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경원선 전철과 신탄리역. "북으로 더 못 가고 그렁거리던 통일로 열차가 잡목숲 산을 돌아 남으로 간다…." 시인 김경문이 그러듯 오늘도 경원선 전철은 신탄리역에 뭇 행인들을 내려놓곤 이내 남쪽을 향해 역을 빠져나갔다. 봄볕을 받은 전신주과 빨간 신호등 불빛이 유난히도 강하게 카메라에 와 닿는다. 사진/조형기전문위원·hyungphoto@naver.com
▲ 금강산 가는 길 또는 상품유통로 등으로만 알려졌던 삼방로는 분단의 현실아래 동두천시 보산동관광특구라는 밝지못한 한장소를 걸치게 됐다.
   66. 삼방로 > 5 < - 빛도 그늘도 역사려니…

   ■ 동두천의 그늘과 기억들

   삼방로는 도봉산과 수락산 사이를 빠져 의정부와 동두천을 지난다. 이 길 주변의 도봉산이나 수락산도 시심을 꽤 자극했지만, '의정부'와 '동두천'은 현대사의 그늘을 환기하며 또 다른 시심을 불러냈다.

   그래서 시편은 대부분 어둡고 아픈 기억들이 주조를 이룬다. '양공주'부터 '부대찌개'까지 만들어낸 이곳의 사연이 시인이나 독자의 마음에 우리 자신의 현주소를 상기시키는 것이다.

   그렇듯 빛도 그늘도 모두 이 땅의 역사려니, 삼방로 역시 많은 일을 제 안에 쟁인 채 오늘을 살아간다. 그것을 외면하지 않는 게 또한 문학의 소임일 터, 도처에 널려 있는 상처나 옹이를 비추고 쓰다듬는 시편들이 있다.

   배밭길 질러 철뚝을 건너가 미군 부대에서 흘러나온 깡맥주와 소주를 섞어 마시고…

   아직 우리들을 굳게 만드는 이 막막한 어둠말고 무엇을

   우리들이 욕할 수 있을까

   어둠조차 우리들이 벌 줄 수 있었던가

   눈물일까 눈물일까 정이월 찬비 속으로

   쓰러지지 못해 또다시 떠나는 우리들의 비겁함 외에는

   무엇이 더 오래 남아 젖을지 정작 또 모르면서 <김명인의 동두천>

   첫 시집 제목을 '동두천'으로 할 만큼, 김명인 시인은 한때 '동두천'의 현실에서 시를 길어내곤 했다. 그곳에서 교편을 잡았던 경험으로 '미운 오리새끼' 같은 혼혈 아이들이나 부모들의 아픔을 깊숙이 들여다본 것이다. 이에 따라 '동두천'은 특별한 지명으로 시사에 기록되는 한편, 시인에게도 초기의 주요 작품으로 남게 된다.

   ■ 녹슨 철마가 달리는 환청, 신탄리역

 
 
 
  ▲ 전곡읍 한탄강대교 입구에 있는 38선 기념비.  
 
   신탄리역은 감회가 각별할 수밖에 없는 곳이다. 이 역을 찾은 사람들은 다 민족이며 나라에 대한 생각을 새삼 새겨보곤 했을 것이다. 역에 걸어놓은 이곳 시인들의 소망이 방문객의 절실한 심중을 대변한다. 고광수의 '고대산', 이돈희의 '신탄리' 등과 같이 걸려 있는 다음 시가 가슴에 묵직하게 얹힌다.

   북으로 더 못 가고

   그렁거리던 통일로 열차가

   잡목숲 산을 돌아 남으로 간다 <김경문의 북으로 가는길 중>

   경원선은 신탄리역에서 멎은 채 북쪽을 바라보고 있다. 철도 중단점 표지판이 경원선의 최북단역임을 쓸쓸히 밝힌다. 신탄리~원산이 131.7㎞(용산~신탄리 88.8㎞)라니, 북녘을 달린다면 저 기차의 질주가 얼마나 장쾌할 것인가. 그런 열망을 담은 낙서들이 끊긴 철로에 아직도 선명하다. 통일을 목 놓아 불렀을 그들의 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 연천역 급수탑. 1914년 경원선 개통때 세워진 것으로 6·25전쟁 당시 총탄자국이 선명하게 남아있어 민족비극의 상흔을 보여주고 있다. 2003년 1월 등록문화재로 지정되었다.  
 
■ 연천의 오래된 풍경과 현실


   연천은 한탄강을 끼고 있다. 그런데 한탄강은 이름 탓인지 '한'이 꼭 겹쳐서 다가온다(한자가 다르건만). 남북 분계선에 가까이 있기 때문에 더 그럴까. 아무튼 답사 길은 무심한 풍경들에도 현실을 자주 겹쳐놓고 보게 한다. 그게 당연한 것은 상처를 겨우 봉합하고 있는 이 땅의 기억들 때문인 것 같다.

