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일리톨껌, 카스타드, 육개장 컵라면, 한스푼 세제, 태양초 고추장'….

어느 날 갑자기 익숙한 제품들의 값이 저렴해졌다면 상표를 주시해 보자! 쇼핑하고 있는 대형마트의 이름이 상품에 표기돼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이들은 일명 PB(Private Brand)·PL(Private Label) 상품으로, 대형소매상이 독자적으로 개발한 브랜드 상품을 말한다. 기존 NB상품(제조업체브랜드)과 품질은 비슷하지만 가격은 20~40%까지 저렴하다는 게 매력인 PB상품을 찾는 소비자들이 늘고 있다. 이에 NB상품의 유명세를 누르고 높은 인기를 누리는 PB상품도 다양하다. 대형마트 매출에 효자 노릇을 톡톡히 하며, 소비자에게는 알뜰 쇼핑을 제시해 주는 PB상품의 세계를 들여다보자! <편집자주>

"오늘은 어떤 PB(PL)상품을 접수해 볼까?"
 
 
 
  ▲ 이마트 PB상품인 가공밥 '왕후의 밥'.  
인천 남동구 구월동에 사는 김모(26·여)씨는 최근 새로운 취미가 하나 생겼다.

대형마트 폐점시간에만 쇼핑을 즐길 만큼 직장동료들 사이에 짠순이로 소문난 그녀의 취미는 바로 질 좋고 값싼 PB상품 발굴하기다.

김씨는 "PB상품을 즐겨 찾는 쇼핑을 생활화하다보니 1주일에 평균 1만~2만원 정도의 생활비를 절약하게 됐다"며 "알뜰 소비 족이 되려면 '싼 게 비지떡이겠지'라는 편견을 버리고, 취향에 맞는 PB상품을 선택하는 것도 좋겠다"고 추천했다.

김씨와 같은 PB마니아들의 호응에 힘입어 몇몇 PB상품들이 대형마트 품목별 매출 1위를 달리고 있다. 그 대표적인 예가 이마트에서 판매되고 있는 '이마트콜라'와 '왕후의 밥'이다.

이름도 생소한 이 상품들은 지난 달 중순께 첫 선을 보인 뒤 한 달 만에 기존의 인기 품목보다 2배 이상 팔렸다.

 
 
 
  ▲ 롯데마트 PB 상품인 롯데 '와이즐렉 태양초 고추장'  
이마트 인천점 관계자는 "기존 1위의 아성을 무너뜨린 쾌거로, PL상품 판매의 순항이 예고된다"며 "현재 2천여 개에 달하는 PL상품을 내년까지 3천개로 확대해 소비자들에게 저렴하고 질 좋은 상품을 선보이겠다"고 말했다.

이마트 인천점의 경우 현재 PL상품의 매출액은 전체의 20% 정도를 차지하고 있다.

이마트는 소비자에게 인지도와 신뢰도를 높일 수 있는 PB상품 개발 업체 선정에 주력, 전 품목 PB상품 출현이라는 목표를 갖고 있다.

홈에버 인하점도 PB상품이 호조를 보이고 있다.

이 곳에서 판매되고 있는 간식용 '단밤'과 생수 '홈에버샘물'은 제조업체 브랜드와 각각 2천원과 500여원의 가격차를 보이며 소비자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인하점 관계자는 "가장 눈에 잘 띄는 곳에 가장 넓은 공간을 차지하도록 배치하는 PB상품 진열법이 매출 상승효과를 발휘했다"며 "지난 3월부터 판매되고 있는 700여 PB상품의 매출액이 매달 약 5%씩 오르고 있다"고 설명했다.

또 이곳의 신선식품류 PB상품인 '팜에버' 청과는 전체 청과 매출의 50%를 차지하고 있어 인하점은 PB상품 대표 아이템으로 선정, 손해를 감수하고 최저 가격을 꾸준히 선보인다는 입장이다.

 
 
  ▲ 홈플러스 PB상품인 참기름을 선보이고 있는 매장 직원.  
이와 함께 현재 4천여 종류의 PB상품을 선보이고 있는 롯데마트도 오는 2010년까지 PB상품 매출을 전체매출의 20%까지 확대시킨다는 계획이다. 특히 롯데마트는 식품위주로 기능성을 추가한 프리미엄급 PB를 올해 100여개 추가 출시해 원산지·기능성·성분 등에서 기존의 제품과 차별화를 보일 예정이다.

영국 테스코의 노하우를 전수받아 해외소싱을 강화하고, 중소기업을 우선으로 가격 경쟁력을 확보하고 있는 홈플러스도 4천300여 가지에 이르는 PB상품의 매출을 올해 20% 이상으로 올린다는 방침이다.

이렇듯 PB상품의 등장으로 소비자는 싼 가격에 상품을 구입하고, 대형마트는 이익을 높여 서로 윈―윈 하고 있다. 하지만 PB상품으로 인한 선의의 피해자가 등장해 부정적인 여파도 만만치 않다.

 
 
  ▲ 홈플러스 PB상품 의류인 '프리선셋'의 카탈로그 사진.  
 
선의의 피해자란, 대형마트에 자사 브랜드 상품을 판매하면서 PB상품을 납품하는 업체들로 이들의 자사 브랜드 제품은 싼 가격의 PB상품에 밀려 판매 부진을 면치 못하고 있다. 또 PB 상품을 납품하는 업체들은 다른 유통업체의 끊임없는 가격인하 압력에 시달리거나 제품 '퇴출'이라는 역차별을 받고 있다. 결국 대형마트 독주 체제인 유통시장에서 PB상품이 중소제조업체에 하나의 희생을 더 요구하고 있는 것이다.

이에 대해 유통업계 관계자들은 "유통업체가 PB상품 판매에 나선 것은 직접 마케팅을 통해 불필요한 비용을 제거한 뒤, 여기서 얻는 이익을 싼 가격으로 소비자들에게 돌려주기 위한 것"이라며 "제조업체와의 입장 차를 조율하면 PB를 통해 상생할 수 있는 방안을 찾을 수 있다"고 주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