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재교육이 사설학원에서 만들어지는 '가짜영재'들로 본래취지를 잃어가고 있는 가운데 특별한 능력을 타고난 진짜영재들이 더욱 눈에 띄인다. 왼쪽부터 '천재소년' 송유근·'13살작가' 김활· '한자신동' 최서린.
대한민국 학생들의 문제해결능력은 세계최고수준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2000년도 '학업성취도 국제비교연구(PISA)'를 실시한 결과 27개 회원국 중 한국 학생들이 과학소양조사에서 1위를 차지했다. 그러나 국가별 상위 5% 집단의 점수 비교에서는 5위를 차지해 다른 나라에 비해 최상위권 학생들 수준이 상대적으로 뒤처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같은 결과는 평준화를 지향하는 공교육이 영재를 범재로 끌어내리고 있기 때문이라는 비판으로 이어졌고, 정부는 지난 2002년부터 특화된 '영재교육'을 실시해 공교육의 약점보완을 시도했다. 그러나 '영재'라는 화두는 사교육과 접목되자마자 가뜩이나 뜨거운 한국 부모의 '교육열'에 불을 댕겼다. 한국의 '영재교육'은 사교육과 만나면서 특별한 능력을 타고난 인재들의 능력 계발을 돕는다는 본래 취지에서 한참 멀어진 것이다.

#'영재교육'을 표방한 학원들 속속 등장: 영재센터나 특목고 입시를 위한 선행학습이 전부
영재교육진흥법 5조에 따르면 영재란 '재능이 뛰어난 사람으로서 타고난 잠재력을 계발하기 위하여 특별한 교육을 필요로 하는 자'를 말한다.

개별 능력과 소질에 맞는 교육을 받을 수 있도록 특화된 교육이 영재교육이다. 하지만 사설학원들이 외치는 영재교육은 '각 개인의 능력과 소질에 맞는 방법'으로 나아가기 보다는 또래보다 어려운 수준의 내용을 먼저 배우는 '선행학습'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강남 못지않은 교육열로 유명한 평촌의 A영재학원의 경우, '수학·과학 영재만들기 프로젝트'라는 영재반을 따로 운영하고 있었다.

A학원의 경우 수학과 과학영재를 위해 수학경시반과 과학경시반을 준비해놓고 초·중·고 별로 반을 나눠놓았다. 두 경시반 모두 각종 경시대회에 입상하기 위한 선행심화학습을 하고 있다. 중학생의 경우 각 반마다 진도의 차이는 있지만 고등학생이 배우는 수학II까지 배우고 있는 상황이다.

또한 중학과학은 물론 대학수준의 일반 물리, 화학, 생물, 지학을 선행학습하며 영재센터에서 사용하는 과학경시반의 특수교재들을 수업교재로 이용하고 있다.
학원들은 '선행학습을 통해 특목고생 다수 배출'이라고 광고하지만 선행학습의 부작용도 만만치 않다.

지난해 과학고에 입학한 신모(17)군은 입학한 지 얼마 안돼 자퇴했다. 신군은 자퇴이유에 대해 "이미 중학교때 학원영재반에서 과학고에서 배울 모든 것을 배워 더이상 학교 수업에 흥미를 느낄 수 없었다"며 "지금은 혼자서 수능준비를 하고 있다"고 밝혔다.

일산에서 영재학원의 교사로 일하는 윤모(27)씨는 학원들이 선행학습을 강조하는 이유에 대해 "과학고에 지원하려면 경시대회 입상경력이 필요하기 때문에 수학경시대회 수준의 선행학습은 필수"라며 "영재반의 최종목적은 과학고 입학일 뿐 다른 창의력 수업은 생각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조기영재교육의 열풍: 누구나 영재가 될 수 있다?
영재교육의 중요성과 함께 부각된 것이 영재성의 발견 시기이다.
특히 영재의 경우는 또래의 학습속도보다 빨라 유치원에서 친구들과 받는 교육에 흥미를 잃어 문제아 또는 부적응아로 오해받을 수 있기 때문에 영재들은 그에 맞는 교육을 제공하기 위해서라도 조기 발견과 교육이 필요하다.

