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와 안양시간 인사 교류로 촉발된 충돌이 장기화 국면으로 접어드는 가운데 공무원이 구속되고, 고발당하는 등 심각한 후유증을 앓고 있다.

지방자치가 시작되며 중앙직과 지방직 공무원간 갈등 외 지방직 내에서도 광역자치단체와 기초자치단체간의 갈등이 불거져 나오고 있다.

경인일보는 안양시 사태를 짚어보고, 지방자치시대에 요구되는 슬기로운 해법을 모색해 본다.

■ 초유의 안양시 사태

안양경찰서는 지난 23일 전국공무원노조 안양시지부 동안구지회장 박모(44)씨와 안양시지부 정책부장 이모(43)씨 등 2명을 특수공무집행방해 등의 혐의로 구속했다. 이들은 지난 21일 오전 9시부터 2시간30분동안 노조원 150여명을 동안구청 현관에 집결시킨 뒤 신임 동안구청장의 출근을 저지하고, 구청장실 출입문을 잠근채 집기류를 흐트러뜨리는 등 업무를 방해한 혐의를 받고 있다.

앞서 안양시 공무원노조는 지난 8일부터 경기도가 광역자치단체와 기초자치단체간의 인사 교류를 내세워 '낙하산 인사'를 하며 자치권과 인사권을 빼앗아 가고 있다고 강력하게 반발했다.

이런 반발에도 불구하고 별다른 움직임이 없자 노조측은 물리적 행동에 나서 지난 19일 안양시 상하수도사업소장, 동안보건소장(이상 4급), 호계1동장, 신촌동장, 달안동장, 부흥동장(이상 5급) 등 경기도에서 내려온 공무원들이 근무하는 사무실을 돌며 이들의 명패를 가져갔다.

노조는 경기도에서 내려온 박신흥(시장 권한대행) 부시장이 자신들의 요구에 응하지 않고, 공석인 동안구청장 인사권을 도에 넘기려 한다고 주장했다. 특히 "부시장이 경기도의 요구에 따라 동안구청장 자리를 채우기 위해 안양시 총무과장에게 도 공무원의 안양시 전입에 동의하는 내용의 공문을 보내라고 지시했으나 총무과장이 이를 거부했다"고 밝혔다.

총무과장은 당시 "부시장의 지시대로 할 경우 도의 잘못된 관행을 인정하고 굴복하는 셈이어서 따르지 않았다"고 밝혔다.

이에 동북부권 공무원노조가 안양시 노조의 주장을 지지하고 나서는 등 사태가 확산됐다.

동북부권 노조는 지난 19일 도청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일선 시·군에서 근무중인 도 소속 공무원들의 조속한 복귀 등을 촉구했다.

동북부권 노조는 "경기도가 도와 시·군간 인사 교류의 취지를 무시한 채 인사 적체 해소를 위한 방편으로 이용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에 맞서 도 공무원노조도 같은날 성명을 통해 "일부 시·군의 인사권 독립 요구는 지역 이기주의의 발로로 파행적인 지방자치를 고착시킬 우려가 크다"고 밝히는 등 안양시 사태는 노노 갈등으로 비화될 위기까지 맞았다.

경기도 역시 도 공무원노조를 지지하면서 "현행 시·군간 교류 인사에는 전혀 문제가 없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걷잡을 수 없이 확대된 공직사회 갈등은 결국 신임 동안구청장의 출근 저지 사태로 이어졌고, 사실상 안양시 행정을 마비시켜 버렸다.

■ 왜 안양시인가

28일 경기도에 따르면 현재 도 소속으로 31개 시·군에서 근무하고 있는 4·5급 이상 공무원은 모두 148명이다.

이중 4급은 27명, 5급은 121명이다. 4급이면 시·군에서는 실장이나 국장, 5급은 과장이나 읍·면·동장에 해당하는 간부급이다.

현재 31개 시·군에 있는 4급 공무원은 239명, 5급은 1천762명이다. 따라서 시·군에서 근무하는 도 소속 4·5급 공무원은 도내 전체 4·5급의 약 7.4%를 차지한다. 시·군별로는 수원시가 14명으로 가장 많고, 이어 성남시 13명, 안산시 10명, 용인시 10명 등의 순이다. 도내 20개의 구청 가운데 수원시 권선구, 고양시 일산동구, 부천시 소사구, 안산시 상록구, 안양시 동안구 등 5개 구청은 도 소속 공무원들이 구청장을 맡고 있다.

안양시의 경우 이번에 문제가 불거진 신임 동안구청장을 포함해 모두 7명이 도에서 내려온 공무원들이다.

안양시의 4·5급 공무원 정원은 101명이라 도 소속 공무원의 비율은 6.9%다. 31개 시·군 전체 평균인 7.4%보다 다소 낮은 수치다.

따라서 외형적으로만 볼때는 안양시에서만 인사 교류때문에 갈등의 골이 깊어질 특별한 이유는 보이지 않는다는 게 일반적인 시각이다.

물론 도와 시·군간 인사 교류에 대한 갈등의 불씨는 오래전부터 존재해 왔다. 하지만 이번 사태처럼 겉으로 표출되는 경우는 드물었다.

무엇이 안양시를 이런 상황까지 몰고 갔을까. 많은 공무원들은 더 이상의 개발 호재가 없기 때문에 안양시가 다른 시·군보다 과도한 인사적체에 시달릴 수 밖에 없다고 지적한다.

안양시의 인구는 수년째 60만명을 조금 넘는 선에서 머물고 있다. 인구 규모는 도내에서 7번째지만 행정구역 면적은 약 58㎢로 8번째로 작다. 개발사업이 있어야 그에 맞는 조직이 필요하고, 인구가 늘어나야 조직 확대도 가능할텐데 안양시는 이게 매우 힘든 것이다. 여기에 앞으로도 행정조직이 확대될 여지가 거의 없어 인사 적체는 점점 더 수렁 속으로 빠져들 상황이다.

안양시 공무원노조가 "안양시에서는 6급에서 5급으로 승진하는데 14년이나 걸리는 반면 경기도에서는 6~7년이면 된다"고 울분을 토하는 배경에는 이런 사정도 한몫을 했다는 풀이가 나오고 있다.

■ 공직사회 갈등

사실 광역자치단체로부터 행정적·재정적 지원을 받아야 하는 '구조적인 약자'인 시·군 입장에서는 인사 교류를 정면으로 문제삼는데 한계가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난해 1월 군포시에서도 인사로 인한 파문이 있었다. 당시 시장이 부시장에 대한 인사권을 행사하는 과감한 시도를 했지만 결과적으로는 실패했다. 부시장 인사권을 행사한 군포시는 경기도로부터 행정적·재정적 압박에 시달렸다. 결국 시장이 바뀌면서 부시장도 중도 하차, 사태는 일단락됐다. 이때의 갈등은 군포시와 경기도의 문제였다는 게 현재의 안양시 사태와는 다른 점이다.

하지만 수년 전 경북 등 다른 지방에서는 이번 안양시 사태와 비슷한 일들이 종종 벌어졌었다.

앞으로도 여타 시·군에서 비슷한 문제가 다시 불거지지 않을거란 보장 또한 없다. 오히려 지방자치가 꽃을 피우면 피울수록 중앙과 지방, 광역자치단체와 기초자치단체간에 틈이 벌어질 소지는 다분하다. 공직사회의 갈등을 근원적으로 해결하기 위해서 행정자치부 차원의 대안이 마련돼야 한다는 지적이 힘을 얻고 있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