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4일 일본이 달 탐사위성 '가구야'를 성공적으로 발사했다. 이에 질세라 중국은 오는 10월께 달 탐사선 '창어 1호', 인도는 내년 4월께 탐사위성 '찬드라얀 1호'를 발사할 예정으로 각국이 우주 항공 개발에 열을 올리고 있는 것이다. 이에비해 국내의 우주항공 기술은 아직 걸음마 단계로 선진국에 비해 10여년은 훨씬 뒤처진 상태다.

   하지만 10여년 전 우주 항공 분야의 가능성을 내다보고 인천에 우주항공공학 연구센터를 건립하려던 계획을 구상한 이가 있다. 바로 항공 유체공학의 세계적 권위자인 장극(94)박사다.
그의 의지가 실현됐다면 지금 인천은 우주항공 연구 분야의 기지로 한 몫을 하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1997년께 인천대학교 석좌교수로 오게 된 장 박사는 인천 영종도에 국제공항이 들어서는 것을 계기로 이곳을 항공분야 기지로 발전시키려는 포부를 가졌다. 그와 뜻을 같이했던 김재관 (74)전 인천대학교 교수는 "장 박사는 공항은 비행기가 타고 내리는 것에 그치는 것이 아니므로 연관된 산업과 인재를 키우는 것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고 전했다. 비행기 수리·정비에서부터 제작 단계에 이르는 항공 기술자를 양성해야 하는 것에서 더 나아가 미래 우주 항공을 육성시킬 시기라는 것을 강조했다는 것이다.

   공항과 인접한 인천에 우주항공 관련 학과나 전문가 양성기관이 없으면 어느새 기술에서 앞선 외국인들이 와서 이곳을 차지할 수밖에 없게 된다고 우려했단다.

   때마침 인천대학교에서 영종도 남서쪽에 7만여평의 부지가 있던 것에 착안, 이곳을 공항과 연계시킨 우주항공공학 연구의 중심지로 만드는 것을 제안했다고 한다. 낙후된 분야인 우주항공공학을 인천대학교가 독자적으로 발전시키기에 적합한 분야라는 판단도 있었다. 그는 미국 워싱턴 등지에서 쌓은 항공 관련의 성과와 지식 등을 활용해 지원하겠다는 적극적인 의지를 보였다. 하지만 장 박사의 이런 구상은 현실로 이뤄지지는 못했다. 당시 국내에서는 우주항공분야에 대한 관심이나 지원이 미흡했던 것이다. 김 교수 또한 이에 대한 안타까움이 컸던지 2년 전에도 장 박사가 있는 미국 워싱턴에 찾아가 연구 센터 건립 등 인천에서 우주 항공공학을 발전시킬 수 있는 방안에 대해 조언을 구하기도 했다. 

▲ 장극 박사가 다른 학자들과 연구하고 있는 사진
   장 박사는 1985년에 '세계과학기행'이라는 책에서 '내가 일본과 자유중국을 돌아보고 느낀 바로는 항공 분야에 관해서는 우리나라가 많이 뒤떨어져 있다는 점이다. 특히 일본은 전자·전기 분야와 자동화 분야에서의 앞선 기술과 생산력을 바탕으로 머지 않아 항공으로도 세계를 석권하려는 것 같았다. 따라서 우리들도 항공 분야에 더 많은 힘과 노력을 기울여야 할 때가 아닌가 한다'고 서술했다.

   항공분야에서 세계적인 추앙을 받았지만 정작 고국에서는 이 분야의 연구가 미흡한 것, 본인이 국내의 항공발전에 더 힘쓰지 못한 것에 대한 아쉬움이 크게 남아있는 듯했다.

   지금은 미국 워싱턴에 있는 고급 양로원 '실버스프링'에 부인 민화식(81)씨와 함께 살고 있는 장 박사.

   지난 8월께 그를 만나러 갔다는 카이스트 경제학과 김원준(37) 교수는 "최근에 인천이 발전하고 있는 것에 대해 말씀드렸더니 너무나 기뻐하시면서 꼭 한번 가보고 싶다고 하셨다"며 "장 박사님이 미국에서 항공우주 분야에 선구자적 역할을 하셨고 국내에서는 이 분야의 최초다. 하지만 국내에서 우주항공 연구가 시작된 지 10여년밖에 되지 않아서인지 그의 업적에 비해 제대로 알려지지 않은 부분이 크다"고 아쉬움을 표했다.

