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적십자 양지봉사회 오세록 회장(사진 왼쪽)이 같은 소속 회원과 함께 '어버이 결연세대'를 맺은 백모 할머니와 함께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모습.
지난 27일 오후 2시께 성남시 수정구 태평동의 한 주택가.

올해로 82세인 백모 할머니가 적십자 봉사원들을 대문에서 기다리고 있다. 햇살이 들어 그렇게 추운 날은 아니었지만 건물의 그림자로 인해 조금만 서 있어도 금방 쌀쌀함을 느낄수 있었다. 백 할머니는 수십분은 기다린 듯 얼굴이 상기됐지만 그것도 잠시, 봉사자들의 얼굴이 보이기 시작하자 이내 얼굴에는 미소가 떠올랐다. 할머니의 방문을 열자 3.3㎡ 남짓한 부엌과 그 부엌과 이어진 9.92㎡도 안되는 방 한칸이 눈에 들어온다.

백 할머니는 지난해까지 기초생활수급자로 분류돼 정부지원을 받았지만 소식도 모르는 아들(60)이 호적상에 있다는 이유로 올해부터 지원이 끊겼다. 보일러 고장으로 바닥에서 물이 새어나와 두꺼운 장판을 구해다 깔았다. 봉사자들과 함께 하는 시간동안 할머니의 얼굴에서는 미소가 떠나지 않는다. 낳아준 자식들은 아니지만 자식보다도 더 잘 돌봐주는 '자식(?)'들이 있기 때문이다. 봉사자들은 할머니의 건강 등에 대한 안부를 묻고 이야기를 나누며 즐거운 한때를 보내다 돌아갔다. 할머니는 한달에 2~3번 찾아주는 봉사원들이 방문하는 날을 손꼽아 기다린다. 이것이 할머니의 유일한 기쁨이기 때문이다. 봉사원이 온다는 전화연락을 받으면 약속시간 이전부터 대문밖에서 하염없이 기다린다.

대한적십자사 경기지사 중부봉사관 양지상록봉사회는 백 할머니와 같은 처지에 있는 성남지역 13세대 가정과 '어버이 결연세대'를 맺고 3년 넘게 자원봉사활동을 펼치고 있다.

양지상록봉사회 오세록(50·여) 회장은 "사회가 각박해지면서 호적에는 부모를 모시고 있지만 고려장처럼 동네 골목 어귀 등의 허름한 집에 부모들을 방치하는 자식들이 생각보다 많은 것 같다"며 "그나마 기초수급자처럼 지원을 받는 세대는 나은 처지"라고 말했다. 오 회장은 "어버이 결연세대를 맺고 지원하는 가정의 절반은 조손가정이어서 적십자사와 동사무소에서 지원해주는 쌀이 모자랄 때가 많다"며 "도와주고 싶은 마음이야 굴뚝 같지만 경제적 여건이 허락하지 못해 마음놓고 도와주지 못하는 것이 안타깝다"고 아쉬워했다.

"낳아주신 부모님뿐만아니라 지금의 우리가 있도록 사회를 이끌어 오신 모든 분들이 바로 우리 부모님"이라고 강조하는 이들 봉사원들의 효도가 지역사회를 훈훈하게 녹여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