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강점기와 해방기, 인천 관객들이 공연을 보는 안목은 상당했다.

   전국을 무대로 악극을 공연하면서 '흥행제조기'로 명성을 날렸던 김석민(金石民) 단장(전 한국예술문화진흥회장)은 인천 출신인 김양수씨에게 다음과 같이 말했다고 한다.

   "우리는 새로 연습한 악극을 무대에 올리기 전 인천 애관을 찾았어요. 악극을 본 인천 관객들 반응이 좋으면 다른 지역도 마찬가지였거든요. 그래서 애관을 찾은 관객들이 차가운 반응을 보일 때면, 단원들은 근처에 있는 여관에 방을 잡고 악극을 새로 고치고 연습하기를 반복했어요. 그 여관이 완전 우리 집이었지요."

   인천 중구 사동·경동 일대는 개항기부터 해방 이후까지 '연극의 거리'였다.

   인천시사(仁川市史)는 애관극장을 우리나라 최초의 극장(1895년)으로 기록하고 있다. 이밖에 인천좌(1897년), 가부키좌(1905년), 표관(1909년) 등이 공연장으로 활용됐다.

   인천 출신 극작가 함세덕과 진우촌, 무대미술가 원우전, 연기자 정암, 서일성 등이 이 거리를 거쳤다.

   이들은 하나같이 서울 무대를 중심으로 다양한 활동을 벌였고, 연구자들은 이 시기 이들이 남긴 족적을 하나씩 재구성하고 있다.

   하지만 이들의 인천 행적은 실증자료가 부족하다는 이유로 밝혀진 게 적어 연구과제로 남아 있다.

<김명래기자·problema@kyeongi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