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게 인생인데도 나누고 베푸는 삶을 살아야 한다고 생각하고 실천하는 이가 있다. 바로 산소 호흡기와 휠체어가 없으면 움직일수 조차 없는 어머니를 평생토록 수발하며 사는 효녀가수 오현숙(50)씨.
장기동에 집을 갖고 있던 오씨는 이 지역이 신도시에 포함되자 보상금이 나오면 이중 10%를 이웃을 위해 기부하겠다고 자신에게 약속했다.
그리고 지난해 6월 3억8천만원의 보상금이 나왔다. 1천만원을 한국체육대학 장학회에 기증했다. 지난 1월에는 김포 외고에 1천만원을 장학금으로 기탁했고 3월에는 김포시 장학회에 역시 1천만원을 내놨다. 지난 2월엔 노인복지시설인 대곶면 송마리 수산나의 집에 기거하는 어르신들을 위해 200만원을 들여 잔치도 벌여줬다. 이렇게 내놓은 돈이 지금까지 5천300만원. 약속했던 10%를 훌쩍 넘어섰다. 그런데도 나눔은 계속된다.
남들은 가진게 적다고 아우성인데 오씨는 왜 베풀려고 애쓰는걸까. 그건 그녀의 인생경험에서 시작된다. 사업을 하던 아버지밑에서 유복한 생활을 하던 그녀가 가진 재능을 살리기 위해 가수로 데뷔한게 고등학교 3학년때인 18살. '푸른꿈'이란 앨범까지 냈지만 갑작스런 사고로 부친이 돌아가시면서 가세가 기울었고 앨범은 홍보도 못해본채 잊혀져야 했다.
남은건 지독한 가난과 생활고. 다섯남매의 첫째인 그녀에게 소녀가장은 숙명이었다. 천식으로 평생을 고통받는 어머니(75)는 그때도 여전한 환자였다. 워커힐 등 밤무대를 뛰면서 열심히 벌어 동생들 대학 보내고 번듯하게 길러내 시집장가 보냈다. 모아진 돈으로 김포에 땅을 샀고 어머니를 모시고 지난 2002년에 김포로 왔다.
어느날인가 YMCA 평생교육원에 노래지도를 나갔다가 기막힌 일을 목격했다. 급식 못받는 아이들을 위해 나눠 준 빵을 한 아이가 숨겼다. 사연을 물으니 쌀이 없어 굶는 할머니를 위해서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어린시절의 고생이 머릿속을 스쳐갔고 그동안 나는 뭐했나 하는 자책감이 들었다. 그때부터 나눔이 시작됐다. 수입이 생기면 어김없이 이웃을 위해 썼다. 그렇게 살아온게 5년. 지금 그녀에겐 바라는일이 하나 있다. 신도시 개발이 시작되면서 보상 등을 받아 김포에는 수십억에서 수백억원씩 가진 사람들이 많다. 그분들이 조금씩만 어려운 이웃을 위해 신경을 써준다면 김포가 훨씬 달라질텐데 하는….
오현숙씨는 작고 아담하다. 하지만 생각은 크고 마음은 깊다. 평생 환자이신 어머니를 모시면서도 그녀의 얼굴은 밝고 행복한 미소로 넘친다. 잃어버린 사랑을 찾아내 다시 천사가 된 톨스토이 소설의 주인공 미하엘 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