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정의 달 5월의 마지막 주 토요일인 지난 26일 오후 4시. 고양 아람누리 아람극장주변에는 부모 손을 잡고 나온 갓 초등학교의 입학한 어린아이부터 백발의 할아버지까지 가족단위로 구경 온 다양한 연령대의 관람객들로 붐볐다. 이유는 서울 국립극장에서 1만 3천명 관객들의 눈물을 자아낸 창극 '청'의 공연이 고양아람누리 개관기념으로 열리기 때문이었다.

 공연은 1·2부 80분, 쉬는 시간 20분을 포함해 3시간이라는 장시간 펼쳐져 지루함을 느낄 우려가 컸지만, 공연을 보고 나온 관객들의 표정은 사뭇 밝은 모습이었다. 우리에게 잘 알려져 있는 전래동화인 효녀심청의 내용을 그대로 한 이 창극 '청'의 1부에는 심청의 탄생부터 인당수에 제수로 빠지는 장면까지, 2부에서는 어머니 곽씨부인의 도움으로 다시 인간 환속을 하게 되어 황후가 되고, 맹인잔치를 열어 아버지를 만나고, 결국 아버지가 천은(天恩)으로 눈을 뜨게 되는 격정적인 장면으로 끝을 맺었다.

 이번 공연된 창극 청은 기존의 창극과 달리 국립창극단 배우 외에 해금, 콘트라베이스, 장구 등 국악기와 서양악기, 사물놀이 악기가 절묘하게 조합되어있는 국립관현악단의 장엄한 연주, 국립무용단의 화려한 안무, 그리고 무형문화재인 안숙선 명창의 열정적인 도창이 어우러져 관객들이 한시도 눈을 뗄 수 없게 이목을 집중시켰다.

또한 7.5도 기울인 회전무대가 돌아가는 무대와 관람석 천장까지 비추는 조명은 관객들을 실감나게 해주었고, 극 중간 중간에 안숙선 명창이 등장하여 제3자 입장에서 심청의 상황을 창으로 설명해줘 관객들이 극을 이해하는데 큰 도움을 주었다.

특히 명창의 의복이 1부에는 평복을 입고 나와 심청의 고단한 삶을 나타냈고, 2부에는 예복을 입고 나와 심청의 황후됨을 간접적으로 표현하였다. 이 날 심청역은 국립창극단의 차세대 프리마돈나 김지숙씨가, 심봉사역엔 2001 전주 대사습 장원을 한 왕기철씨가 맡았다. 배우들은 간간이 대사와 창을 섞어가며 연기했고, 코러스도 등장해 마치 서양의 뮤지컬을 보는듯한 기분을 느끼게 해주었고, 또한 국립국악관현악단의 연주가 끊임없이 극에 가미되어 마치 좋은 배경음악을 가진 영화한편을 보는 것 같은 기분이 들게 했다.

그리고 국립무용단의 안무는 한국 전통무용 공연을 보고 있노라 착각하게 만들었다. 다양한 볼거리를 제시한 이 공연은 뮤지컬, 영화, 연극, 오페라 등을 혼합해 놓은 듯한 느낌을 갖게 했고, 관객들의 관심을 계속 집중시켰다. 그중에서도 1부 마지막 제 5장 '행선날' 부분의 심청이 인당수에 제수로 빠지는 장면은 파도의 위험을 느끼게 하는 웅장한 음악과 반짝이는 불빛으로 당시 기후를 세밀하게 묘사한 조명, 그리고 회전하는 무대장치를 통해 상황의 급박함을 최고조로 느끼게 하여 관객들로부터 우레와 같은 박수를 자아냈다.

익숙한 스토리로 자칫 지루해질 수 있는 관객들을 위해 2부 5장에 '황성가는 길'에서는 황성으로 가는 맹인들의 장기자랑이 펼쳐져 배우들이 부르는 '진도아리랑', '각설이타령'을 관객들이 따라 부르며 열렬하게 극의 참여할 수 있게 했다.

1층 자리를 가득 메운 관객들의 대부분은 한국인이었지만 외국 관람객이 1명 있었다. 핀란드에서 공연을 하기 위해 한국에 방문한 클래식 가수인 EIJA씨는 "음악연주와 배우들의 연기가 굉장히 좋았고, 한국 오페라(그녀는 창이라 표현을 안 하고 이 단어로 표현 했다)를 처음 보았는데 매우 흥미로웠고, 감성적이었다"며 "특히 아버지를 향한 딸의 사랑을 나타낸 이 극 줄거리 자체가 자신에겐 신선했고, 딸의 헌신이 감동을 주었다"고 말했다. 공연내용을 이해하는데 문제가 없었냐는 물음엔, "영어로 나온 스크립트에 의존을 했지만 대부분 이해를 했으며 문제되지 않았다"고 말했다.

또한 젊은층의 학생들 모습도 눈에 띄었는데, 대학생 임지영(23·여)씨는 "창극이 이렇게 재밌는 줄 몰랐다"며 "무대 스케일이 커서 저명한 오페라 못지않았고, 독창적이었으며 우리의 소리인 창으로 이루어진 공연이라 그런지 구수하고, 쉽게 감정이입을 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이번 공연은 우리식의 오페라도 브로드웨이 대형 뮤지컬에 익숙한 대중에게 성공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명백히 보여주었다. 실제로 창극 청은 9월에 중국공연을 앞두고 있다. 지난 공연 성과처럼 앞으로 국내에서 뿐만 아니라 외국에서도 큰 성공을 거두길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