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캠퍼스는 풋풋한 신입생들이 입학하면서 생동감이 넘치고 있다. 이에 각 동아리들은 새내기들을 잡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장기적인 불황과 청년 실업자의 급증으로 요즘 새내기들은 취업에 도움이 되는 동아리에 몰리고 있다. 현실에 연연하지 않고 개성과 대학생의 특권인 젊음을 잘 발산할 수 있는 동아리가 줄어들고 있다. 경인일보에서는 시대별로 어떤 동아리들이 학생들의 관심을 끌어왔는지 짚어보는 시간을 마련했다. <편집자주>

전쟁후 미국문화 알게되며 팝송 인기
대학 재즈페스티벌로 '밴드결성' 붐

▲ 1960년대 동아리

60년대는 전쟁의 상처에서 벗어난 젊은이들이 팝송에 열광하는 시기였다. 대학생들은 팝송을 들으며 미국 문화를 느꼈다. 당시 팝송은 대부분이 밴드활동을 하면서 나오는 노래가 많았다. 이런 영향인지 대학가는 밴드를 하는 음악동아리가 큰 인기를 끌었다.

이때 파이프 라인, 상하이 트위스트 등으로 유명한 미국 출신의 벤처스와 비치 보이스, 폴 앵카의 '다이아나', 닐 세다카의 '오 캐롤' 등 록과 컨트리가 섞인 경쾌한 춤곡이 유행했다.

팝송의 큰 인기속에 한국 팝송사에 한 획을 긋는 제1회 대학 재즈페스티벌을 연다고 중앙일보가 전국에 공모 기사를 내보냈었다.

전국에서 예선을 거친 15개 보컬팀과 12개 밴드가 기량을 겨뤘고 동양TV로 녹화방송됐다. 이는 슬금슬금 불기 시작한 대학가 팝송 문화와 방송사가 공유하는 문화를 선보인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혹자들은 이것이 대학가요제의 시발점이라 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연세대 철학과 64학번인 신태호(65)씨는 "당시에는 지금 대학생들처럼 여가 활동을 즐길만한 곳이 없었다"며 "그때는 친한 친구들끼리 밴드 동아리에 가입해 나름대로 멋스럽게 음악을 연주하곤 했다"고 밝혔다.

그는 여학생들에게 인기를 끌기 위해서는 기타 정도는 할 줄 알아야 했다며, 그 당시 대학생이라면 누구나 악기 하나 정도는 할 수 있었다고 밝혔다.

60년대 대학가에는 여학생들이 그리 많지않아 여학생들이 캠퍼스를 활보하면 그 존재 자체로 큰 인기를 끌었다. 여학생들은 당시 집안 일을 중시하는 사회적 분위기때문에 '가사동아리' 등에 큰 관심을 보였다.

군사정권 대항하는 '비밀토론회' 등장
맥주·청바지 문화따라 쌍쌍파티 유행

▲ 1970년대 동아리

5·16군사혁명에서 긴급조치로 이어지는 60·70년대 대학가는 숨막히도록 답답한 질식의 시대였다. 군사 정권의 서슬이 시퍼렇던 당시, 이른바 겨울공화국·긴급조치 세대들은 대학안에서도 자유로운 목소리를 낼 수 없었다. 때문에 정권의 감시를 피해 삼삼오오 모여 시국토론회를 갖고 삐라(전단)를 뿌리는 등의 비밀스러운 동아리들이 대학가에 등장했다. 암울했던 시대에 대학생들은 조심스럽게 모여 현실에 대한 울분을 토로했다.

이 시대 대학가는 부조리한 사회 현실을 외면할 수 없는 '지성인'으로서 대학생들의 고민도 깊었던 시기다. 하지만 이때 태동한 대항문화·청년문화는 80년대로 접어들면서 구체화, 대학가 민주화 운동의 불씨가 됐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그러나 모든 동아리가 우울하고 암울했던 것은 아니었다.

