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 장 담그는 철이다. 예로부터 음력대보름이 지난 뒤부터 4월(음력 3월)까지의 '정월장'을 으뜸으로 쳤다. 이 때가 가을에 쑨 메주가 가장 잘 뜨는 시기이기도 하고 숙성과정에서 곰팡이가 생기거나 썩지 않고, 간을 짜게 하지 않아도 돼 소금이 적게 들기 때문이다. 장의 원료인 메주는 주로 입동 전후에 쑤고 겨우내 띄워 대체로 추위가 풀리기 전인 이른 봄에 장을 담갔는데 '장 담그기 좋은 날'을 정하여 고사까지 지낼 정도로 중시했다. <편집자 주>

장 담그기     
                                       -배두순

 
 
 
  ▲ 사진/김종택기자·jongtaek@kyeongin.com  
 
정월달, 장을 담근다
항아리 깊숙이 메주를 쟁여넣고 소금을 푼다
소금물의 농도를 가늠하기위해
계란 하나까지 넣어본다
혹시 빠진 것이 없는지 둘러보는 사이
항아리 속 낮은 궁리에 젖어있던
계란이 겨우 솟구쳐 오른다
저 맹물들,
한동안은 짠맛 보다 더 깊은 단맛을 찾기 위해
싱거운 고개를 낮추고
세상 저쪽의 농도를 기웃거릴 것이다
그래서인지 오래된 간장독 속에는
긴 시간을 두고도 변하지 않는
검고 진한 향기가 천근의 무게로 서려있다
장을 담근다
변질되기 쉬운 우리들 눈치를 담근다
간장을 담그는 일은 쉽사리 변하지 않을
지조 하나 담그는 일이다

 
 
옛 문헌을 보면 음력 정월 말날인 오일(午日) 또는 그믐, 손 없는 날, 병인일 정묘일, 제길신일, 정일 등이 장 담그기 좋은 날이라 하였다. 특히 우수, 입동, 춘추분, 삼복에 장을 담그면 벌레가 생기지 않는다고 했다. 또 해 돋기 전이나 해 진 후에 장을 담그면 파리가 꾀지 않으며, 그믐날 얼굴을 복으로 하고 담그면 벌레가 생기지 않는다고 했다. 그런가 하면 수흔일(水痕日, 큰달 :1, 7, 11, 17, 23, 30일, 작은달:3, 7, 12, 26일을 말함)에 담그면 가시가 생긴다고 하였고, 신일(申日)에 장을 담그면 시어진다고 장 담그기를 피했다.

지난 17일 광교산 아래에서 요리연구가 이성숙(49)씨의 지도아래 10여명이 모여 전통 장 담그기 행사를 가졌다. 장 담그기는 말린 메주를 꺼내 곰팡이균을 물로 씻어내는 것부터 시작한다. 참고로 간장과 된장에 쓸 메주는 보통 10~12월에 콩을 삶아서 만들어 띄운다. 잘 뜬 메주는 겉이 말라있고 노르스름하며 붉은 빛을 띤다. 속은 말랑말랑하면서 흰색이나 노란색을 띤다. 파랗거나 검은색이 나는 것은 균이 많이 들어가 있는 것이므로 좋지 않다. 좋은 메주를 고른 후, 참가자들이 일제히 쪼그리고 앉아 메주를 쓱싹쓱싹 씻어낸다. 메주를 난생처음 씻어보는 몇몇 참가자들이 메주를 너무 빡빡 긁어내자 이씨는 "유익한 균인 메주 납두균까지 다 닦아내면 안된다"며 "메주에 묻은 먼지만 털어낸다는 생각으로 씻으라"고 타박하기도 했다. 참가자들은 정성스레 씻은 메주를 항아리에 넣은 후에, 장 담그기의 제일 난코스인 소금물 만들기에 돌입했다. 장 담그기에는 소금이 제일 중요하다. 천일염을 미리 사서 간수를 빼서 준비하는 것이 좋다. 간수를 빼지 않으면 쓴맛이 난다. 장을 담그는 시기에 따라 이 소금의 염도를 달리해야 하기 때문에 중요하다.

