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순교자 못지 않은 훌륭한 삶을 사셨습니다."

   인천교구 성지개발위원회 부회장 김진용(78)씨가 박순집에 대해 관심을 갖기 시작한 것은 20대 청년시절 부터였다.

   김씨는 한국인 최초의 신부 김대건 신부의 유해가 묻혀 있는 안성 미리내 성지에서 젊은 시절을 보낼 때 헌신적인 삶을 살다간 수많은 순교자들의 이야기를 접했다. 이때 오기선 신부에게 들은 박순집의 흔적에 김씨는 큰 감동을 받았다고 한다.

   "천주교에 대한 탄압이 거세던 시기에 순교한 성직자와 평신도들의 시신을 찾아 안전한 곳에 고이 모신 그의 의거는 죽음을 각오한 순교 정신이 아니고서는 해낼 수 없는 일입니다. 박순집의 증언도 한국교회사에서 빠질 수 없는 부분입니다. 그가 없었다면 당시 순교자들의 거룩한 정신은 역사에 남지 못했을 것입니다."

   그동안 김씨는 1890년 인천 제물포에 정착한 박순집의 행적을 밝히고자 애써왔다. 인천지역 천주교 역사를 바로 세우기 위해서는 인천교구 발전에 기초를 닦은 박순집에 대한 연구가 반드시 필요하다는 것이다.

   "박순집이 선종하던 날에 온 마을 사람들이 '박서방네 집에 불이 났다'며 몰려 들었답니다. 마을 사람들이 가까이 가보니 불이 난 것이 아니라, 지붕위로 두 줄기의 광채가 하늘로 향했다는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죠. 인천에서 말년을 보낸 당시 박순집의 위치를 가늠하게 하는 대목입니다."

   김씨는 박순집이 한 순간에 목이 떨어져 나간 순교자 그 이상의 삶을 살았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다고 거듭 강조했다.

<임승재기자·isj@kyeongi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