70년대는 통기타·맥주·청바지 문화가 발전하면서 포크 음악이 대학가 동아리로 큰 인기를 끌었다. 대학에 입학한 신입생들은 당시 선배들의 큰 영향을 받아 윤형주, 양희은, 조영남 같은 가수들의 노래를 들으며 대학 생활의 추억을 만들었다.

70년대는 또 이른바 '쌍쌍파티'가 유행하면서 파격적으로 춤 동아리가 인기를 끌었다.

당시 고려대에는 많은 학생들이 춤 동아리에 가입할 정도로 인기를 끌었다. 강당이나 운동장 등 넓은 장소에서 대학생들이 쌍쌍으로 춤을 췄는데 여자 친구가 없는 남학생들은 쌍쌍파티 시즌이 돌아오면 파트너를 찾기 위해 미팅 등 모든 것을 동원하는 진풍경도 자주 벌어졌다.

윤준호(고려대·75학번)씨는 "당시에는 파격적으로 춤 동아리가 인기를 끌었지만, 역시 시대가 시대인만큼 독재 정권에 저항하는 소위 어둠의 동아리가 학생들에게 크게 반향을 일으켰다"고 말했다.

헤비메탈 영향 '대학가요제' 활성화
연극·탈춤 이용 뼈있는 정치풍자도

▲ 1980년대 동아리

80년대는 대학가에 헤비메탈과 로큰롤 음악이 크게 유행하면서 헤비메탈 동아리를 중심으로 인기를 끌었다. 또한 70년대부터 이어져온 통기타 문화 또한 계속 이어져 내려왔다.

이처럼 80년대 주류를 이어온 음악 문화는 서구음악이 주류였으며, 또한 캠퍼스 밴드가 활성화된 시기이기도 하다. 캠퍼스 밴드란 대학가요제 같은 가요제를 통해 실력있는 대학생들이 직접 음악 활동을 할 수 있도록 마련된 취지에서 발굴된 음악가들을 일컫는다. 캠퍼스 밴드에서 발굴된 대표적인 음악가로는 송골매나 산울림같은 우리나라 록에 한 획을 그은 밴드들이 있고, 이선희나 신해철 등의 뮤지션을 탄생시키기도 했다.

80년대는 또한, 홍콩영화가 크게 유행을 하면서 그 유행의 여파는 대학가에서도 예외가 아니었다. 지난해 사망한 쳉국웽을 비롯해, 저우룬파, 류더화 등 많은 대학생들이 이들의 복장을 따라 하기도 했다. 특히 저우룬파이 이쑤시개를 물고 다니는 장면이 압권으로 지금도 흉내내는 사람들이 많다.

홍콩 영화가 사회적으로 큰 반향을 일으키면서 대학가에는 '영화동아리'가 신입생들의 발길을 붙잡았다. 새내기들은 영화를 통해 당시 군부 정권에 맞설 수 있는 용기를 얻기도 했다. 이런 원동력이 우리나라를 민주화로 이끄는 큰 힘이 됐다.

또 80년대 대학가 주류 동아리는 철학, 사회, 노동 문제를 연구하는 사회 과학 동아리였다. 우리 사회가 본격적인 경제개발 체제에 돌입하던 시절. 하루가 다르게 경제는 발전했지만 사회 전반적인 민주주의와 인권은 아직 후진국 수준이던 시절이었다. 때문에 이 시절 대학가 동아리는 무리를 지어 철학과 사상을 공부하고 술을 마시며 열띤 토론의 장을 여는 공간이었다. 이는 비단 사회 과학 동아리만의 특성이 아니었다. 동아리의 대명사격인 연극, 탈춤, 밴드 동아리도 정치색을 짙게 띤 작품을 공연하며 문제의식을 공유했다. 현실의 상황을 직시하고 시대적 아픔을 함께한 이들 세대는 소위 '386'세대로 우리 사회의 주류를 이끌고 있다.

