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바이칼박물관에서 바라본 바이칼호수.
춘원 이광수가 1933년 발표한 장편소설 '유정'의 첫 구절에는 이런 문장이 나온다.

"나는 바이칼 호수의 가을 물결을 바라보면서 이글을 쓰오. 고국서 칠천리. 이 바이칼 호수는 남북만리 날아다닌다는 기러기도 아니 오는 시베리아가 아니요?"

조국의 산과 들이 어둠의 적막에 사로잡혀 있던 일제강점기. 춘원은 과연 무슨 뜻으로 이 소설에 바이칼 호수를 배경으로 글을 썼을까? 아마 이광수는 일제시대의 억압속에서 우리 민족의 독립을 세계 최대 담수호인 바이칼호수에서 찾고자 했던 것은 아닐까. 우리 선조들의 슬픔과 애수를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는 러시아. 80여년의 시간을 건너뛰어 선열들의 '희로애락'을 다시한번 느끼며 바이칼호수, 이르쿠츠크, 앙가라강을 찾아갔다. <편집자주>

▲시베리아의 파리 /이르쿠츠크
 
 
천국제공항을 출발한지 4시간이 지날 무렵, 도착을 알리는 기내방송이 나온다. 모두가 잠들어있는 새벽시간 이르쿠츠크 국제공항에 도착했다. 버스를 타고 숙소로 향하는데, 순간 이곳으로 강제로 끌려온 우리 선조들의 생각에 마음 한 구석이 저려온다. 눈물을 흘리지 않으려고 입술을 꼭 깨물고 참는데, 순간 창문 밖으로 이슬이 맺힌다. 갑자기 하늘에서 비가 내린다. 후손들의 방문을 환영하는 선조들의 눈물이 빗물로 내리는 것 같았다. 그렇게 이르쿠츠크에서 첫날밤은 지나갔다.

이르쿠츠크는 옛날 시베리아의 마지막 땅이었다 해도 과언이 아닌 곳이다. 우랄산맥을 넘어 시베리아 벌판을 달려 바이칼 호수에 다다르면 바다 같은 호수 바이칼이 버티고 있어 더 이상 갈 수 없는 땅이 바로 이곳이다. 권좌에서 내쫓긴 황제, 혁명가, 죄수들은 가슴에 맺힌 한을 품고 동토의 땅 시베리아로 유배되었는데 그곳이 바로 이르쿠츠크인 것이다. 윤선도, 정약용, 조광조 등이 땅끝마을 남도, 그 소외된 땅에서 유배문화를 꽃피웠듯, 이르쿠츠크 또한 유배지라는 슬픈 역사의 탈을 벗고 문화의 도시로 새롭게 태어났다. 이르쿠츠크는 극동시베리아와 서시베리아를 연결시켜주는 곳으로 동시베리아의 경제적 중심지이자 바이칼 호수 관광의 배후 도시다.

예로부터 가장 축복받은 땅은 물과 불이 풍부하고 숲이 우거진 땅이다. 이 세 박자가 맞아 떨어진 땅이 바로 '시베리아의 파리' 이르쿠츠크이다.

 
 
  ▲ 바이칼호수 주변에서 수영을 즐기는 러시아인들.  
이르쿠츠크는 세계최대의 유전을 보유하고 있다. 매장량은 가스전의 확인 매장량 8억4천, 여기에다 잠재 매장량 12억을 합하면 세계 가스의 20%가 이르쿠츠크에서 생산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연간 1천800만에서 2천만의 원목을 생산해내고 풍부한 지하자원을 바탕으로 100만에 이르는 알루미늄, 석유, 석탄을 가공하는 공장들이 활발하게 가동되고 있다.

도착하자마자 내린 비는 아침까지 계속되는 가운데 둘째날 본격적인 이르쿠츠크 시내를 둘러봤다.

먼저 이르쿠츠크의 국영백화점을 방문했다. 비가 내리는 가운데 특이한 점을 발견했다. 시장 주변에 있는 러시아인 대부분이 우산을 쓰지 않고 길을 걷고 있었다. 현지 가이드에 따르면 이곳 러시아 사람들은 비는 하늘에서 내리는 축복이기 때문에 될 수 있으면 비를 그냥 맞는다고 했다. 문화적 차이를 느낄 수 있었다.

국영백화점은 백화점이라기 보다는 우리나라의 '밀리오레'나 '두타'와 비슷해 보였다. 백화점 1층에 들어서자 휴대폰 매장이 사람들의 시선을 끈다. 특히 SAMSUNG이라는 파란색 고딕체로 쓰여진 매장은 사람들로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었다. 이곳에서 삼성제품은 다른 가전회사 제품보다 고가의 가격에 팔리고 있는데 러시아 사람들은 삼성 휴대폰을 매우 좋아한단다. 머나먼 나라에서 자국의 대표기업을 보니 자부심과 뿌듯함이 밀려왔다.

이르쿠츠크는 지정학적으로 몽골, 중국, 북한과 가까워 이들 나라들과의 국경무역이 발달해 있다. 실제로 이르쿠츠크 역 국제선 매표창구에서는 평양행 열차표를 팔고 있고, 한국에 대한 관심 또한 극동의 다른 도시에 못지않다. 1990년대 초반 국교 수교 당시에는 한국에서 전세기가 운항될 정도였고, 이르쿠츠크 국립대학에는 한국어학과가 설치돼 있어 교환학생으로 이곳에 머무르고 있는 한국 학생도 상당수에 달하고 있다.

