 4월부터 신태를 숙성시킨다. 그래야 비린내가 없어진다. 지난 겨울 미처 널지 못한 냉동태도 손본다. 금방 꺼내 널 수 있도록 두 마리씩 줄에 끼우고 급랭하는 작업을 11월까지 계속한다. 그러니 덕장은 1년 내내 부산스러울 수밖에 없다. 황태 한 마리를 내기 위해서 서른세 번의 손길이 가야 한다는 말이 실감 난다. 용대리의 실한 황태는 그렇게 태어난다.

하늘이 내린 땅에서 자연의 입김 같은 바람을 맞고, 사람의 끊임없는 손길을 받으면서 말이다. 황태는 주로 국, 구이, 찜으로 먹는데 황태국은 숙취 해소에 좋고 찜이나 구이는 입맛 없을 때 제격이다. 덕장이나 마을 근처의 가게에서 황태를 구입할 수 있는데 값은 크기에 따라 1만~4만원이다.

황태덕장을 찾으면 눈 덮인 백담계곡과 백담사 구경도 덤으로 할 수 있다. 용대리를 벗어나 44번 국도를 타고 남쪽으로 내려오면 백담사 입구에 닿는다. 매표소에서 백담사까지 거리는 6.5㎞. 백담계곡을 따라 넉넉잡아 두 시간을 걸어야 한다. 3월부터 11월까지는 버스가 운행되지만 겨울에는 중단된다. 내설악 대부분의 물줄기가 모이는 백담계곡은 폭이 넓고 바위가 많아 언제 보아도 웅장하다. 특히 하얗게 눈이 덮인 모양새는 장관이다. 겹겹이 자리를 잡은 내설악의 고봉 사이로 계곡이 끝없이 이어진다.

백담사 입구 근처에 만해마을이 있다. 만해 한용운을 기리기 위해 조성한 테마 마을이다. 한용운과 관련된 자료를 전시하는 박물관이 있고 발우공양 등을 체험하는 프로그램도 운영된다. 식사와 숙박까지 가능하기 때문에 백담사, 황태 덕장과 연계해서 여행 계획을 세워도 좋다. 문인의 집필 공간으로도 이용되는 만큼 분위기가 조용해 휴식을 취하기에 적당한 곳이다.

▲ 간성 대진항 일출
여행 tip/

■ 황태축제

동해안 고성 인근에서 잡은 명태를 겨우내 덕장에서 얼리고 말리기를 반복한 뒤 매년 3~4월에 황금빛 황태로 만들어 판매한다. 하지만 고성 앞바다에서 명태가 잡히지 않아 대부분 러시아산 명태를 말린다. 황태를 말리는 데 적당한 온도는 영하 7~8℃. 그 온도가 2주간 지속돼야 한다.

황태축제는 3월1일부터 4일까지 용대리 삼거리 일대에서 열린다. 하지만 황태덕장을 보려면 2월 중순경이 좋다. 눈 덮인 덕장이 운치 있다. 축제 기간 동안 황태요리 시식회, 말린 명태를 싸리로 20마리씩 꿰는 관태대회, 황태 탑 쌓기 대회 등 다양한 이벤트가 열린다. 사물놀이 공연, 노래자랑 등 각종 공연도 펼쳐진다. 문의:용대리 마을 회관(033-462-4808)



여행수첩/
■ 문의=산골황태덕장(033-462-9361), 설악산국립공원 백담사분소(033-462-2554)

■ 가는 길=팔당대교를 타고 6번 국도를 타고가다 양평을 지나 44번 국도를 타고 홍천, 인제를 지난다. 한계리 민예단지 삼거리에서 미시령 쪽으로 좌회전해 용대삼거리로 향한다. 만해마을, 백담사 입구, 황태마을이 차례로 나온다.

■ 맛집=송희식당(033-462-7522)은 황태뼈를 우려낸 국물에 황태를 넣고 끓인 황태국, 양념을 한 황태구이가 맛있다. 황태정식을 시키면 두 가지 다 맛볼 수 있다. 특히 밑반찬으로 제공되는 10여 종류의 산채도 맛있다. 이곳 사장이 직접 산에서 캔 것이다. 만해마을에 거주하는 문인들이 즐겨 찾는 곳으로 유명하다. 황태정식 7천원, 황태찜 3만원. 진부령 입구의 부흥식당(033-681-3006)도 황태 단골들이 자주 찾는 황태 맛집이다.

■ 잠자리=만해마을(033-462-2303)은 단아하게 꾸민 실내와 조용한 주변 분위기가 장점. 5만~7만원(만해박물관 입장료 700~2천원). 인제읍 초입에 있는 산성장여관(033-461-1651)도 가격에 비해 깨끗하다. 3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