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북자 1만명 시대를 맞은 가운데 올 한해 탈북자 입국 규모가 2천명을 넘어섰다. 국내 입국하는 탈북자는 급증하고 있지만 이들 가운데 일부는 고국을 버리고 다시 영국으로 떠나고 있다.

사선을 넘어 북한을 탈출해 국내 입국에 성공한 그들은 왜 국내 정착사실까지 숨기면서 고국을 등지고 머나 먼 외국으로 떠나 난민이 되려는 것일까.

이같은 문제 의식에서 지난 10일 오후 2시부터 4시간 동안 서울시 중구 남대문로 대한상공회의소 의원회의실에서 '기로에 선 탈북자 정착지원 정책-주무부처 조정, 지자체·민간이양 가능한가'란 정책 심포지엄이 열렸다.

이번 심포지엄은 (사)북한인권시민연합과 (사)경인발전연구원이 주최하고, 경기도와 경인일보가 후원했다. 심포지엄 참석자들은 지난 10년간 중앙정부, 즉 통일부가 주도해 온 탈북자 정착지원 정책에 대한 근본적인 변화가 필요하다는데 뜻을 같이 했다. 통일부 산하 탈북자 정착지원 기관인 하나원의 기능에 대한 전면적인 재검토가 필요하고, 탈북자 관련 업무가 타 부처와 지자체로 이양될 때 예산 및 인력지원이 수반돼야 한다는 게 참석자들의 일관된 주장이었다.

윤현 북한인권시민연합 이사장은 환영사를 통해 "탈북자들의 영국행 열풍에는 신변안전에 대한 불안이 깔려 있을 것"이라며 "그 원인이 탈북자 자신들에게 있든, 아니면 우리 사회에 있든 이제 우리는 10년에 걸친 탈북자 정착지원 정책을 냉철히 분석하고, 새로운 패러다임을 모색해야 할 시점에 왔다"고 밝혔다.

기조연설에 나선 국회 통일외교통상위원회 남경필(한) 의원도 "탈북자 정착지원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고, 이제는 보다 큰 비전을 가지고 접근해야 한다"며 "주변국으로부터 존경받는 Soft Power를 획득, 인류의 보편적인 가치를 정책에 반영시킬 수 있도록 최선의 노력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또 "탈북자 정착지원업무를 통일부에서 행정자치부로 이관하고, 각 지자체에 권한을 위임해 시민단체와 긴밀히 공조할 수 있도록 하고, 탈북자가 우리사회의 건전한 일원으로 정착할 수 있도록 편견과 차별을 없앨 수 있는 범사회적 캠페인을 전개하겠다"고 정치권의 노력을 다짐했다.

이날 참석자들은 현재의 탈북자 정착지원 정책에 대한 분석과 향후 대안에 대해 다소 이견도 있었지만 한 가지에는 의견을 같이 했다. 탈북자들을 특별히 지원해야 할 '특별한 대상'으로 간주하고 있는 우리의 시각부터 바뀌어야 진정한 사회통합으로 갈 수 있다는 공감대가 심포지엄을 관통했다.

 
 
  ▲ 전상천 기자  
     
 
 
  ▲ 김영수 교수  
     
 
 
  ▲ 윤인진 교수  
 
 
  ▲ 박현민 기자  
     
 
 
  ▲ 차지호 의사  
     
 
 
▲ 이금순 연구위원
#김영수 교수=
오늘 심포지엄은 지난 10년간의 탈북자 정책을 돌아보기 위해 마련됐다. 현재까지의 정책이 틀렸기 때문에 여기 모인 것은 아니다. 누구도 탈북자들에 대해 생각하지 못했을 당시 몇몇 뜻있는 사람들이 정착지원 정책을 만들었다. 하지만 이제는 탈북자들에대해 특별한 존재가 아닌 보편적인 존재로 바라보는 시각으로 변하고 있다. 그래서 정책을 돌아보는 자리가 필요하다.

#윤인진 교수=국내 탈북자에 대한 기존 연구는 상당부분 사회 적응에 초점을 맞춰서 진행되고 있다. 정치사회나 심리적, 경제적 등으로 나눠 탈북자의 적응 상태를 살펴볼 수 있다. 하지만 탈북자의 육체적 건강수준이 크게 열악해 사회경제 활동 제약의 원인이 되고 있다. 사회적응 선결조건으로 건강을 정상수준으로 끌어올리는 것이 필요하다.

