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 인천 동구 창영동에 위치한 인천 영화초등학교의 역사는 지난 1892년 영화학당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우리나라 최초의 근대식 초등교육기관으로 23세에 이화학당에서 음악을 가르쳤던 마거릿 벤젤이 인천에 내려와 제물포 교회 존스 목사와 결혼한 뒤 여자 아이 한 명을 데려다 키우면서 영화학당이 시작됐다. 1892년 8월 사립학교로 영화학교가 탄생, 교육에서 배제돼온 여자 아이들을 가르치는 교육기관으로 출발했다.

   대부분 기독교 집안의 자녀들이 입학했고, 졸업후에는 선교사 추천과 시험 등을 통해 서울 정동에 있던 이화학당의 보통과, 고등과, 중등과, 대학과로 들어가는 수순이었다. 당시에는 여학생만을 받는 학교가 드물었기 때문이다.

   이화학당의 대학과 제1세대로 불리는 김활란, 서은숙, 김애마, 김영의 모두 인천 영화여학교 출신으로 이들은 이화여자대학교의 역사에서도 굵직한 발자취를 남겨왔다. 우선, 김활란은 여성으로서는 처음으로 철학박사 학위를 따고 1945년 이화여자대학교의 총장을 맡고 1960년께는 명예총장, 이사장직 등을 역임하며 이화 10년 발전 계획을 수립해 학교내 동상으로도 세워져 있다.

   서은숙과 함께 우리나라 유치원 교육의 선구자로 꼽히는 김애마도 이화여대 사범대학 학장을 맡았다. 김영의는 피아노를 전공해 이화여대 음악대학 학장, 이사장 등을 역임했다. 학교내에 그의 이름을 딴 '김영의 홀'이 있어 각종 공연이 열리고 있다.

   현재 영화초등학교에는 이들에 대한 학적부는 찾을 수 없지만, 이들은 '영화를 빛내는 자랑의 선배들'로 꼽히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