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2일, 서울 삼청동의 '갤러리 진선'을 찾았다. 이날 이곳은 기획전으로 '디자인+북아트'展 이 열리고 있었다. 전시된 '북아트' 작품을 찬찬히 보면서 먼저 드는 생각은 '이것들도 책이라고 부를 수 있을까'였다. 네모 반듯한 모양의 책이 아닌 생소한 형태의 작품들이 "고정관념을 깨"라고 내게 주문하는 것 같았다.

윤여웅씨의 '접근-사라짐'은 책 페이지마다 사진이 가득 채워져 있다. 특이한 건 한 페이지 밑에는 다른 페이지가 붙어있는데, 밑에 있는 페이지를 펼친후 책을 세우면 하나의 새로운 공간이 생기는 것. 흔히 생각하던 2차원적인 책이 아니라, 3차원으로 굉장히 입체감 있는 작품으로 책이 재탄생한다. 인진성씨의 'Margin'은 책 속의 또 하나의 책이 들어있다. '북아트란 예쁘게 제본된 형식의 책일 것'으로 상상했던 내 좁은 생각이 산산조각나는 순간이다.

북아트는 문학과 미술이 결합된 형태로서 프랑스어로는 '미술가의 책(livre d'artiste)'이라고도 한다. 북아트의 선구격으로는 중세 성경 필사본에 삽입된 삽화를 들 수 있다. 현대에 들어서면서 북아트의 개념은 '미술가의 책'에서보다 확장되어 책의 형식을 취한 시각미술 작품을 총칭하는 용어로서 통용되고 있다. 북아트 작품은 책이 예술을 만났을 때 어디까지 아름다워질 수 있는지, 또 얼마나 다양한 형태로 거듭날 수 있는지 알 수 있게 해준다. 북아트의 형식은 글자 없이 형상만으로 구성될 수도 있고, 반대로 문자만으로도 이루어지기도 한다. 또한 일시적인 퍼포먼스나 설치 미술을 기록한 기록 형식을 취하기도 한다. 심지어 북아트 속 텍스트의 의미는 읽는 텍스트가 아니라 감상하는 작품의 일부다. 그만큼 북아트에는 장르와 소재의 제한이 없다. 어떤 형태로 표현되더라도 그것은 모두 작가의 생각을 담은 한 권의 책인 것이다. '책은 출판사에서 만드는 것'이라는 고정관념을 깨고, 자신의 경험이나 상상을 엮어내 세상에 하나 뿐인 책을 만드는 것. 그것이 북아트다.

따라서 북아트는 소수의 예술가들만의 전유물이 아니다. 누구나 자기만의 생각을 자기만의 책으로 표현해낼 수 있다면 그것이 진정한 북아트인 것. 어린이들이라면 동심이라든가 천진난만한 생각들을, 프로페셔널한 작가라면 작가의 깊이있는 내면세계가, 아마추어 작가라면 내가 직접 찍은 사진을 붙여서 나의 사진첩을 만들어도 굉장히 재미있는 북아트 작품을 만들 수 있다. 왜냐하면 좋은 북아트란 자기가 생각하는 이미지를 굉장히 함축적으로 메시지를 강하게 전달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부가가치 높은 새로운 예술 나만의 책 만들며 희열

▲ 북아티스트 김나래
"엄마한테 젖병이 물린 후부터 죽을 때까지 우리 주위에 널려있는 게 책이거든요. 그렇기 때문에 그 책이라는 것에 사람들은 항상 동경과 애정이 있어요. 그 형식을 빌려서 북아트를 하기 때문에 모든 사람들이 쉽게 공감하거나 친밀감을 가질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북아티스트 김나래(36)씨는 "친근감 있는 소재인 책을 가지고 내가 직접 작품을 만드는 과정에서 굉장히 희열을 느낀다"며 "그것이 바로 북아트에 빠져들게 된 매력"이라고 말했다. 김씨 말대로 북아트는 단지 '지식을 전달하기 위한 매체가 아닌 부가가치가 높은 새로운 예술' 장르의 하나로 인정받고 있다.

하지만 이같은 '북아트'의 비상(飛上)이 '책의 위상 추락'으로 촉발됐다는 점은 아이러니하다. 대량 생산으로 인해, 요즘은 누구나 책을 쉽게 손에 넣을 수 있고, 단시간에 폐기처분한다. 김씨는 "북아트의 등장은 대량 복제에 대한 반기, 수공 제작으로 책의 값어치를 높이고 희소성을 복원하려는 시도, 지난 시절의 향수와 인간미를 느껴보고 싶은 고독한 현대인의 욕구에도 어느 정도 힘입은 바 크다"고 말했다.

김씨는 앞으로 사람들에게 북아트를 많이 알리는 게 목표라고 밝혔다. "에드가 루스차가 이런 말을 했어요. 허름한 시골 여관방의 책상 위에서도 흔히 발견할 수 있는 책이 북아트였으면 좋겠다고요. 좋은 북아트페어를 많이 열어서, 보다 많은 분들이 실생활에서 다양하게 활용되는 아름다운 책, '북아트'를 접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도우미싸이트

1. 북*나*만(cafe.naver.com/handmadebook)=네이버에서 가장 활성화 된 북아트 카페 '북*나*만'은 나만의 책과 노트를 만드는 사람들이라는 의미의 동호회. 아마추어인들이 중심이 된 모임으로 소소한 재료 구입이나 기초적인 북아트 고민까지 함께 나눌 수 있는 곳이다.

2. 민지수의 북아트(www.bookatelier.com)=북아트 전문 강사 민지수씨의 홈페이지로 강의 일정과 북아트 주문 제작 문의 요령이 소개되어 있다. 이외에도 작업실 스터디 노트에 눈여겨 볼만한 고급 기법들이 소개되어 있으니 놓치지 말 것. 국내외 북아트 관련 사이트들이 링크되어 있는 것도 특징이다.

3. 유림의 북아트(www.bookart.net)=영국 런던 예술대학교를 졸업한 유림의 독특한 북갤러리. 천연가죽, 오래된 활자 등을 활용한 그녀만의 작품들을 만날 수 있다. 각종 매체를 통한 인터뷰 기사를 홈페이지에 올려 두어 다양한 볼거리를 마련해 두었다.

4. 세상에서 하나뿐인 책만들기(handmadebook.cyworld.com)=3천500여명의 회원수를 자랑하는 북아트 동호회로 커뮤니티 활동이 두드러지는 곳이다. 질문 후 댓글도 빠른 편이며 정모도 종종 이루어지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아마추어 회원들의 북아트 작품 감상은 물론 여러 북아트 강좌 소개도 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