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6월9일 오후 2시 남베트남의 옛 수도 호찌민에서 차로 2시간 거리인 휴양도시 붕따우. 점심시간이 지났지만 한국식당 앞에 미니버스 한대가 멈췄다. 좀전에 골프를 치고 온듯 골프웨어를 입은 10여 명의 한국 중년 남성들이 차에서 내려 늦은 점심을 들었다.
식사 뒤 이들이 탄 버스가 달려간 곳은 해안가에 있는 R호텔. 3층 건물에 객실이 그리 많지 않은 비교적 허름한 호텔이었다. 하지만 호텔 지하에 있는 가라오케는 왜 한국 관광객들이 이 호텔로 직행하는지를 설명해주고 있었다. 해가 지자 가라오케 간판에 불이 켜졌고, 한국인들을 태운 승합차가 속속 도착했다.
오후 7시가 조금 넘자 룸이 모두 차 가라오케 입구에서 한국인들이 줄을 서는 진풍경이 벌어졌다. 반면 룸에 들어간 이들의 술자리는 그리 오래가지 않았다. 1시간 정도 술을 마신 남성들은 현지 여성들을 한명씩 고위층 객실로 줄줄이 올라갔다. 동남아의 성매매가 대개 '올나이트'이듯 이들 역시 다음날 오전까지 '은밀한 밤'을 보낼 터. 관광가이드 A씨는 "휴일 전이나 토요일에 이 호텔 투숙객은 거의 한국인이라고 보면 된다"면서 "이런 날은 아가씨들이 일찍 팔려 가이드들끼리 자리를 잡기 위한 치열한 경쟁이 벌어진다"고 귀띔했다.
문틈으로 새어 나오는 노래는 모두 한국노래였다. 종업원은 서툰 영어로 "우리 가게에는 10대 후반의 싱싱한 아가씨들이 많다"면서 "호텔로 데려가면 추가요금 30달러가 붙으니까 여기 옆에 있는 방에서 자고 가면 된다"고 호객행위를 했다.
같은달 13일 오후 7시 필리핀 마닐라 A가라오케. 한국인 마마상(마담)이 있다고 알려진 곳이다. 가이드 뒤를 따라온 한국 관광객들의 발길이 끊임없이 이어졌다. 열린 문틈으로 관광객을 룸으로 들여보낸 뒤 입구에 둘러앉아 라면 등을 먹거나 가라오케 여성들과 농담 따먹기를 하고 있는 가이드들의 모습이 보였다. 포상연수차 마닐라에 왔다는 모 회사 직원들이 이곳에서 단체로 성매매에 나서는 장면을 취재하기 위해 입구에서 멀찍이 떨어져 주시했다. 몇시간 전 한 교민이 이들이 성매매를 할 것 같다고 제보를 했기 때문이다.
만약 당신의 남편이나 남자친구가 남자들끼리만 동남아로 떠날 계획을 세우고 있다면 일단은 의심하는 게 좋을 듯하다. 골프나 연수 등을 내세워도 결국 지향점은 하나다. 우리네 남성들의 동남아관광은 이것을 빼놓고는 완성되지 않는 것 같다. 성매매다. 지난 6월 초 캄보디아, 베트남, 필리핀 등 동남아 3개국에서 벌어지고 있는 한국 관광객들의 거침없는 성매매 현장을 밀착추적했다.
■ LA카페의 '위 아 더 월드'
LA카페가 미국 LA에 있다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필리핀 마닐라의 LA카페는 교민이나 유학생들에겐 이미 유명한 곳이고, 최근 관광객들 사이에서도 입소문을 타고 있다. 이곳에 오는 관광객의 목적도 똑같다. 다만 일방적으로 돈을 주고 하는 성매매보다 헌팅의 재미까지 즐기려는 사람들이 이 카페에 몰린다고 한다.
14일 오후 9시 찾은 LA카페 1층은 사람이 좀 많긴 했지만 여느 카페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하지만 2층으로 올라가자 상황은 달라졌다. 일단 입장료가 100페소였다. 테이블마다 현지 여성들과 부둥켜 안고 있는 외국인들로 가득 했다. 한쪽에선 라이브공연이 벌어졌지만 공연에 신경쓰는 사람은 별로 없어 보였다. 주로 여종업원들이 부킹을 해주고 있었는데 카페에 있던 현지 여성들도 매우 적극적이었다.
