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가 보이는 언덕에서 봄을 만난다. 몇 해 전 거제도에 온 적이 있다. 섬의 첫인상이 깨끗했던 기억이 난다. 그리고 몇 년이 지나 다시 찾은 거제도. 추위를 피해 따뜻한 남쪽나라에 온 것처럼 마음이 푸근하다. 드라이브 음악에 어울리는 CD와 동백꽃이 이번 여행의 동행이다. 이른 봄에 거제를 찾는 여행객이 많지 않다. 눈부시게 파란 바다 풍경에 마음까지 깨끗해지는 기분이다. 사람도 첫인상이 좋으면 기억에 남는 법인데 여행지도 그렇다. 그래서 마음이 편해지는 여행지는 다시 찾아도 기분이 좋다. 거제도가 꼭 그런 곳이다.
지난해 통영까지 개통된 대전~통영간 고속도로를 따라 달려온 4시간30분 정도가 그리 멀지 않게 느껴진다. 섬이라고는 하지만 거제대교를 넘어서면 고층건물이 운집한 시가지가 먼저 나타나기 때문에 섬이라는 사실이 실감나지 않는다. 하지만 장승포를 지나면서 만나는 해안도로를 달리다 보면 어느덧 푸른 바다가 눈앞에 펼쳐진다. 입춘이 지나자 바닷바람이 따스하게 거제도를 감싼다. 오래된 팝송에 귀를 적셔도 좋고 차창을 열고 따뜻한 봄내음을 즐겨도 좋다. 봄이면 거제의 바다와 동백이 절묘한 조화를 이룬다. 거제대교를 건너 거제도에 들어서면 도로에 가로수처럼 늘어선 동백이 여행객을 반긴다. 거제도에서도 장승포에서 20㎞ 정도 떨어진 학동마을의 동백 숲(천연기념물 제233호)과 해금강의 울창한 동백 숲이 화려하다.
학동 동백 숲은 예로부터 유명한 동백 서식지였다. 하지만 나라에서 큰일을 당해 이곳으로 유배 온 사람들이 동백꽃을 마뜩찮게 생각해 많이 뽑아냈다고 한다. 화려하게 피었다가 어느 날 갑자기 목이 잘리듯 떨어지는 꽃송이가 서글픈 느낌을 준다는 게 이유였다. 하지만 다시 거제도 곳곳의 동백꽃이 화사해지고 있다. 거제시에서 아름다운 숲으로 지정하고 동백나무를 꾸준히 심고 가꾼 덕이다.
해금강 입구에서 만난 동백도 인상적이다. 해금강호텔 앞의 동백 숲에 만개한 동백꽃이 많다. 여행객들도 해금강으로 내려서다 동백꽃과 동박새를 보며 화사하게 미소를 짓는다.
거제의 동백 여행은 학동 동백 숲에서 출발해 해금강을 거쳐 여차해변으로 가는 길이 편하다. 이 길은 에메랄드빛 바다를 곁에 두고 이어진다. 화사한 햇살을 받으며 드라이브를 즐기다가 바다가 보이는 언덕이 나오면 차를 멈추면 된다. 파란 바다를 바라보며 치마폭을 들썩이는 봄바람처럼 붉은 사랑을 품어본다. 해안도로를 따라 달리는 자동차의 질주가 경쾌해 보인다.
거제도에서 바다 구경에 슬슬 질렸다면 거제 자연휴양림에 들러보는 것도 좋다. 녹음이 우거진 길을 산책하며 신선한 음이온을 마음껏 마시고, 숲 속 산장에서 1박을 하며 쉬어 갈 수도 있다(사전 예약 필수). 산장 외에도 휴양림 안에는 등산로와 산책로, 야영장 등의 편의시설이 완비되어 있어 가족끼리 편하게 쉬어갈 수 있다. 산 정상의 전망대에서는 거제도 전경과 한려해상의 작은 섬들이 한눈에 들어오며, 날씨가 맑은 날은 멀리 현해탄과 대마도도 구경할 수 있다.
여행수첩/
■ 가는 길=대전~통영간 고속도로를 이용해 동통영IC로 빠져 나와 거제대교를 넘은 뒤 14번 국도를 달린다. 4차로로 확장된 14번 국도가 장승포까지 이어진다. 장승포에서 해안도로를 타고 20㎞ 정도 달리면 학동삼거리. 식당과 호텔이 몰려 있는 삼거리에서 1㎞ 정도 더 가면 동백 숲이 양쪽으로 펼쳐진다. 해금강의 동백 숲도 아름답다.
■ 볼거리=포로수용소(055-639-8125):한국전쟁 당시 인민군과 중공군 포로를 수용하기 위해 실제로 만들었던 포로수용소다. 포로수용소 유적공원에서는 잔존유적지와 막사촌, 사진 등 관련 자료를 구경할 수 있다. 탱크 전시장과 포로들이 걸었던 다리를 지나면 막사촌이 나오는데, 포로들이 수감되어 있던 현장을 그대로 복원해놓아 보는 이들의 가슴을 뭉클하게 만든다. 입장료는 어른 3천원, 청소년 2천원, 어린이 1천원.
■ 잠자리=학동 몽돌해수욕장 주변에 숙박업소가 몰려 있다. 그중 객실에서 바다가 보이고 최신식 시설을 갖춘 하와이콘도비치호텔(055-635-7114)이 좋다. 해금강호텔(055-632-1100)도 객실에서 바다가 보이고 호텔 앞에 동백 숲이 펼쳐진다. 숙박요금은 7만~9만원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