 
 
 
정월 장에는 물과 소금을 10대3 비율로 맞추고, 날씨가 약간 따뜻한 2월과 3월에 장을 담글 때는 물과 소금의 비율을 10대4 비율로 맞춘다. 장을 담글 때 소금을 푸는 물도 중요하다. 깨끗한 물 즉 맑고, 차고, 순하고, 냄새가 없는 물이 좋다. 그래서인지 생수나 약수를 떠다가 사용하곤 한다. 천일염을 풀고 소금 농도를 맞추는 일이 여간 힘든 게 아니다. 서울에는 염도계 눈금상 소금 8.4kg/17.5(Be), 대전은 9.5kg/19.5, 대구 10.5kg/20.5, 부산·광주는 11.5kg/21.5로 염도를 맞춰야 하는데, 요즘에는 염도측정기기로 쉽게 농도를 맞출 수 있다.

예전에는 달걀을 띄워 500원짜리 동전크기 만큼 달걀이 떠오르면 소금농도를 맞췄다고 한다. 장맛은 메주와 소금물의 농도와 햇빛에 의해 결정된다. 소금물의 농도가 너무 낮으면 장이 변질될 우려가 있고 농도가 너무 높으면 발효가 억제되어 장맛이 떨어진다. 그러므로 소금물은 장 담그기 하루 전에 미리 풀어놓아 침전물이 바닥에 충분히 가라앉은 후에 사용한다. 메주와 소금과 물의 비율은 1대1대3 정도로 한다. 간장의 양에 따라 물의 비율을 조절한다. 필요한 양의 물에 소금을 푼 다음 소금이 다 녹을 때까지 막대기로 휘휘 젓고 하루 동안 그대로 재워 두었다가 윗물만 떠서 장 담글 때 사용한다. 다음에는 어렵사리 맞춘 소금물을 메주가 든 항아리에 붓는다.

 
 
     
메주를 넣기 전 항아리도 잘 살펴본다. 항아리에 구멍이 있는지 알아보려면 볏짚에 불을 지핀 후 그 위에 항아리를 엎어 놓는다. 항아리에 구멍이 있으면 연기가 새어나온다. 냄새가 밴 항아리는 참숯을 피워 항아리 바닥 가운데 넣고 꿀 한 종지를 부어 태우면 좋은 향이 퍼지고 내부가 소독된다. 항아리에 메주와 소금물을 부은 후, 소독을 위해 불에 막 달군 참숯을 3개 정도 넣는다. 기호에 따라 마른 고추 2~3개, 대추와 깨도 넣기도 한다. 메주가 소금물에 뜨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옻나무를 넣기도 한다. 3일 동안 뚜껑을 닫아놓은 뒤 4일째부터 40일 동안 이물질이 들어가지 않게 망사헝겊을 두른 뒤 매일아침 뚜껑을 열어 볕을 쬐고 장을 숙성시킨다. 40일이 지난 후에는 90%는 간장으로 쓰고 나머지는 소금 섞어서 된장으로 만든다.

메주와 우러난 소금물을 가른 후, 먼저 건져 낸 메주는 소금을 넣고 버무려서 항아리에 눌러담고, 남은 소금물은 솥에 부어 달인다. 이 때 메주를 건져내고 남은 즙액이 간장이고, 건져낸 메주를 으깨어서 만든 것이 된장이다. 우리조상들은 '장맛이 변하면 집안이 망할 징조'라고 여길 정도로 장맛 관리에 정성을 기울였다.

 
 
 
옛날 여인네들은 장 담그기 사흘전부터 외출을 삼가고 부정이 타지 않도록 언행과 몸가짐을 특별히 조심해야 했다. 동물이나 미물을 해치지 않으며 부부관계도 삼가고, 특히 부정한 사람의 근접을 막았다. 그래서인지 현재까지도 장을 담근 후 장독대에 금줄을 만들어 두르기도 한다.

행사에 참가한 이향우(38·수원시 팔달구 인계동)씨는 "옛날 어머니가 장을 담그는 모습이 드문드문 기억나는데 그 느낌이 참 좋았다"며 "어머니처럼 내 손으로 직접 장을 담가서 우리 딸에게 기술을 전수하고 싶다"고 말했다. 이씨는 또 "사서 먹는 것보다 내 손으로 직접 만드는 게 더 특별한 의미가 있지 않겠느냐"며 "방부제도 들어있지 않은 자연 장으로 우리 가족의 건강을 지킬 예정"이라며 환히 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