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흥업소도 크로스오버.

성격이 다른 두가지 이상의 문화가 하나로 합쳐져 새로운 '종'을 만들어내는 크로스오버. 음악 등 예술 분야에선 이미 보편화된 현상이고 언제부턴가 우리 생활 곳곳에서도 크로스오버의 경향이 뚜렷하게 나타나고 있다. 유흥이나 놀이문화에도 크로스오버의 바람은 거세다. 한가지 놀이만 하기에는 쉽게 지루함과 싫증을 느끼는 젊은이들이 새로운 현상을 만들어가고 있는 것이다.

지난 2일 오후 8시께 수원역 인근의 J주점. 노래방과 주점, 호프집 등이 결합된 신종 유흥업소로 인기를 끌고있는 곳이다.

주점 입구에는 마치 호텔 프런트를 연상시키는 안내데스크가 마련돼 있다. 헤드셋을 착용한 여직원이 손님들을 맞이하고 방을 '배정'하는 등 부산하게 움직였다.

월요일인데도 불구하고 안내데스크 앞에는 대학생으로 보이는 10여명의 젊은이들이 입장 순서를 기다리고 있었다.

취재진을 보자 여직원은 "몇분이시죠?"라고 물었고 일행수를 얘기하자 "룸으로 가실거죠? 오늘은 평일이라 노래방 무제한입니다"라고 설명했다.

2∼3분뒤 서빙을 보는 남자 직원의 안내로 두평 남짓한 방으로 들어갔다. 방에는 테이블을 중심으로 소파가 있고 벽에는 노래방 시스템이 설치돼있었다. 모습만 보면 영락없는 단란주점이나 유흥주점이었다.

다른 것이 있다면 테이블 위에 식당에서나 볼 수 있는 수저통이 있다는 것. 크로스오버의 특징을 가장 잘 나타내고 있는 '물건'이었다. 일단 방에 들어선 다음에는 메뉴판이 궁금해졌다. 이곳에선 한마디로 한식, 일식, 중식, 양식까지 없는 것이 없었다. 게다가 2만원대 후반의 각종 세트메뉴가 많았고 탕 하나만 시켜도 기본 안주 7가지가 제공되는, 그야말로 물량 공세가 대단했다. 여기에다 노래방 시간이 무제한이다보니 주머니 사정이 여의치않은 대학생들에겐 그야말로 최고의 놀이공간이었다.

손님 이모(22·수원시 권선구)씨는 "밥 먹고, 술 먹고, 안주 먹고, 노래 부르는 것을 한꺼번에 해결할 수 있으니까 친구들끼리 자주 온다"며 "돈으로 따지면 따로 가는 것보다 절반가량 싼 것 같다"고 말했다.

여직원도 "저녁시간에는 젊은 손님들이 많이 온다"며 "하지만 새벽시간에는 30대 이상도 많이 찾는다"고 귀띔했다.

20대 초반의 젊은이들이 많이 찾다보니 이곳에서만 볼 수 있는 독특한 현상도 있다. 이른바 '방팅'이 그것이다. 각각의 방에서 놀던 손님들이 '뜻이 맞으면' 합쳐서 함께 노는 것이다. 나이트클럽의 '부킹'과 비슷하지만 여자들이 이리저리 끌려다니는 부킹과 달리 남자들이 주로 방문을 두드린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한 웨이터는 "나이트클럽처럼 저희가 주선하는 경우는 없어요. 대신 손님들이 직접 하시는 경우는 있습니다"고 설명했다. 공짜이다시피한 노래방, 저렴한 안주값, 우리만의 공간 등 각각의 영역을 파괴하고 유흥문화의 장점만 모아놓은 곳인만큼 허가 문제가 궁금해졌다.

웨이터에게 조심스럽게 허가문제를 묻자 쉴틈도 없이 "유흥주점 허가를 받은 곳이라 법적인 문제는 전혀 없다"며 "도우미도 없다"고 강조했다. 많은 손님들로부터 질문을 받아서인지 대답이 술술 나왔다. 실제로 이곳은 유흥주점 허가증을 정문 입구에 내걸고 영업을 하고 있었다.

그러나 아무래도 '평소보다 조금 건전하게 놀아보자'는 생각에 이곳을 찾은 직장인들은 실망할 수도 있을 것 같다.

질보다 양에 충실하다보니 기본 안주나 메인 안주가 다른 전문 식당에 비해서 맛이나 양에서 조금 처질 수 밖에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값싸고 편하고 재밌는 크로스오버 주점의 인기는 날이 갈수록 높아져 최근 수원에 점포가 속속 생기는 등 전국적으로 70여곳이 성황이다.

IMF이후 소비문화가 바뀌고 바닥 경기가 제자리 걸음을 하면서 이제는 놀이문화도 한가지만 있어서는 성공할 수 없는 시대가 됐다. 물론 한가지를 '특별히' 잘하는 경우도 있겠지만 여러가지를 한꺼번에 만족시킬 수 있는 '더 특별한' 공간이 각광받는 시대인 것이다.

크로스오버는 이제 예술의 영역을 뛰어넘어 '현대생활백서'의 한 페이지로 자리잡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