특히 하나원의 역할과 기능이 불분명하다. 정부의 표준화된 지원내용은 탈북자의 다양한 욕구를 충족하는 데 한계를 보이고 있다. 하나원은 탈북과정에서 경험한 외상을 극복, 사회에 편입하기 위한 기본적인 준비를 하는 곳이다. 하지만 탈북자를 돕기 위해 만든 복지제도가 오히려 이들의 사회편입을 가로막는 걸림돌이 되고 있어 문제다.

탈북자에 관한 문제를 해결키 위한 거버넌스(統治·governance)의 바른 적용이 필요하다. 거버넌스는 공공부문과 민간부문의 행위자들이 협력적 네트워크를 구성해 사회의 집합적 목표를 달성하고, 공적 문제를 해결해 나가는 과정이다. 거버넌스는 시대적인 흐름이다. 공공성이라는 개념조차 공적부문과 사적부문의 결합 형태로 나타나고 있다. 탈북자 문제도 거버넌스로 풀어야 한다.

국가가 정책 결정과정을 더이상 독점해서는 안된다. 중앙정부 차원의 탈북자 지원업무 역할 조정 및 분담이 필요하다. 전담부서를 통일부에서 행자부로 바꾸고 교육부, 노동부, 보건복지부 등과 유기적 협력체계를 구축하는게 전제돼야 한다. 또 지역에서는 사회복지관이나 사회복지사의 역량을 강화해 지역 밀착적 서비스를 강화해야 한다. 이 과정에서 탈북자를 거버넌스의 중요한 행위자로 인정해야 한다. 탈북자 스스로 정책을 제안하고 집행하고 평가하는 행위자가 돼야 정착지원의 효과가 극대화될 것이다.

#전상천 기자=한국사회엔 탈북자 1만명 시대를 맞아 엇갈린 두 개의 시선이 존재한다. 최근 남북간 협력·평화 무드 조성으로 한반도는 새로운 역사적 대전환기를 맞고 있다. 남북간 경제·문화 등 다각적 교류 활성화를 통한 통일논의가 활발히 진행되고 있다. 하지만 통일논의속에 탈북자 문제가 자칫 사회적 논의에서 배제될 위기에 처하고 있다. 우선 중앙정부의 지자체 등과 사전협의 없이 진행되는 중앙 하달식 거주지역 할당방식은 큰 문제를 수반하고 있다. 사회적 합의가 결여된 가운데 특정지역으로 대거 탈북자를 집중배치하는 것은 인근 주민들의 반발을 살 뿐이다. 특히 경기지역에 하나원 증축 및 대성공사 신축 등 탈북자 정착지원시설을 대거 배치하는 과정서 지자체와 주민들의 의견수렴 조차 하지 않는 것은 물론 정부가 스스로 정한 기준을 허물어 뜨리는 우를 범하고 있다.

또 통일부의 형평성을 상실한 탈북청소년 교육 문제도 큰 문제다. 통일부는 자체 설립한 한겨레중고등학교에 모두 6억7천500만원을 지원한데 반해 탈북청소년 대안교육단체엔 고작 6천200만원을 지원하는데 그쳤다. 이 때문에 탈북청소년 대안교육기관들은 재정악화 등으로 교육공간을 제대로 확보하지 못해 폐교위기에 내몰리는 등 사실상 존립기반 자체가 흔들리고 있다.

통일부가 탈북청소년의 교육기관 선택 기회를 사전에 박탈함에 따라 탈북청소년 교육인권이 침해받고 있다. 한겨레학교로만 입학하도록 분위기를 몰아가거나 특정 학생들은 입학을 허용하지 않는 등 문제가 속출하고 있다. 통일부의 무분별한 교육정책이 민간교육단체연대의 반발만 사고 있다.

주거문제도 개인당 임대아파트 지원이 아니라 가족당 한 채씩 지원하는 방향으로 변경돼야 한다. 탈북자의 주거수요는 급증하는데 반해 공급해야할 임대아파트 물량이 턱없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탈북자 취업지원도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

기존 중앙주도형 탈북자 정책은 사회적 합의가 선행되지 않은 채 추진되고 있다. 정부의 밀실정책 결정 과정이 탈북자들을 섬에 가두고, 사회에 적응하지 못하는 막다른 골목으로 몰아넣는 우를 범하면 안된다. 사회적 합의없이 중앙의 소수부처에 의해서 추진되는 정책은 지양돼야 한다.