   실제로 서울대학교 대학원에 '과학사 및 과학철학'과정이 있었지만 이곳에서도 그의 활동, 업적에 대해 자세히 알기는 어려울 것이라는 답변만 나왔다. 이 대학 임종태 교수는 "국내 근·현대 과학사에 대한 연구가 부족한데다 특히 항공·유체공학 부문에는 더욱 그렇다"면서 "장극 박사에 대해서 유체공학의 선구자라는 것 이외에는 그에 대해 알기는 힘들 것"이라고 했다. 마찬가지로 그가 잠시 초빙교수로 몸 담았던 인천대학교와 카이스트(1979~1990·당시 한국과학기술원)에서도 초빙교수에 대한 기록은 관리하지 않는데다 당시에 있던 원로 교수들은 이미 은퇴를 한 상태라 알지 못한다고 했다.

   인천에서 태어난 세계적인 과학자이지만 정작 국내에서는 그에 대해 소홀히 하고 있다는 것에 그를 아는 이들은 안타까워하고 있었다. 그의 활동 대부분이 해외에서 이뤄졌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인천 중구 송학동에서 태어난 그는 경기고등학교 졸업 후 바로 국내를 떠나 수십년을 외국에서 지내왔던 것이다. 그는 일본 경성제국대학 의예과를 중도 퇴학하고 공학 쪽으로 진로를 바꿔 독일 베를린 공대 항공공학과를 들어갔다. 수학의 천재로 유명해지면서 독일정부로부터 장학금을 받았다. 독일베를린 국립공과 대학을 졸업하려면 대체로 7~8년이 걸리지만 그는 5년만에 졸업했다. 그에 대해 '한국의 천재'라는 수식어가 붙어다녔다.

   졸업 후 국내로 들어오려 했지만 2차 세계대전 등으로 인해 국내로 쉽게 들어오지 못하는 등의 우여곡절을 겪었야만 했단다. 그 뒤로 스위스 국립공대 항공공학과, 미국 뉴욕대, 하버드대 노트르담대 등에서 석·박사 학위를 받았고 미국 가톨릭 대학교에서 30여년간 교수로 재직하며 이 분야의 연구에 전념해왔다. 그가 쓴 '세계과학기행'이라는 책의 제목처럼 그는 미국, 스페인, 멕시코, 러시아, 일본 등 전세계를 돌며 항공공학과 관련한 강연을 했다.

▲ 장극 박사 가족사진
   그가 남긴 가장 큰 업적은 바로 유체 역학 부문이다. 그가 저술한 3권의 책이 그를 전세계적으로 주목받게 했다.

   1970년에 낸 '유체의 흐름이 표면에서 분리되는 현상(유동의 박리)'이라는 책을 시작으로 1976년 '유체 흐름 분리의 조종(유동박리의 제어)', 1983년 '최신 전개된 유동의 박리'라는 책을 냄으로써 이 분야에 큰 업적을 남긴 것이다. 그가 쓴 책은 러시아어, 스페인어 등 수개 국어로 번역·출판돼 곳곳에서 절판되는 한편, 스페인, 루마니아, 러시아, 일본 등 12개국의 학술기관과 대학에서 초청돼 강의와 연구활동을 해왔다.

   한편 장 박사는 세계 곳곳의 교육 제도를 파악하고 독일의 융커스 항공기 제작회사의 기사로 활동하면서 이론과 실무가 겸비된 교육 방식에 대한 필요성을 절감했다고 한다.

   김재관 교수는 "국내 대학에서는 이론위주로 교육하는데 반해 장 박사님은 카이스트에서 학생들을 가르칠 때 실제로 비행기를 만드는 것을 지도하는 등 실질적인 교육을 강조하셨다"고 했다. 이는 공장에서의 실습과정이 필수로 돼 있는 독일의 대학 제도를 통해 그가 느낀 교육 방식이다. 그 곳에서는 학생이 만든 비행기 도면이 실제로 만들어질 수 있어야만 졸업이 가능했다고 한다. 김 교수는 "미래의 발전은 항공분야에서 좌우되는데 국내에서는 이에 대한 인식이 부족하다"며 "항공분야에 대한 범정부차원의 지원 확대와 인재 육성이 어느 때보다 시급하다"고 밝혔다.

<윤문영기자·moono7@kyeongi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