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만 들어도 설레는 길이 있다. 경춘가도, 젊음과 사랑의 추억이 특히 많이 따라 나오는 길. 그 길에서 경기도의 길 순례를 마치니, 추억이 하나 더 늘겠다.
남양주를 지나자 뚝 끊긴 기찻길이 먼저 맞는다. 길의 운명을 바꾼 것은 다름 아닌 아파트다. 하긴 사람 있고 길 있으니,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편의를 위해서라면 아무리 유서 깊은 길도 치워버린 것을 수없이 봐왔다. 작년 12월에 철수했다는 철로의 잔해가 텅 빈 터널과 함께 그런 흔적을 보여주고 있었다.
끊긴 기찻길을 걷자니 영화 '박하사탕'의 "나 다시 돌아갈래!"라는 절규 장면이 떠오른다. 그 길이 경춘선이었을 것이다. 누구나 돌아가고 싶지만 아무도 돌아갈 수 없는 시간과 공간. 현재보다는 순수했던 아니 그렇다고 믿는 지난날이 저 너머 어딘가에 있다. 기찻길 위에도 자글자글 모여 있다.
#경춘가도와 기찻길과 간이역
경춘가도는 기찻길과 국도가 만났다 헤어졌다 하는 운치가 참 좋다. 그런데 막히기로 유명하던 길이 이제는 썰렁하기 짝이 없다. 곧고 빠른 새 길로 사람들이 몰리면서 옛길이 퇴물처럼 멀찍이 물러앉은 것이다. 간이역도 뒷목을 쓸쓸히 당긴다.
한 방향만 바라보다 늙어버린 문처럼
침목 긴 행간에 그늘이 깊어지면
그 몸을 관통해 가는 검은 기차가 있다
그리움은 헤어진 그 직후가 늘 격렬해
등을 만질 듯 마른 손을 뻗지만
제 길을 결코 안 벗는 그는 벌써 먼 기적
희미해진 이름 속을 꼭 한 번 섰다 갈 뿐
그때마다 피를 쏟듯 씨방이 터지는 걸
기차는 알지 못 한다, 폐허 위에 피는 꽃도
-정수자, <간이역> 전문 간이역>
길 위에서는 불쑥 삐져나와 발에 채는 것들이 많다. 추억의 간이역처럼, 나도 무언가를 묻은 채 너무 멀리 온 것은 아닐까. 급행에 멀미가 난 후에야 완행의 느슨한 시절을 그리워하니 말이다. 그런 시간을 일깨우듯, 작은 이름표를 단 채 삭아가는 간이역들이 거기 아직 있었다.
기차나 간이역은 한때 좋은 문학의 제재고 자극이었다. 문명의 상징이자 마음의 지축을 흔드는 기적이 상상력을 추동한 것이다. 특히 경춘선은 서울 밖으로 가볍게 나갈 수 있는 점 때문에 주말여행이나 MT에 가장 많이 애용된 코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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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성리역. MT촌의 대명사로 불리던 대성리는 지금도 젊은이들의 발길이 붐비고 있다. |
가평 즈음에서 먼저 만나는 것은 짧은 여행의 기억들이다. 대성리나 강촌이라는 지명 자체가 추억의 뒤안길인 것이다. 아예 'MT촌'이라는 이름을 걸고 있는 대성리를 보니, 지금도 많은 젊음이 이곳을 찾나 보다. 민박이 펜션으로 바뀐 만큼, 놀고 마시고 쏟아내는 청춘의 배설물은 많이 달라졌을 테지만 말이다.
그런데 물이 없었더라도 대성리나 강촌이 명성을 유지했을까. 아마 그렇지 않았을 것이다. 양수리니 미사리가 새로운 명소로 등극했듯, 사람들은 정말 물을 밝힌다. 그러다가 북한강변을 러브호텔의 길로 만들기도 했으니, 물의 힘은 과연 세다.
아무려나 청평 호수를 끼고 달리는 경춘 국도의 맛은 가히 일품이다.