영재성의 조기발견 및 적절한 교육기회제공을 위해 시작된 조기교육이 현재 그 범위가 보통아이들까지로 확대되고 과도해지면서 과잉논란이 일고 있다.

영유아를 대상으로 한 영재조기교육의 바람이 불면서 조기교육 프로그램을 갖춘 사설 학원들은 '어릴때 창의성을 키워야 한다','영재는 후천적 교육으로 길러질 수 있다' 등의 문구를 내세우며 부모들의 교육심리를 자극하고 있다.

7살·4살 두 자녀를 둔 분당에 사는 주부 이모(32)씨는 "내 아이도 가르치면 영재가 될 수 있다는 말에 혹하는 것이 사실"이라며 "우리아이의 영재성이 키워지길 바라는 마음으로 전문 유치원에 보낸다"고 말했다.

그러나 유아교육 전문가들은 영재성과 창의력 계발을 목적으로 한 사설교육기관들이 얼마나 전문성을 갖고 있을지 의문이며, 지식 주입식 영유아 조기영재교육은 오히려 아이들의 스트레스를 높일수 있다고 지적한다.

서울에서 유치원을 운영하는 정모(47·여)씨도 "유치원에서 영재교육을 하더라도 전문성을 갖춘 교사를 확보하기 어렵다"며 "대부분의 유치원에서 하는 영재교육은 보편적인 수준을 과대포장한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동덕여자대학교의 우남희 교수가 일선 현장의 유치원 원장들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 조기교육이 유아들의 창의성에 도움을 준다는 질문에 '보통'과 '그렇지 않다'라는 대답이 84%가 넘었고, 아이들이 조기교육을 받을때 스트레스를 받는다는 대답이 67%에 달했다.

한국과학영재지원정보센터 회장을 맡고 있는 김명환 교수는 "무조건 수준높고 어려운것을 배우는 것이 조기영재교육이 아님에도 학부모들이 오해하고 있는 측면이 있다"며 "아이들이 자연스럽게 배울 수 있는 환경을 마련해 주는 것이 중요하다"고 지적했다.

영재는 평균적인 범주에서 벗어난 특수아동이라고 할 수 있다. 지능적 측면에서 아래 부분을 차지하는 특수아동이 학습 부진아라고 한다면 위 부분이 영재라고 본다. 부진아에게 다른 교육적인 배려가 필요한 것처럼 영재들에게도 특별한 배려가 필요하다.

특수교육의 한 분야인 영재교육에는 전문적인 인력과 프로그램이 필요하다. 하지만 영재반을 운영하는 일선 학원과 유치원들이 외국의 방식을 단순 도입하는 등 전문성을 제대로 갖추지 못한 면이 많다는 측면에서 이들이 도입하는 각종 영재교육 방식을 전부 신뢰할 수는 없다.

또한 더 큰 문제는 사교육시장에서 '후천적 교육을 통한 영재성 발견'을 강조하다보니 보통아이들도 조기교육, 선행학습을 받고, 따라가지 못할 경우 정신적 스트레스를 받을 수 있다는 점이다.

김 교수는 "교육은 항상 교육받을 학습자의 입장에서 바라봐야 한다. 영재교육도 개인의 입장에서 타고난 능력을 올바르게 파악하고 지도하는 것이 최선"이라며 "영재가 아닌 아이에게 억지로 교육을 통해 영재로 만들려는 욕심이 사교육을 부추기고 있어 이를 막을 방편이 필요하며 한편으로는 교육적인 기회가 부족한 영재가 제도권 안으로 들어올 수 있도록 유도하는 정책이 시급하다"고 조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