늦가을이면 무쇠 가마솥에 불을 지피고 콩을 삶는다. 구수한 콩 냄새가 집안 가득 퍼질때면 무르게 삶아진 콩을 절구에 넣고 찧어서 네모 반듯하게 메주를 만든다.

메주가 알맞게 뜨면 볏짚으로 묶어 처마끝에 매달아놓고 있다가 좋은 날을 택해 정성스레 된장을 만든다.

수백년을 이어온 우리 고유의 음식인 고추장, 된장, 청국장 등 장류(醬類)는 대표적인 슬로푸드이자 건강식품으로 꼽힌다.

우수한 품질의 콩을 얻기 위해 재배에서 수확까지 온갖 공을 들여야함은 물론 타작 후부터 메주를 띄워 된장, 간장, 고추장, 청국장으로 만드는 데까지 많은 시간과 정성을 쏟아 부어야 하기 때문이다.

안성시 일죽면 화봉리에 자리잡은 서일농원은 콩이 장(醬)으로 변모하듯 오랜 세월과 수고를 거쳐 태어난 곳이다.

20여년전 집안 식구들과 먹을 요량으로 시작한 것이 어느새 장독이 2천개나 되는 거의 공장 수준이 돼버렸다.

서일농원으로 향하는 길은 그야말로 웬만한 관광지 못지 않은 화려한 풍경을 자랑한다. 수백 그루의 소나무와 흰 연꽃이 펼쳐진 연못을 지나 농원 안쪽으로 들어서면 짙은 갈색의 장독대가 모습을 드러낸다. 그야말로 장관이다. 엄청난 수의 장독은 마당에서 뒤편 언덕 아래까지 한참이나 이어져 있다.

물론 성공에 이르기까지 무수한 실패도 있었다. 본격적으로 장을 담그기 시작하면서 콩 80가마니 분량의 된장을 죄다 땅에 파묻어 버린 적도 있다.

하지만 '지성이면 감천'이라고 하듯 이곳의 장맛은 어느 누구도 따라할 수 없는 최고의 경지에 다다랐다.

농원 앞마당을 가득 메운 장독에 담긴 장의 맛은 예나 지금이나 다름없다. 깊은 장맛에다가 깔끔하기까지 하다.

그 이유는 단 하나. 지극 정성으로 돌보며 재배한 콩이 그럴 것이고 여기에 장인의 혼이 깃들어 있기 때문이다.

그도 그럴 것이 재료인 콩과 고추를 고르는 기준이 예나 지금이나 같고 메주를 띄우고 장을 담그는 방식 또한 전통을 그대로 따르고 있다.

지하 150m에서 끌어올린 암반수를 사용한다는 것은 이미 유명해진 이야기.

전국으로 소문난 장맛은 전국 각지로부터 비법을 전수받으려는 사람들을 모이게 만들었고 지금 농원의 회원수만 3만명이 넘는다.

서일농원은 장류 박물관과 연구소 건립도 예정돼 있다. 한국 전통식품 분야를 체계화, 표준화시켜 그 우수성을 해외에 알리겠다는 것이다. 그 첫 작업으로 지난 2001년 미국 식품의약국(FDA)으로부터 장류 규격인증을 받아놓았다.

서일농원은 된장, 고추장, 간장, 술, 김치 등 우리나라 전통발효식품이 우리 몸에 좋은 성분으로 이뤄져 있다는 것을 과학적으로 입증해 보이려는 의지를 갖고 있다.

세계속에 우리의 깊은 맛이 널리 전파될 날이 머지않아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