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 지역 주민들이 보릿대로 맥고모자를 만드는 것을 부업으로 삼고 있더라고요. 우연히 보릿짚을 쌓아둔 곳에서 쉬게 됐는데, 비·눈·바람을 맞은 보리짚이 썩지도 않고 찬란한 빛깔을 유지하는 것을 보고 이것으로 그림을 만들어 보면 어떨까하고 생각하게 됐습니다."
"보릿줄기에서 황금빛을 발견했죠. 화려하면서도 구수한 멋을 지닌 것이 맥간공예의 특징입니다."
보릿대의 변신은 무죄. 농촌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작물을 황금빛 공예품으로 변신시킨 주인공은 바로 맥간공예가 이상수(49·사진)씨다.
이씨가 20대 초반에 우연히 마주친 보리줄기를 맥간공예로 창안해 냈으니 벌써 30년 가까이 보리와 함께 살았다. 그가 맥간공예 기법을 고안한 것은 1977년. 어릴 적부터 그림 그리는 것을 좋아한 이씨가 까만 비단에 순금으로 그림을 그리는 기법인 '금탱화'를 본격적으로 배우기 위해 경북의 동문사로 들어가면서부터다.
그는 마을에서 보리짚을 염색해 맥고모자와 베갯머리 장식을 하는 것을 보고 본격적으로 맥간공예에 대해 연구하기 시작했다. 잠자는 시간을 쪼개 기법연구에만 3년 넘는 시간을 투자했고 1983년 첫 실용신안을 따냈다. 이어 보릿대 잇기, 장식판 제조용 무늬지를 만드는 도안 등 특허 5개를 10년간격으로 1~2개씩 더 등록했다.
"지금 보면 아무것도 아닌 것 같아 보이지만 그야말로 '콜럼버스의 달걀'의 논리가 아닐까요. 굳이 특허를 냈던 것은 사람들이 무분별하게 맥간공예를 이용해 상품화시킬까봐 염려됐기 때문이었습니다. 대량생산하게 되면 아무래도 질적으로 가치가 떨어지게 되고 그러다보면 맥간공예의 이미지도 고급화와 멀어지게 되는 것은 자명했기 때문이죠."
그래서 그는 서둘러 맥간공예 기법을 상품화시켜 돈을 버는 것보다, 철저히 전문 공예가의 길을 걸었다. 1986년 전업 공예가의 길로 들어선 이래 수원 남문사거리 '선화랑'에서 첫 개인전을 열어 수집가들의 입소문을 얻었고, 이어 서울 출판문화회관 전시장과 88년 부산 KBS사옥 개관기념 초대전까지 쉬지않고 맥간공예를 일반인들에게 선보이는 데 공을 들였다.
전국 각지로 맥간공예의 아름다움이 널리 퍼지는 것이 가장 행복한 일이라고 하지만, 순수 예술로 남겨두기에는 아깝다는 주위의 다그침에 이씨도 미래에 대해 요즘 고민하는 중이라고 했다. 경영능력이 있는 문하생이 있으면, 상품화도 맡길 생각이라고 하지만 그는 국내보다 해외로 눈을 돌리는 모습이다. "중국, 일본, 궁극적으로 이탈리아와 프랑스로 진출하는 게 목표입니다. 그들의 수작업방식과 자신들의 브랜드를 걸고 만드는 장인정신에 우리 맥간공예가 만나면 얼마나 좋을까요."
사진/임열수기자·pplys@kyeongi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