황금화살 같은 노을 쏟아지는
설레는 물 한복판에서 감히 적멸(寂滅)에 관하여 생각하느니
눈 비비고 불러도 들리지 않을
잿간의 먼지 같은 한 생이여
덧없어 평안하고 부질없어 고마운
살아온 날들 잘 지워진다
-조창환, <길 없는 물> 중에서 길>
물에 비친 산 그림자들이 수묵화처럼 가슴에 스며든다. 수없이 피고 지는 길가의 꽃과 가끔 지나는 새들이 강변길의 정취를 한껏 돋운다. 그 속에 가둬놓은 물이 모두 '길 없는 물'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 물을 따라 시작한 삶, '잿간의 먼지 같은 한 생'을 우리는 종종 물에 의탁한다. '덧없어 평안하고 부질없어 고마운/ 살아온 날들'을 지워주는 물이 있어 심신이 새로워지고, 다시 길을 간다.
#길 위의 머묾과 떠남
양구로는 평해로의 지선이니 샛길에 속한다. 본래 샛길은 마음을 더 잡아채게 마련이다. 빠른 쪽을 택한 길이니 급한 마음을 더 끌고, 뭔가 있나 기웃대는 마음도 더 당기는 것이다. 양구 가는 길도 도중에 새로 닦는 길이 또 있어 가보니 산으로 계속 넘어가는 중이다. 얼마나 더 빠르고 너른 길이 필요하기에 산을 저리 뭉개고 길을 낼까.
막다른 공사 현장을 돌아 나오며 계속 만드는 길들의 길을 생각한다. 어떤 길은 번듯하게 새로 냈건만 통행이 거의 없어 한적하기만 했다. 어떤 길은 무슨 잇속이 엉켜 만들었나 싶게 중복된 것도 더러 있었다. 길이 편해야 사람도 끌어들일 텐데, 자칫 길만 휑하게 남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종종 들었다.
돌아오는 길에 돌아보니, 멈춰 있던 기차가 벌떡 일어날 것만 같다.
국경을 건너고 거친 대륙을 횡단하기 전에는
한반도는 슬픈 작은 섬일 뿐이야
(중략)
그저 스치고 지나가는 간이역의 이름처럼
앞으로 남은 많은 날들이 너를 녹슬게 하겠지만
기관차야, 철길 위에 버티고 서 있지 말고
새 길을 만들어 달릴 때 너는 기관차인 것이다
끝이다, 더는 못 간다 싶을 때 힘을 내
달릴 수 있어야 모두들 너를 힘센 기관차로 부를 것이다
-안도현, <기관차를 위하여> 중에서 기관차를>
끊긴 길 위로 기차가 다시 달리길 바라는 마음은 북부지방 답사에서 자주 내비쳤었다. 그것도 대륙을 질주하는 그런 커다란 기차로서 말이다. 지난 5월 17일은 56년 만에 남북을 잇는 기차가 달렸으니 꿈이 곧 실현되리라 믿는다. 기차가 그렇게 '새 길을 만들어 달릴 때' 비로소 기차이듯, 우리도 자신이 원하는 길을 갈 때 진정 살아 있는 삶일 것이다.
#길 위의 길과 삶 그리고 도(道)
경기도내 길을 답사하는 '길, 그곳으로 가다'의 대단원의 막을 내리며 그간 다닌 길들을 마음으로 쓸어본다. 우리의 마음이 특히 많이 실렸던 길은 사라져가는 옛길이었다. 그 길들은 어쩌면 우리의 기억 속에서 조금 더 살다가 기록으로만 남게 될 것이다. 문득 '옛길박물관'이라도 지어 보관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쓸쓸히 굴려본다.
우리 지역의 길들은 수도권의 길이라는 운명 때문에 더 자주 바뀌고 사라지곤 한다. 그래서 변동이 별로 없는 먼 지방도의 운명이 평화롭게 느껴진다. 하지만 무릇 길이란 사람이 다녀야 제 일을 하는 것이리라. 사람만 아니라 바람도 지렁이도 건네주는 것, 그게 길의 소임 아닌가. 하여 아무리 근사한 길도 사람이 안 다니면 길이 아니다. 생명이 못 다니면 길이 아니다. 그래서 길이 곧 도(道)인가 보다.
정수자/시인·아주대 인문과학연구소 전임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