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구도는 고려시대에도 30개의 역을 관할하면서 역역(驛域)이 강원 일대까지 뻗어 있던 유서 깊은 역도이다. 흔히 역은 말과 숙식을 제공하는 교통시설로 알고 있지만 본질적으로 이들은 모두 병부(兵部)에 속한 일종의 군사시설이었다. 평구역에서 분기하여 가평과 춘천을 지나 양구까지 이르는 분기로의 노선은 '대동지지'에 다음과 같이 기록되어 있다.
평구역-구곡역(40)-청평천점(20)-감천역(15)-가평(20)-초연대(5)-안보역(15)-석파령(15)-덕두원(5)-신연강(10)-<춘천> (10)-소양강(5)-부황현(20)-기락천(5)-가락동(15)-대동령(5)-시낙현(30)- <양구> (20)
이 길은 평구, 청평, 가평, 춘천, 양구 등의 주요 취락을 경유하며, 평구역에서 덕소를 지나 마석우리까지는 362번 지방도로와 이후부터는 이른바 '경춘국도'(京春國道)'라 불리는 46번국도와 거의 일치한다. '대동여지도'에 따르면, 서울에서 춘천 가는 길로는 구곡역(남양주시 화도읍 구암리)까지는 석교(石橋·서울시 공릉동)로 중랑천을 건너고, 이후 퇴계원-사릉-평내동-마치-마석우리를 경유하는 노선이 따로 있기도 하다. 이 길은 1913년에 이미 2등도로로 정비된 바 있다.
평구를 경유하는 것보다 더 가깝고 도로 여건도 양호하기 때문에 '구한말 한반도 지형도'에는 이 길이 더 큰 길로 표시되어 있다. 따라서 서울에서 직접 춘천으로 갈 때는 이 노선을 이용하는 사례가 더 많았다. 춘천은 1896년에 원주에서 감영이 이전해옴으로써 행정도시로 변모하기 시작한다. 원주보다 빠른 1939년에 철도가 들어온 춘천은 해방 후 다른 어떤 도시보다 빠르게 1946년에 시로 승격한다.
청평천점은 현 청평리로, 청평역과 면사무소를 중심으로 발달해 있는 현재의 중심 시가지는 경춘선 철도 부설 후에 성장한 마을이고, 구청평천 또는 구청평내로 불리는 원래의 중심취락은 조종천 합류지점의 동안(東岸)에 위치한 마을이다.
청평댐으로 진입하는 도로 남측에 사창(社倉)이 있던 창촌마을에는 주막거리라는 지명이 남아 있다. 지금은 46번 국도가 청평1교를 건너 조종천 제방 위로 나 있지만, 구도로는 돌밭골(石田洞)마을 안길이다.
감천역은 '대동여지도'에 색현(色峴·빛고개) 아래에 위치했으므로 외서면 상천리로 비정된다. 상천리에는 감천마을이 있다. 현재의 빛고개 역시 직선화한 것으로 남쪽에 구도로가 남아 있다. 초연대로 일컬어지는 지점은 현지 주민들도 잘 알지 못해 정확히 비정하기 어렵다. '대동여지도'에 따르면, 아마도 가평천과 북한강 합류점에 자리한 병현마을(자라목) 뒤쪽의 절벽을 일컫는 듯하다. 안보역은 춘천시 서면 안보리 고역촌마을에 있었고, 정확한 지점은 당림초등학교 부근으로 추정된다.
'구한말 한반도 지형도'에 따르면, 석파령길의 도로등급은 연로에 해당하고 구 46번국도인 강변로는 일부만이 연로였으므로 석파령길이 더 큰 길이었음이 인정된다. 현재 석파령길은 비포장이지만 자동차로 넘을 수 있다.
신연강은 신연진 부근의 북한강을 일컫는다. 신연진은 지금의 붕어섬 북단에 있었는데, 1939년에 나루 하류쪽 3㎞ 지점에 신연교가 부설되면서 기능이 거의 소멸하였고, 1967년에는 의암댐이 축조됨으로써 옛 길의 일부가 수몰되었다. 춘천의 명소인 공지천 유원지와 중도 유원지는 모두 의암댐 축조로 생긴 것이다.
