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선 하얀거탑의 가장 큰 미덕은 현실을 실제보다 더 현실적으로 그린 리얼리티에 있다. 탄탄한 원작 탓도 있지만 주차장에서 현찰이 든 사과상자가 오가고 돈다발이 든 케이크상자를 주고 받는 모습은 우리가 하루도 빠짐없이 보고 있는 바로 그 뉴스들과 전혀 다르지 않다. 실제로 선거때마다 빠짐없이 등장하는 공천비리며 X파일 사태로 대표되는 재벌들의 불법 정치자금 문제는 지난 수십년을 관통해 여전히 우리 사회속에서 진행중인 현안이다.
자기 학교 출신을 밀어주기 위해 동문끼리 뭉치는 것은 직장인 열이면 열 모두 실감하는 사실이고 다른 과 의사들에게 지원사격을 요청하면서 '기브앤테이크'식으로 연구비 지원이나 병원내 요직을 제안하는 모습들 역시 정도의 차이가 있을뿐 사회생활에서 쉽게 접할 수 있는 부분이다.
회사원 이모(33)씨는 "직장생활하면서 주위에 아쉬운 소리 할 때가 얼마나 많냐"면서 "그럴때마다 시쳇말로 '맨 입에 되는 것이 어디 있냐'는 말을 뼈저리게 느낀다. 하얀거탑은 이런 현실을 생생하게 그려서 재밌다"고 말했다.
장준혁이 새 외과과장이 된뒤 전임 과장을 따르던 부교수가 결국 장준혁에게 '백기투항'하는 것 또한 직장인들이 농담처럼 내뱉던 '너, 누구랑 더 오래 생활하냐?'는 표현이 그대로 들어맞는 셈이다.
그래서일까? 일반적으로 시청자들은 당연히 선을 상징하는 최도영을 지지해야 하지만 장준혁에 대한 지지내지 공감을 나타내는 경우가 많다. 기대하기 힘든 이상보다는 고개를 끄덕이게 하는 현실이 훨씬 가깝게 느껴지기 때문이다.
참! 일부 여성 시청자 가운데는 하얀거탑에 자주 등장하는 일식집(주로 장준혁측 인물들이 만나는 곳) 장면과 장준혁의 애인 강희재가 운영하는 카페, 룸살롱 장면을 지켜보면 불편하다고 호소한다.
주부 박모(30)씨는 "사장이 같이 자리에 앉아서 술 마시고 얘기하는 카페는 난생 처음 봤다"며 "주위에 물어보니 그런 곳이 많다는 얘기를 듣고 깜짝 놀랐다"고 말했다. 박씨는 "만나서 얘기하는데 꼭 룸살롱 같은데서 해야하는 것인지 이해가 안된다"며 "너무 남자들 중심의 장면이 많아 가끔 보기가 불편할때가 있다"고 덧붙였다.
재밌는 것은 '병원을 무대로 한 정치드라마'를 지향하는 의학드라마다보니 의사들의 평가도 긍정적인 것보다는 부정적인 것이 많다는 점이다.
그야말로 정치판에서나 있을 사건들을 직접적으로 대입하다보니 의료계 현실을 왜곡시키거나 과장한다는 주장이다. 외과과장 선거에 그야말로 목숨을 건 사람들처럼 양측이 싸우는 것이나 외과의사들이 마치 조폭처럼 명령하고 복종하는 것 또한 과장됐다는 것이다.
경기도내 한 대학병원 레지던트(31)는 "사람 사는 곳이면 다 비슷한 것 아니겠냐"며 "문제는 병원을 무대로 하다보니 병원에서는 그같은 일들이 더욱 심각한 것처럼 오해할수 있다는 것"이라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