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당한 갯내와 살갗을 간지럽히는 햇살을 품은 남양만 해풍이 좋은 6월 초 어느날, 화성시 서신면 백미리의 한 노인요양원에서 만난 전송이(18·비봉고 3년)양은 해풍에 사각사각 영그는 무공해 천일염 같았다.

남양만이 훤히 내려다보이는 바닷가 산 중턱에 자리잡은 이 요양원은 천주교 수원교구가 운영하는 '사강복음자리'. 송이양은 매주 일요일마다 이곳에서 천일염처럼 깨끗하고 순수한 웃음을 할아버지들에게 나눠주고 있다. 중학교 2학년 때 인연을 맺기 시작해 벌써 고3 수험생이 됐으니 이젠 자원봉사자라기보다 가족이나 다름없게 됐다. 산 아래 마을에서 이곳 사강복음자리까지는 걸어서 50분 거리. 구불구불 외진 산길을 그렇게 혼자서 5년 동안이나 걸어다녔다.

원장인 라파엘라 수녀는 "한 두 번 재미삼아, 자원봉사 점수 때문에 오다 그만두겠거니 생각했는데 송이양은 달랐다"면서 "이젠 살림꾼이 다 됐다"고 말했다.

요양원에 도착하자마자 송이양은 바지를 걷어올리고 집안 청소부터 시작했다. 거실, 할아버지 침소 등을 손걸래로 구석구석 닦아내고 내친김에 설거지도 깨끗이 해치웠다. 또 팔을 다쳐 깁스한 할아버지의 발을 씻기고 발뒤꿈치의 굳은 살까지 벗겨드렸다. 친손녀도 하기 힘든 노인들의 수발을 송이양은 군소리 한마디 없이 기꺼이 맡아 해낸다.

집안일 뿐만이 아니다. 머리에 질끈 수건을 둘러매고 밭일도 열심이다. 고3 여학생이라기보다는 영락없는 시골아낙의 품새다. 이렇게 한바탕 요양원 안팎을 휘젓고 난 뒤에는 거동이 불편한 할아버지들을 모시고 산책을 하기도 하고, 할아버지들의 옛 추억을 졸라 이야기 삼매경에 빠지기도 한다.

할아버지들에게도 이제 송이양은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내새끼(?)'다.

송이양은 "처음엔 학교에서 봉사활동을 하라기에 별 생각없이 왔는데 지금은 이곳이 너무 좋다"면서 "수녀님과 할아버지들을 만나면 기운이 난다"고 말했다. 그래서일까, 일주일에 한 번 늦잠자기에도 시간이 아까운 고3 수험생이지만 송이양의 표정에서 그런 부담감은 전혀 읽을 수 없었다. 오랜만에 시골 외갓집에 놀러온 손녀딸의 천진난만한 웃음이 꼭 이러할까.
송이양은 연방 싱글벙글이다.

라파엘라 원장은 이런 송이양에 대해 "정말 착하고 속 깊은 학생"이라고 말했다. 이어 라파엘라 원장은 송이양이 잠시 자리를 비운 틈을 타 "사실 고3 수험생이라 공부하기도 바쁠텐데 학업은 잘 챙기는지 걱정했다"면서 "5년 동안 매주 만나면서도 한 번도 내색을 하지 않아 몰랐는데 지난주엔가 우연히 송이가 항상 전교 1등을 한다는 얘기를 들었다"고 슬쩍 귀띔했다.

역사학과에 진학해 역사선생님이 되고 싶다는 소박한 꿈을 가진 소녀, 전송이양은 "대학가면 더 멀어지긴 하겠지만 오히려 고3 때보다 시간은 많겠죠. 더 자주 놀러올 수 있을 거예요"라고 6월 햇살에 사각사각 빛나는 새하얀 천일염처럼 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