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려한 산세를 자랑하는 홍류동 계곡은 붉은 단풍 때문에 예로부터 잘 알려진 가을 명소. 합천댐 건설로 생긴 인공호수, 합천호의 100리 벚나무 길은 최근 떠오르는 단풍 명소다. 덕분에 산사의 가을과 호반의 정취를 동시에 만끽할 수 있는 최적의 단풍 코스가 탄생했다.

# 100리길 홍류동에 만산홍엽이 앉아있네
해인사 일대의 단풍은 늦다. 그래서 11월로 접어드는 늦가을에 가면 단풍길로 명성이 자자한 낭만 만점 드라이브 코스를 만날 수 있다. 가야산 홍류동 계곡 길을 따라 해인사 주차장까지 가는 4㎞는 사치스러운 마음이 들 정도로 곱고 또 긴 것이 특징이다. 이 길의 장점은 차를 타고 편안하게 단풍을 감상할 수 있다는 것. 주말이면 행락객들로 어김없이 막히곤 하지만 오히려 아름다운 단풍을 천천히 감상할 수 있기 때문에 누구 하나 크게 불만을 표하는 이가 없다.

계곡 길의 끝에는 석가모니 가르침의 총화인 팔만대장경을 간직한 해인사가 있다. '해인(海印)'은 바다 속에 사물이 비치는 높은 경지. 신라 애장왕 때 창건된 후, 수차례 화재가 발생하여 여러 번 모습을 바꾼 것으로도 유명한 사찰이다. 창건 당시 유물로는 대적광전(大寂光殿) 앞뜰의 3층 석탑과 석등이 유일할 정도지만 숱한 화재와 외침에도 팔만대장경은 전혀 손상을 입지 않은 점이 신비로운 곳이기도 하다. 해인사 경내를 꼼꼼히 둘러보는 것만도 1시간은 족히 걸리는 데다 해인사 앞 성보박물관까지 다 둘러보려면 2∼3시간은 소요되므로 미리 시간을 넉넉하게 배려해야 후회가 없다.

가야산 국립공원에서 해인사 입구까지 흐르는 계곡으로 가을 단풍이 너무 붉어서 흐르는 물에 붉게 투영되어 보인다 하여 '홍류동 계곡'이라 한다. 최치원이 신선이 되어 사라졌다는 전설을 대변하기라도 하듯 계곡길 사이에 신비로운 정자와 시구를 새겨놓은 큰 바위가 눈에 띈다. 바위의 글씨는 최치원의 친필로 농산정과 낙화담, 분옥폭포 등과 함께 홍류동 19명소 중 하나다.

가을에는 해인사를 찾는 사람보다 가야산 등산을 즐기는 사람이 더 많을 정도. 진한 단풍산행의 묘미를 실컷 맛볼 수 있을 뿐 아니라 왕복 4시간30분 정도 걸리는 어렵지 않은 산행이기 때문이다. 가야산은 해발 1천430 높이로 산세가 웅장하고, 수려하여 해동 제일의 명산으로 손꼽힌다. 조선8경의 하나로 이름나 있을 뿐 아니라 합천 8경중 제1경에 꼽히기도 한다. 가야산 산행의 가장 큰 매력은 가까이서 느낄 수 없던 해인사의 매력을 다시 한번 맛볼 수 있다는 것. 정상에 서면 가을로 물든 해인사의 전경을 한눈에 감상할 수 있다.

낙동강으로 흘러가는 황강(黃江)을 높이 96, 길이 472의 합천댐으로 막아 만든 인공호수. 총 저수량이 7억9천만에 이르는 큰 규모다. 합천호는 호반 드라이브 코스가 아름다워서 사랑 받는 곳이기도 한데, 가을에는 100리에 이르는 벚나무 길이 온통 단풍으로 물들어 더욱 좋다. 강과 호수를 끼고 달리다가 산허리를 휘감아 도는 고갯길이 이어지고, 가파른 커브길이 등장하는 등 다채로운 모습이라 지루하지 않은 것도 장점. 드라이브 길 사이사이 독특한 맛집도 많아서 식도락을 즐기기도 좋다. 합천호 일대를 드라이브하거나 가야산 등산을 하는 것도 농익은 가을을 만끽하기에 좋다.

 
 
 
 
 
# 세계문화유산에 새롭게 등재된 팔만대장경

인파로 북적거리는 주차장 일대를 벗어나면 해인사 일주문까지는 멋진 산책코스가 이어진다. 누구든지 차를 놓고 걸어가야 하기 때문에 화려한 가을 단풍은 물론, 가야산의 풍광까지 제대로 감상할 수 있는 코스이기도 하다. 해인사에는 나무마다 이름표가 붙어있기 때문에 좋은 공부가 될 것이다.

일주문에서 천왕문을 지나 돌계단을 오르면 해탈문을 지나게 되고, 해인사의 한가운데에 구광루(九光樓)가 자리하고 있다. 오늘날의 구광루는 해인사의 사중 보물을 보관하는 보물 보관장으로 쓰이고 있다. 옥으로 만들어진 진기한 꽃이며 청동으로 된 코끼리 향로와 오백나한도, 청동요령 등이 소장되어 있다.