구속 싫어하는 X세대의 캠퍼스 점령
힙합·재즈·컴퓨터 등 최고인기 구가

▲ 1990년대 동아리

90년대에 들어서 대학가 동아리는 정치, 사회 문제와 결별하는 경향을 보인다. 90년대 젊은이를 규정하는 코드는 바로 X세대.

규정되지 않은 남과는 다른 나를 전면에 내세우는 X세대들이 점령한 대학가에는 점점 사회 과학 동아리의 영역이 좁아지고 있었다. 이러한 현상은 특히 90년대 중·후반에 두드러졌는데 이 시기는 바로 X세대들이 대학가를 완전히 점령한 시기와 일치한다. 이때부터 힙합댄스, 재즈, 컴퓨터 동아리 등이 최고 인기 동아리로 등극하게 된다. 서태지라는 X세대 ' 문화대통령'이 등장하면서 대학가는 힙합댄스 동아리가 학생들에게 큰 인기를 모았다.

고려대 경영학과 95학번 조성준씨는 "당시에는 랩 음악과 미국 NBA의 마이클 조던에게 열광하던 시기였다"며 "당시 과 학생 대부분이 농구 동아리에 관심을 보일 정도로 인기가 많았다"고 말했다.

97년 IMF라는 국가적인 위기를 겪으면서 학생들의 동아리 문화에도 많은 영향을 끼쳤다. 당시에는 동아리 활동을 자신의 취향이나 적성과 시대 흐름에 맞는 것을 선택했으나, IMF의 험한 파도를 만나면서 대학생들의 동아리 활동도 현실에 순응하는 모습으로 변하기 시작했다. 즉 영어, 컴퓨터 등 취직에 도움이 되는 동아리가 학생들의 관심을 끌었다.

100만 청년실업시대… 사라진 낭만
재테크·취업준비 등 미래지향적 활동

▲ 2000년대 동아리

2000년대 동아리는 90년대에 비해 크게 퇴색하고 있다. 동아리 인기가 시들해진 가장 큰 원인은 모두가 공통적으로 지적하는대로 취업문제다. 100만 청년 실업의 시대가 도래하면서 대학에서 더이상 낭만을 찾을 수 없었다.

IMF이후 우리 경제가 지속적으로 저성장 기조를 유지하면서 취업난은 이제 일시적인 현상이 아닌 상시 구조적 문제로 귀착되고 있다. 이러한 구조에는 대학에 입학하자마자 취업 준비생이 될 수 밖에 없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렇게 청년 실업의 골이 깊어지면서 대학내 동아리 활동을 비롯한 참여자치 문화는 위축되고 대신 개인주의 성향이 강해지고 있는 것이다.

경제적 마인드를 갖춘 대학생들이 늘어나면서 2000년대 대학가에도 새로운 '부'에 관한 동아리 바람이 불고 있다. 서울대 '부자동아리', 고려대 '가치투자연구회', 연세대 '연세투자그룹', 한양대 '스탁워즈' 등 주식투자나 재테크에 관심을 갖고 이를 자발적으로 공부하고자하는 대학생들이 늘어났다.

고려대 가치투자연구회 회원인 심재민(03·신방)씨는 "요즘은 대학생들도 부자되는 방법, 재테크 등에 큰 관심을 가지고 있다"며 "자본주의 사회에서 돈에 관심을 가지는 것은 당연하다"고 밝혔다.

동아리와 동아리 문화는 대학 문화를 특징짓는 주요 요소 중 하나다. 동아리 문화는 결국 자치문화라 규정할 수 있다. 고교시절까지 규정된 집단에서의 획일화된 생활에서 벗어나 자신들만의 의견과 소통으로 꾸리는 자치를 통해 사회성과 리더십을 키울 수 있는 자치 공간이었다. 대학생들의 꿈과 낭만, 사랑이 존재하던 동아리 문화가 점점 시들해지고 있어 아쉬움이 남는다. 그러나 동아리 가입할 당시의 순수한 마음은 시간과 상관없이 계속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