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초 '4강 신화' 재현을 목표로 국제축구연맹(FIFA) 17세이하(U-17) 월드컵에 나섰던 한국 청소년대표팀이 홈 경기장의 이점을 살리지 못하고 예선 탈락하는 슬픔을 맛봤다.
한국은 토고와 조별리그 A조 최종전에서 2-1 역전승을 거두며 1승2패를 기록, 조 3위 4팀에게 주어지는 와일드카드에 실낱같은 희망을 가졌지만 16강 진출에 실패했다. 과연 실패의 원인은 무엇일까. 축구전문가들은 2년7개월의 준비 과정을 거친 대표팀이 개최국임에도 조별리그 통과도 실패하며 망신을 당한 데는 구조적인 문제가 내포돼 있다는 지적을 내놓았다.
▲뒷걸음질치는 한국 축구
한국 축구는 2002년 한·일 월드컵에서 4강 신화를 기록하면서 세계로 도약할 일대 전기를 마련했으나 이후 상승세를 이어가지 못했다. 오히려 최근에는 국제 무대에서 경쟁력을 점점 잃어가고 있는 모습까지 보이고 있다. 2002년 16세 이하(U-16) 대표팀과 19세 이하(U-19) 대표팀이 아시아선수권대회에서 연거푸 우승을 차지할 때만 해도 월드컵 4강의 여세를 몰아가는 듯 했다. 하지만 이후 중흥의 기회를 살려나가지 못하고 FIFA나 아시아축구연맹(AFC)이 주관하는 주요 국제 대회에서 번번이 눈물을 흘렸다.
2004년 아테네올림픽에서 사상 처음으로 8강에 올랐고 그해 U-19 아시아선수권대회에서 2회 연속 정상에 오른 것을 제외하고는 굵직굵직한 대회에서 기대 이하의 성적으로 축구팬을 실망시켰다. 특히 2005년부터는 우승컵을 들어 올린 적이 없다. 맹주를 자처했던 아시아 무대에서 조차 우승과 인연을 맺지 못했다. 2006년 U-19 아시아선수권대회와 2007년 아시안컵에서 3위를 차지한 것이 최고 성적이다.
A대표팀은 2004 아시안컵에서 8강에 머물렀고 2006년 독일 월드컵 본선에선 1승1무1패로 조별리그 통과에 실패했다. 47년 만에 우승을 노린 2007 아시안컵에선 8강부터 세 경기 연속 무득점에 그치며 3위로 다음 대회 본선 직행권을 확보하는데 만족해야 했다.
아시안게임에서도 2002년 부산대회선 3위에 머물렀고 2006년 도하 대회에선 4위로 노메달의 수모를 당했다. U-20 대표팀은 2005년 네덜란드 월드컵에서 1승2패로 조별리그에서 탈락했고 2007년 캐나다 월드컵에서도 2무1패로 16강 진출이 좌절됐다. 기대를 모았던 U-17 대표팀도 결국 한국 축구에 어두운 그림자만 더했다.
▲학원 축구의 한계
전문가들은 17세 이하 선수들을 축구협회가 선발했다는 점과 지난 2005년말 드래프트제가 부활된 점이 미래 한국 축구 경기력 저하 문제에 큰 영향을 미쳤다는 결론을 내렸다.
지난달 캐나다에서 열린 20세 이하(U-20) 월드컵에서 한국은 조별리그를 통과하지 못했지만 나름대로 가능성을 봤다. 주축은 대부분 중학교를 졸업하자마자 프로구단에 입단해 체계적인 훈련을 받은 선수들이었다.
하지만 이번 17세 이하 선수들은 확연히 달랐다. 프로구단의 만성 적자를 타개할 대책으로 드래프트제가 부활하면서 기존에 유소년팀을 활발하게 운영해 온 일부 구단은 더 이상 유소년에 투자할 이유가 없어졌고, 이 때문에 대표 21명 가운데 프로에 속한 선수는 주전 골키퍼 김승규(울산) 하나 뿐이고 나머지는 모두 고등학교 소속이었다. 프로에 입단해 그 나이에 맞는 체계적인 훈련을 받으며 2군 리그에서 꾸준한 경험을 쌓아온 선수는 사실상 없는 셈이다.
또 고교 축구부 소속으로 고만고만한 기량을 가진 동료들과 이기기 위한 경기 만을 치르다보니 남미와 유럽, 아프리카 등 다른 대륙 팀과 비교해 경험과 개인기 등에서 현저한 차이가 날 수밖에 없었다는 게 전문가들의 의견이다.
▲사령탑 노련함 미흡
한국 축구 각급 대표팀 감독을 보면 성인팀은 외국인이나 가장 경험 많은 감독이 지휘봉을 잡고 있는데 비해 연령대가 낮아질수록 사령탑의 연령도 비례해 낮아지고 있다. 하지만 유소년 축구를 벗어나는 시점인 17세 이하 대표팀 사령탑은 가장 경험이 풍부한 노련한 인물을 감독 자리에 앉혀야 한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사실 이번 대회에서 한국 코칭스태프는 경험 부족으로 많은 문제를 드러냈다. 장기간 준비한 만큼 가장 큰 목표는 성적이었는데 조별리그 3경기를 치르면서 16강에 오르기 위한 전략이 미흡했다. 박경훈 감독은 페루와 첫 경기를 마친 뒤 측면 공략 실패를 털어놨고 비길 수 있었음에도 공세만 펴다 역습에 무너진 코스타리카전도 안타까워했다.
축구협회 기술위원회가 제대로 역할을 수행했는 지도 살펴볼 문제다. 기술위원회는 대표팀 코칭스태프를 선임하고 감독이 선발한 선수를 추인하는 동시에 대표팀의 목표를 정확히 세워주고 상대팀 분석으로 전략을 짜는데 도움을 줘야하지만 임무 수행을 잘 해냈는지는 의문이다. 게다가 기술위원회는 경기전 분석에서 토고전을 제외한 나머지 페루와 코스타리카전을 이길 수 있는 팀으로 꼽았는데 결과는 정반대로 나타났다. 지난해 독일월드컵과 최근 아시안컵에 나선 성인대표팀에 치중하느라 17세 이하 대표팀을 신경쓰지 못했을 수도 있다. 기술위원회가 세계축구의 트렌드를 정확히 읽고 상대 전력 분석과 우리의 전략을 잘 해줬는지를 짚고 넘어가야 한다는 지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