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항에서 차로 30분을 달려 도착한 곳은 다자이후(太宰府)시. 1천300년전 규슈 전체를 다스리던 관청의 터가 존재한다. 특별국가사적으로 지정됐다.
이 관청의 출발은 백제의 멸망에서 시작됐기 때문에 우리 민족사와 뗄 수 없는 관계를 지녔다. 백제가 나(신라)·당 연합군에 멸망한후 서기 663년, 나카노오에(中大兄) 태자는 백제 부흥군과 함께 2만5천여명의 병력을 이끌고 백촌강(白村江·금강 하구)에서 전투를 벌였으나 대패하고 만다. 이후 일본으로 쫓겨나면서 방어성을 세워 구축한 곳이 바로 다자이후다. 공원으로 복원된 관청 유적을 지나면 국민관광지 텐만구(天滿宮) 신사와 마주친다. 헤이안시대 '학문의 신'으로 불린 스가와라노미치자네(菅原道眞)를 모시고 있다.
지하 2층, 지상 5층에 국제경기가 가능한 축구장이 통째로 들어갈 정도의 넓이로 가장 높은 곳은 40m에 달한다. 아시아 각국의 문화교류사를 한 눈에 체험할 수 있다. 4층에 마련된 문화교류 전시실에서는 15~19세기의 전통 한국 도자기 코너가 마련됐다. 조선왕조시대 항아리, 접시, 병, 주전자 등 수십여점이 고향을 떠나 타국에서 후손을 맞아 아쉬움을 남긴다.
관광객이라면 누구나 쇼핑에 관심을 갖게 마련이다. 다시 시내로 발길을 돌려 '캐널시티(Canal City)'로 향한다. 총 길이 180m의 인공운하를 중심으로한 최신 상업시설로 호텔, 극장, 영화관, 상점, 사무실 등이 밀집됐다. 잠실 롯데월드를 2~3배 가량 확대한 것에 비교할 수 있다.
사무라이 문화로 불리는 일본. 그들은 세력 표시로 성을 지었다고 한다. 오사카성(大阪城), 나고야성(名古屋城)과 함께 3대 성의 하나로 1607년 완공된 구마모토성(熊本城)은 올해로 축성 400년을 맞았다.
임진왜란때 부산으로 쳐들어온 무사 가토 기요마사(加藤淸正)가 7년간의 전쟁을 끝내고 돌아가 쌓았다. 국내에 잘 알려진 도요토미 히데요시 수하의 무장으로 귀국 당시 데려간 조선의 기와공과 석공들을 현지에 동원시켰다. 본래 29개의 성문과 49개의 누각으로 구성됐으나 세이난(西南)전쟁 3일전 원인을 알 수 없는 화재로 대부분 불 탔다. 재건사업으로 1960년 본래 모습을 갖추고 있으며 회의장, 손님 접대 또는 성주의 가족들이 사용했던 혼마루 어전은 연말 완공될 예정이다.
구마모토 시내 남동쪽에 자리한 다쓰다 자연공원은 정겨움을 강조한 것이 특징이다. 한적한 공원 안에는 고찰과 옛 찻집이 손님을 기다리고 있다.
규슈 남측의 세계 최대 규모 칼데라(화산 함몰대) 아소산(阿蘇山)은 지금도 활동중이다. 일본이 지진으로 여전히 흔들리고 있다는 증거다. 웅대한 화산대는 구마모토와 오이타(大分) 두개의 현에 걸쳐 형성됐다. 주변으로 용암이 흘러내린 흔적들이 쉽게 발견된다. 수십만년의 세월을 거쳐 생겨난 활화산은 자욱한 연기를 내뿜고 있다. 쿠사센리, 고메즈카 등 산을 둘러싼 크고 작은 봉우리들 사이로 중앙의 나가다케 화구에서 자욱한 수증기가 연방 피어오른다. 그 깊이나 둘레를 가늠하기 힘들 정도로 커다란 분화구에는 푸른색의 물이 고였다. 끓어오르는 용암에 유황 냄새가 진동한다. 이 때문에 바람의 방향이 전망대로 불거나 분출되는 가스의 양이 많아지면 관람을 통제하는데 고지대여서 그런지 기상이변이 유난히 심하다. 하루에도 개방과 통제를 수차례 반복하는 바람에 운이 좋아야 실제 그 모습을 드러낸다. 분화구 내부 온도는 1천℃를 상회한다. 나무 한 그루 자라지 않는 지대(地帶)가 드넓게 펼쳐졌다.
산들로 둘러싸인 분지안에 아늑한 분위기의 마을이 조성됐다. 일본에서만 연간 400만명이 찾는다는 유휴인(湯布院). 고풍스런 민가와 거리마다 줄지은 상점들은 저마다 독특하다. 도시에서는 절대 접할 수 없다. 미술관과 갤러리, 카페가 많은 것이 마치 인사동을 연상케 한다. 유휴인의 얼굴격인 긴린코(金鱗湖)는 '물고기 비늘이 석양에 비춰져 빛나는 모양'이라고 해서 이름이 붙여졌다. 맑고 차가운 물이 솟아나는 호수지만 따뜻한 온천이 흘러들어 겨울에도 수온이 높다. 쌀쌀한 새벽녘에는 안개가 피어올라 한 폭의 그림을 연출한다. 한편에서 온천오리가 한가로운 시간을 보내고 그 옆에 남녀혼탕 '시탄유'가 과거 모습을 간직하고 있다. 풍부한 자연을 살린 고유의 숙박시설 료칸(旅館·전통여관)은 예스러움이 묻어난다. 시기를 예측하기 힘든 낡은 디자인의 가구와 다다미로 된 객실, 실내장식이 오히려 고급스럽다. 고급 호텔에 비해 결코 뒤지지 않는 서비스로 연중 고객이 끊이지 않으며 가격 또한 비싸지만 색다른 경험이 가능하다.
겨울이 아니어도 좋다. 규슈 제1의 온천타운 벳푸(別府). 멀리서 바라보면 도시 전체가 안개로 휩싸였다. 땅만 파면 온천이 나온다고 하니 그야말로 온천 천국이다. 하루에 솟아나는 수량이 13만7천㎘로 흔히 집에 있는 욕조라면 70만개를 가득 채우고도 남는 용량이다. 70% 가량은 사용하지 못한채 바다로 흘러들어 간다. 도시 명물로 초대형 호텔 스기노이가 꼽힌다. 1997년 한·일정상회담이 열린 곳으로 통 유리창으로 된 온천욕장에서는 시내와 바다 풍광을 함께 즐길 수 있다. 대전망 온천장 '타나유'는 남·여 각 300명씩 수용이 가능할 만큼 넓다. 호텔내 아쿠아비트는 실온 30℃, 수온 28℃를 유지하는 전천후형 실내 풀장으로 짜릿한 워터슬라이드 등 놀이시설은 젊은층에 인기가 높다.
탕의 바닥이 붉은 진흙으로 이뤄진 피(血)지옥 물은 피부병을 치료하는 연고로 사용된다. 벳푸의 온천은 일반 가정에서도 그 효과를 만끽할 수 있다. 분출되는 유황가스 위에 짚으로 만든 지붕을 덮으면 하얀 결정이 내려 앉는데 이 명반이 바로 '유노하나'라는 천연 입욕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