일제시기 지형도에서 확인되듯이, 중도가 지금은 섬이지만 북한강 본류와 소양강 합류지점에 발달한 충적지인 이른바 '우두벌'의 말단부에 속하고, 현 붕어섬도 북한강 동안의 육지와 붙어 있었다. 붕어섬 북단부터는 돌고개(삼천동), 공지천교, 소양로, 소양 1교(1932년 완공)로 이어지는데, 소양 1교가 놓인 곳이 소양강 나루터이다.
위 분기로의 경유지인 가평에서는 북쪽으로 화천(낭천)까지 이르는 제2지선이 하나 더 있다. 노선은 다음과 같다.
가평-장현(20)-홍적리(10)-물애령(15)-지가암점(20)-원천역(20)-낭천(15).
장현은 가평읍 마장리에서 북면 이곡리 사이의 고개로 이 지역민들은 노루메·노루미·노루목 고개 등으로 부른다. 홍적리는 지금 화악리이고, 물애령은 '대동여지도'에 가평천과 북한강 본류의 분수령이므로 지금의 홍적령임에 거의 틀림없다. 홍적령길은 화천-가평간 첩로이지만, 그 사이에는 북배산(866)·가덕산(868)·화악산(1천468) 등의 고봉이 연이어 있으며, 가장 낮은 홍적령도 해발고도가 400에 달하므로 길마 이상의 교통수단이 통행하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홍적령 너머에는 마장이(馬場里)라는 마을이 있는데, 일제시기에 조랑말을 타고 화천과 서울 사이를 다니던 행상들이 유숙하던 곳이라 한다.
지가암점은 지금의 지암리이고, 여기서 고시락고개(高秀嶺)를 넘으면 원평리 마평마을(마람또리)에서 5번국도와 만난다. '대동여지도'에는 지가암리에서 소하천을 건넌 후 마현을 경유하므로 5번국도상의 말고개이다. 현 도로는 신포리에서 달거리고개를 넘어 원천역리(하남면 원천리)로 이어지지만, 이는 춘천댐의 축조로 하천 수위가 높아졌기 때문이고, 원래의 길은 신포리에서 하안을 따라 서오지리-원천리-화천읍으로 이어진다.
한편 현재의 춘천-화천간 5번국도는 북한강 동안을 따라 올라가다가 춘천댐(1965년 완공)을 건너 서안으로 넘어가지만, '대동여지도'와 일제시기 지형도에 따르면 모진(母津)에서 북한강을 건넜으므로 인람리와 원평리 사이이다. 춘천댐 축조 이전 모진에 놓여 있던 모진교는 수몰되었다.
오늘날 이 길은 화천읍의 입장에서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서울에서 화천까지 가자면 거의 예외없이 춘천을 경유하게 되는데, 만일 이 지름길이 좀더 정비된다면 화천은 춘천에 대한 배후지적 성격을 일정 부분 벗어나 독자성이 강화될 것으로 전망된다.
이 노선은 오늘날 6번·44번·46번·466번·7번도로와 거의 일치하는데, 서울에서 속초를 잇는 대로 중 가장 짧다. 지평에서 광탄점을 지나 신당치를 넘어 홍천군계로 접어드는데, 광탄점은 흑천변의 상업취락으로 현 용문면 광탄리(너븐여울)이다.
현재 용문면의 중심지인 다문리는 중앙선 철도가 부설된 이후 발달한 취락이고 원래 광탄리에 가장 큰 취락이 형성되어 있었다. 백동역이 있던 곳은 양평군 단월면 덕수리 백동마을로 큰 길에서 약 2.5㎞ 떨어져 계곡 안에 위치하였다. 한편 광탄점에서는 다시 제2지선이 분기하여 횡성까지 이어지는 길이 하나 더 있다. 이 길은 대체로 6번국도로 계승되었다.
/김종혁 고려대학교 민족문화연구원 연구교수·역사지리 양구>춘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