LA카페가 인기를 끌자 주변에 비슷한 영업방식을 도입한 카페들도 속속 생겨나고 있다. 이 카페들은 'LA카페식'이라며 밤거리를 헤매는 한국인들을 상대로 호객행위를 하고 있었다. 한 유학생은 "LA카페엔 한국인 뿐 아니라 미국, 일본, 유럽 등에서 온 외국 남성도 많다"며 "속된 말로 전 세계인이 하나(?)가 되는 것과 다르지 않다"고 혀를 찼다.
■ 동남아 공통은어 '백달러'
현지 가이드들에 따르면 누가 정한 건 아니지만 근 10년간 동남아에서 '성매매=100달러'라는 공식이 통용됐다. 한국인을 대상으로 한 이런 공식은 현지 성매매여성들에게도 널리 알려져 한국인에게 성매매를 제의할 땐 '백달러'라는 은어가 알게 모르게 사용된다고 한다. 기본(?)이 1천페소인 마닐라 LA카페에서도 한국인에겐 은근히 웃돈을 부르는 사례가 심심찮을 정도로 동남아에서 한국인의 성매매는 유명하다.
만약 가라오케 등에서 1인당 100달러인 성매매를 가이드가 안내할 경우엔 그 이상이 되곤 한다. 고정수입이 없는 가이드들에게도 커미션이 남는 성매매 알선은 거부할 수 없는 유혹일 수밖에 없다. 가이드가 안내할 경우 혹시 생길 지 모를 불상사를 미연에 예방할 수 있어 차라리 얼마 더 내고 안전을 선택하는 관광객들 또한 있다. 동남아 거의 대부분의 국가에서 성매매는 불법이기 때문이다.
가이드 B씨는 "업소와 호텔 등을 잘 아는 우리가 안내를 해서 엮어주면 아가씨들이 딴 짓을 해 손님이 피해를 보는 일은 있을 수 없다"며 "게다가 가이드를 통한 성매매는 엄격하게 비밀이 보장된다"고 털어놨다.
필리핀에서 인터뷰에 응한 현지여성 S(20)씨는 "1주일 내내 일해야 벌 돈을 하룻밤에 벌 수 있기 때문에 이 일을 쉽게 끊을 수 없다"며 "나도 그렇고 친구들도 그렇고 가라오케에 나간다는 걸 굳이 숨기지 않는다. 별로 부끄러울 것도 없다"고 당당히 말했다.
■ 성매매의 끝은
동남아 관광가이드들의 입을 통해 들은 한국인의 성매매는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광범위하게 이뤄지고 있었다.주말이면 한국인들로 미어터지는 베트남 붕따우 R호텔에선 일요일 아침식사를 한식으로 내놓고 있을 정도다.
모 연예인은 7박을 하는 동안 현지여성 7명을 방으로 불렀다는 소문도 돌고 있다. 심지어 부부동반 여행에서도 성매매는 빠지지 않는다.
한 가이드는 "지난해 한국의 한 기초단체 의원들이 다녀갔을 때 아주 쇼를 했다"며 "마치 007작전처럼 의원들의 파트너였던 현지여성들을 일일이 기억했다 술자리가 끝난 뒤 각 의원 방으로 한명씩 보내야 했다. 이런 건 의원들 서로서로는 물론, 같이 온 사람들까지도 절대로 몰라야 한다"고 말했다. 또 "한번은 중년부부 다섯 쌍이 같이 왔는데 남편들이 계속 눈치를 줘 부인들만 2시간짜리 마사지코스로 보냈다"며 "남편들은 당연히 가라오케로 직행했다"고 뒷얘기를 털어놨다.
또 다른 가이드는 "지난해에만 30여 차례 동남아 관광을 한 한국인 사업가도 있다"며 "얼마전에 왔을 땐 한국인 여성가이드가 현지여성들을 미리 물색, 그 사업가 일행이 머무는 동안 즐길 일정을 모두 맞춰놓았었다"고 말했다.
베트남의 한 교민은 "성에 굶주린 한국인이 우르르 몰려다니는 걸 볼 때마다 같은 한국인으로서 정말 쪽팔린다"고 한탄했다.
이런 우려가 헛되지 않게 동남아에서 성매매를 하다 적발된 한국인들은 잊을 만하면 매스컴을 장식하고 있다.지난 17일에도 베트남 하롱베이 관광에 나선 한국인 8명이 가이드의 소개로 현지 가라오케에 들른 뒤 여종업원들을 데리고 호텔에 갔다 경찰에 붙잡혔다. 이 관광객들은 상당액의 벌금을 물고 추방된 것으로 알려졌다.
동남아여행의 독버섯 성매매. 과연 그 끝은 어디일까. 이러다 정말 국가적인 개망신을 제대로 당하는 날이 머지 않은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