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진규(1922~1973)는 함경남도 함흥 출생으로 한창 활동할 수 있는 51세의 나이에 자살로 생을 마감한 비운의 조각가이다. 그는 일본에서 미술을 배워 일본 공모전에서 여러 차례 수상하였고 귀국 후 국내에 작업실을 마련, 60년대와 70년대 초반까지 활발한 작품 활동을 벌였다. 또한 홍익대학교, 서울대학교에 출강 하는 등 후학 교육에도 힘썼다.
3층에는 인물 두상들이 주로 전시되어 있다. 여성을 모델로 제작한 작품들이 대부분이며 작업실의 심부름을 도맡아 한 소녀를 모델로 한 '영희'와 같은 주변인물이나 '비구니', '스카프를 맨 여인' 등 익명의 여성들도 등장한다. 같은 여성들이지만 단발을 하고 있거나 스카프를 매는 등 생김새나 차림새가 모두 가지각색이다. 하지만 모든 두상 들은 무표정한 상태로 굳어있다. 이것은 권진규가 모델과의 만남을 통해 궁극적으로 도달하고자 했던 바, 인물의 외모와 성격이 아닌 그가 이상형으로 그리고 있던 현실적이고 실제로 공존하는 우리의 현실을 표현하고 있었다.
뿐만 아니라 전시장 벽에 걸려있는 부조(평면상에 입체적인 감각으로 표현한 조형기법의 일종)작품들은 다른 작품과는 달리 가까운 거리에서 감상이 가능하고 전시장 내에서는 촬영이 가능하기 때문에 사진을 찍는 관람객들도 많았다.
테라코타 작업을 주로 했던 권진규 조각의 매력은 무엇보다 동서 조각을 두루 섭렵한 기본기의 충실함에 있다. 인물 흉상과 동물상은 한결같이 단순한 형상 속에 내면의 감정, 고뇌를 생생하게 살린 것이 특징이다. 겨울 길목, 숙연한 기운과 조형적 생동감을 함께 즐길 수 있었던 이번 전시회가 소중하게 다가오는 것은 나만의 느낌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