해인사에는 대부분의 절이 흔히 모시고 있는 석가모니 불 대신에 화어명의 주불인 비로자나불이 모셔져 있다. 그래서 법당의 이름도 대웅전이 아니라 대적광전이다. 영원한 법 곧 진리를 상징한다. 그러므로 비로자나불을 모신 대적광전은 부처님의 진리의 몸이 화엄경을 언제나 두루 설하는 대적광토의 역할을 하고 있다.

전각을 차례대로 살피다보니 어느덧 대적광전 위에 있는 장경각을 배회하고 있다. 장경각은 대장경을 모신 건물로, 대적광전의 비로자나불이 법보인 대장경을 머리에 이고 있는 것을 나타내고 있는 형국이다. 해인사가 창건 이래 수많은 화재를 겪었음에도 장경각만이 온전히 보존되었음은 다행스러우면서도 신비스럽게 느껴진다.

고려대장경을 흔히 '팔만대장경'이라고 하는 것은 대장경의 장경 판수가 8만여 장에 이르는 데에서 비롯되었을 터지만, 한편으로는 불교에서 아주 많은 것을 가리킬 때 8만4천이라는 숫자를 쓰는 용례대로 부처님의 가르침을 팔만사천법문이라고 하는 데에서 비롯되었다. 몽고군의 침입을 불력(佛力)으로 물리치고자 하는 염원에서 한 자 한 자 판각한 대장경은 세계문화사에서 한국 문화의 우수성을 과시하는 문화유산이다.

16년에 걸쳐 만들어진 팔만대장경은 오히려 만드는 과정이 더욱 경이롭다. 제주와 거제, 울릉도 등의 섬에서 생산되는 후박나무를 수년 동안 소금물에 쪄서 그늘에 말린 후 판목으로 다듬었다는 정성이 그 신비감을 더한다. 여기에 외국인들도 감탄하는 것은 보관방법이다. 장경각 앞쪽에는 아래에, 뒤쪽에는 위에 창문을 내서 습기가 차지 않도록 했으며 통풍이 잘 되도록 짠 판가에 보존해서 나무가 틀어지지 않게 배려했다.

이렇게 세심하고 과학적인 보관법 덕에 천년이 다 되어 가는 지금도 그 모습 그대로 팔만대장경을 유지하고 있는 것이다. 장경각은 부처님의 가르침인 불경이나 목판을 보존하고 있는 전각으로 사찰에 따라 대장전 혹은 판전, 법보전 등으로 불리기도 한다. 해인사 장경각에서는 팔만대장경을 볼 수 있는 점도 좋지만 그보다는 동그란 종 모양의 월문(月門)이 있어 더 유명한데 생김새가 독특해서 사진촬영 포인트로도 인기가 높다.


여행수첩/
■ 가는 길=경부고속도로를 달리다 대구에서 88고속도로로 갈아탄다. 88고속도로 해인사IC로 빠져나와 가야 방향으로 직진하다가 가야에서 해인사 방향으로 좌회전 한다. 해인사 가는 길에 4㎞ 정도 계곡과 이어지는 홍류동 계곡 길은 아름다운 드라이브 길이다.

■ 맛집=해인사 앞에는 비슷한 산채식당이 많다. 그래서 선뜻 선택이 어렵다면 삼일식당(055-932-7443)을 추천. 해인사 지정 산채식당으로 꾸준한 명성을 얻고 있을 정도로 정갈한 음식을 내놓는다. 스무 가지가 넘게 차려지는 반찬도 푸짐하고 싱싱한 갈치구이를 곁들여 내는 것도 특징이다. 산채정식 1만원. 갈치찌개 2만원.

■ 잠자리=해인사 일대에서는 해인사관광호텔(055-933-2000)이 제일 좋은 잠자리. 지하 200 암반층에서 뽑아 올린 벽계층 지하수를 사우나와 객실에 공급하고 있는데 숙박을 하지 않더라도 산행 후, 사우나만 하고 가는 사람도 있을 정도다. 이외에도 해인사 앞에 문화장(055-932-7277), 21세기 모텔(055-933-0427), 국일장(055-931-9000)도 깔끔한 편.

여행 tip/
해인사 성보박물관은 해인사만큼이나 중요한 박물관. 2002년 7월에 문을 열었다. 들어서면 겉보기와는 또 다른 독특한 전시공간부터 눈길을 끈다. 해인사 소장의 1천여 점 보물 중, 250여 점을 보기 좋게 전시해 두었기 때문. 추사 김정희의 힘 있는 필치가 돋보이는 '해인사중건 상량문(上樑文)', 해인사 대적광전 소장이던 '홍치사년(弘治四年)명 동종' 등 볼거리가 넘쳐난다. 매주 화요일 휴관, 입장료 2천원. 문의: (055)934-098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