▲시베리아의 보석 /바이칼 호수
 
 
  ▲ 바이칼호수가 발원인 앙가라강  
원정 이틀째 '오매불망' 하던 시베리아의 보석 바이칼 호수를 만나러 유람선을 탔다. 선착장에 도착하자 비는 그치고 일행들을 반겨주는 반가운 햇살이 비추고 있었다.

유람선을 타고 1시간정도 나가자 파란색의 싱그러운 물결이 우리를 맞는다. 바로 바이칼 호수다. 터키어로 '풍부한 호수'를 의미하는 바이칼 호수는 전 세계 표면 담수량의 20%를 차지할 정도로 세계에서 제일 큰 담수호다.

최대 수심은 약 1천741m, 최대 투명도는 약 40m로 호수밑에 물고기들의 모습을 쉽게 볼 수 있다. 바이칼 호수는 시베리아의 보석으로 불리지만 최근에는 '시베리아의 진주'라는 또 다른 애칭을 가지고 있다. 이는 인공위성에서 바이칼을 내려다보면 '새파란 눈동자'처럼 빛난다고 해서 붙여졌다.

유람선에서 내려 호수 주변을 산책하다 곳곳에서 자연 파괴 현장을 목격할 수 있었다. 바이칼 호수도 공업화를 피해가기는 불가능해 보였다.

 
 
  ▲ 바이칼호수 주변도 난개발로 몸살을 앓고있다  
     
호수 주변에 제지공장이 들어서고 철도관련 공장이 건설되기 시작하면서 이곳 환경도 서서히 멍들어가고 있다.

순간 어느 러시아 작가의 말이 머릿속을 맴돈다. "우리는 우리의 고향을 파괴하고 있다, 바이칼 호수는 우리 영혼의 일부이다." 어찌 바이칼 호수가 러시아인들만의 영혼이겠는가. 여기에는 우리조상들의 피와 눈물도 흐르고 있을 것이다. 바이칼 호수는 우리 한국인들의 영혼을 품고 오늘도 도도하게 흐르고 있을 것이다.

바이칼 호수에는 '샤먼바위'라 불리는 곳이 있다. 옛날 러시아 인들은 이 샤먼바위에서 바이칼 신에게 제사를 드리는 의식을 치렀을뿐 아니라, 죄를 지은 이를 해질녘에 바위 위에 올려놓고 다음날 아침에 가 보아 아무도 없으면 바이칼 신이 수장시킨 것이고, 만약 살아있다면 바이칼 신이 무죄를 인정한 것이라 해 살려주었다고 한다. 샤먼바위는 바이칼 호수 동쪽에 조그마하게 외로이 서 있다.

리스트비앙카에 위치한 바이칼 호수 박물관에 가면, 이처럼 재밌는 이야깃거리들 뿐만 아니라 바이칼 호의 모든 것을 자세하게 살펴볼 수가 있고, 이곳을 다녀간 이들의 감상이 적힌 방명록도 열람할 수 있다. 방명록에는 한글도 많이 기록돼 있어 역시 이곳이 우리 한민족과는 떼려야 뗄 수 없는 장소임을 느낄 수 있었다.

 
 
  ▲ 바이칼호수로 가는 유람선  
방명록을 살펴보다 눈에 띄는 문장이 들어왔다. 어느 한국인이 적은 글인데 "평생 안고 온 숙제를 이제야 푼 기분입니다"라고 적힌 글을 보며 왜 이 한국인은 "바이칼 호수를 평생 안고 온 숙제로 여겼을까?"라는 궁금증이 생긴다. 그는 아마도 이곳을 직접 방문해 조금이나마 조상들에게 보답을 할 수 있어서 이런 말을 남기지는 않았을까….

이제 바이칼 호수를 뒤로하고 앙가라 강으로 자리를 옮길 시간이 됐다. 위대한 바이칼 신이시여 다시 만나는 날까지 부디 안녕히 잘 있기를.

▲시베리아의 젊음 /앙가라강
가라강은 길이 1천825㎞, 유역면적 105만6천㎢이다. 바이칼호에서 발원하는 유일한 강으로, 이르쿠츠크와 크라스노야르스크 지방의 경계를 북서쪽으로 흘러내려, 예니세이강과 합류한다.

앙가라강에 도착하니 알렉산드르 3세 동상이 이곳을 지키고 있었다. 알렉산드르 3세는 시베리아 횡단열차를 만든 왕으로 지금도 많은 러시아 사람들에게 존경과 사랑을 받고 있는 왕이다.

 
 
  ▲ 바이칼호수 원주민 부럇트족  
 
앙가라 강에 황혼이 물들면 고색 창연한 호수 바이칼과는 다른 풍경이 연출된다.

맥주병과 보드카를 제각기 손에 든 젊은이들이 노천 노래방과 디스코텍에 모여 신나게 음악에 맞춰 몸을 흔들어댄다. 분명 앙가라 강은 바이칼 호수와는 다른 젊음과 역동성을 느낄 수 있었는데, 이 역동성이 러시아의 밝은 미래를 약속하는 것 같았다.

구 소련 체제하의 공산주의 붉은이데올로기를 벗어던진 러시아, 바이칼의 맑은 물과, 이르쿠츠크의 맑은 하늘, 앙가라강의 맑은 정신이 더욱 아름답게 보이는 까닭은 러시아인들의 피끓는 정의와 불 같은 사랑이 자연과 더불어 숨쉬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