   연천 출신 문인은 많지 않는 편이다. 이곳 출신 시인을 보면 '남으로 창을 내겠소'의 김상용과 1930년대에 시조를 쓴 여성시인 김오남, 그리고 현재 월간 '현대시' 주간을 맡고 있는 원구식 시인이 있다. 원구식 시인은 자신의 탯줄인 이 곳의 기억을 육화한 시편들로 연천이며 한탄강 같은 지명을 시사에 등재한다.

   머리 속엔 온통 익명으로 존재하는 경원선뿐이었다.

   나는 지금도 낡은 경원선처럼 덜거덕거린다.

   그럴 때마다 내가 본능적으로 몰입하는 연천엔 묻어버리고 싶은 과거가 아직도 살아 있다.

   영원히 간직하고 싶었던 특별한 밤을 버리고 도망치듯 떠났던 눈물의 정거장이

   희미한 가로등 아래 눈을 뜨고 있다. <원구식의 연천 가는 길 중>

   시인은 연천이 싫다고 떠났지만 그곳의 기억마저 버릴 수는 없었다. 누구나 그렇듯 고향을 떠나봐야 그 낡고 초라한 것들조차 그리워지면서 그곳 그때의 힘으로 살아가는 게 아닌지 돌아보는 것이다. 시인도 '낡은 경원선처럼 덜거덕'거리는 지금, 오롯이 그리는 게 다름 아닌 '눈물의 정거장'이라고 되뇐다. '괴롭게 몸을 뒤척이는 새벽, 졸음에 겨운 눈을 떴을 때,' 문득 바라본 '아버지 빈 물대접에 말없이 고이는 한탄강의 슬픈 물('거머리-한탄강·2')'은 그래서 아버지와 한탄강의 역사를 은유하는 울림으로 남는다.

   길에서 늘 마주치는 구호가 연천에서도 보인다. 한탄강댐 수몰예정지구인 연천군 고문2리 주민들이 댐건설을 반대하는 구호들이다. 댐의 필요성과 생존의 요구가 맞물려 구호는 어디서나 과격하다. 그것도 개발에 따른 이해의 부딪침 속에 나아가는 삶의 한 길이다.

   삼방로 답사에서 일행은 생각지도 않았던 '역고드름'을 만났다. 역고드름을 보고 '역발상'에 대한 생각을 굴리며 눈 녹는 오후의 산모롱이 길을 한참이나 걸었다. 길을 따라 개천에는 키를 넘는 마른 갈대가 아름답게 펼쳐진다. 마침 뉘엿한 풍경이 감미로운 쓸쓸함 같은 것을 풍기는 저녁으로 접어들 무렵이었다.

 
 
 
  ▲ 연천고대산 입구. 고대산은 휴전선과 가장 가까운 산행지로 수려한 전망으로 수도권 등 산애호가들이 즐겨 찾는 연천군의 명산이다.  
 
 
 
 
  ▲ 연천군 고문리에 내걸린 한탄강댐건설반대 현수막.  
 















   ■ 빈 들녘에 지펴지는 봄기운

   돌아오는 길에 연천 출신인 남구만의 시조 한 수가 떠오른다. 이 작품도 유교적 이념이나 당위를 앞세운 사대부의 여느 시조처럼 교훈조를 띠고 있다. 그러나 한두 번 읽으면 그대로 입에 붙는 율격이나 형식미가 시조의 가락과 맛을 잘 살린다.

   동창이 밝았느냐 노고지리 우지진다. 소 칠 아이는 여태 아니 일었느냐

   재 너머 사래 긴 밭을 언제 갈려 하느니

   봄이면 한번쯤 떠올리는 이 시조는 자연의 시각에 맞춰 산 농경시대의 생활상을 여실히 보여준다. 자연이 변함없는 시계요 절기를 알려주는 달력이던 시절은 이제 갔다. 비닐하우스 덕에 한겨울에도 신선한 딸기를 먹을 만큼 제철이 없어진 것이다. 그 덕에 사람들이 점점 더 철없어진다는 농담이 갈수록 실감이 난다. 비닐하우스가 별로 없는 연천은 그래도 예스러운 시골 풍경이 남아 있다. 그러나 이 곳에도 '사래 긴 밭'을 가는 쟁기는 이제 없을 듯하다.

   어느덧 다시 봄이다. 삼방로도 양 옆의 들판에 봄기운을 곧 지필 것이다. 그 속에서 한탄강은 댐 문제를 안은 채 흘러가고, 남은 사람들은 다시 씨앗을 뿌리리라. 그리고 종달새는 또 뭐라뭐라 지껄이며 봄하늘을 차고 오를 것이다. 그런데 오염이 적은 이곳에는 제비가 혹 와서 더불어 노래하려나.

   /정수자 시인·아주대 인문과학연구소 전임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