#이금순 연구위원=탈북자 지원업무의 지방이양이란 정책 목표가 수립된 지 몇 년 됐다. 당시 정부는 지자체와 민간단체에 이양하겠다 발표했고, 경기도에서도 어떤 식으로 탈북자 지원정책을 꾸려나갈지 상당히 심도있게 연구했다.

하지만 이 같은 논의가 또 이뤄져야 하는지 모르겠다. 통일부가 전담부서로서 노력이 부족한 점이 있지만 지자체와 민간의 노력도 부족하지 않았나 싶다. 우리 정부의 지원정책에서 가장 미흡한 것이 지역단위에서 실제로 기능하는 지원체계가 상당히 허술하다는 점이다.

탈북자 입국을 허용하는 미국서 하나원 등 탈북자정착지원시설을 방문했을 때 반응이 괜찮았다. 하나원의 기능을 어떻게 개선해야 할지 조사했을 때 전문가들은 민간이양 보다는 정부가 당분간 맡는게 낫다는 의견이 85% 정도로 높게 나왔다.

통일부에서 행자부, 복지부 등으로 업무가 이양돼도 실제 개선되는 폭은 크지 않을 것이라 판단한다. 하나원과 정착지원팀, 후원회 등을 총괄해 하나의 조직으로 만들어 지원하고, 향후에는 정착지원청 등으로 만들어 관장, 지역에도 분서를 개소해 업무를 지원하는 게 어떨까 생각한다.

#차지호 의사=탈북자의 심리문제를 지난 3년간 가장 가까이서 지켜봤다. 민족적인 입장에서 연민이라는 차별적인 감정으로 그들을 '가련집단'으로 구분하는 게 문제다. 이런 문제는 정부와 민간단체 등 수많은 새터민 지원단체가 직접적으로 그들과 접촉하는 과정에서 노출된다. 원조자와 수혜자라는 수동적인 권력관계로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해외 난민사례에서도 이런 경향이 많이 나타난다. 탈북자에게 피교육자, 즉 수동적인 성향으로의 정체성을 강요하고 있다.

장기적으로는 탈북자를 돕는 이들의 아주 전문적인 정책 능력과 전문적 인프라가 필요하다. 장기적인 플랜을 짤 수 있는 정책능력이 떨어지면 문제에 직면할 수밖에 없다.

다만, 보건복지부 등 특정부처가 표준화된 정책을 펴면서 탈북자를 특별한 존재로 만드는 것은 지양해야 한다.

#박현민 기자=통일부를 출입하고 있는 일선 기자로 몇가지 언급하겠다. 하나원은 탈북자의 안정적인 정착을 위해 필수적으로 거쳐야 하는 코스다. 탈북자들이 안성에서 경제활동하면서 지역민들도 환영하고 있다. 하나원 증축시설도 잘 안착하면 지지를 받을 수 있을 것으로 본다. 지금으로서는 탈북자들의 취업문제가 가장 심각하다. 수도권에 탈북자들이 집중되는 것도 결국은 취업문제에 기인한다. 이 때문에 중앙정부가 정착지원 시설도 수도권에 밀집시키고 있는 듯하다. 앞으로도 탈북자 수도권 쏠림 현상은 갈수록 심화될 것으로 보인다. 통일부 지원업무를 행자부와 복지부 쪽으로 이양하는데는 동의한다.

지자체와 민간단체와의 연계로 탈북자 정착지원 정책이 훨씬 수월하게 진행될 것으로 예상된다. 또 하나 덧붙이자면 탈북자들의 영국행은 탈북 학생을 둔 부모들이 교육부담을 덜기 위한 측면도 있다. 성인들에게 취업이 중요하다면 청소년들에게는 교육이 가장 중요한 문제이기 때문이다.

#윤인진 교수=새 행정부가 들어서면 새로운 목표와 제도를 재정립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단순히 주무부처를 옮기는 수준이 아니라 앞으로 탈북자라는 존재를 어떻게 바라보고, 지원할 것인가에 대한 목표 재정립이 선행돼야 한다. 또 전담부서를 따로 만드는 것보다 현 체계에서 운영하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 '북한이주민사회통합지원법' 등 새로운 법 제정이 필요하다. 사회통합은 정착지원을 넘어서는 더욱 포괄적인 개념이다. 이제 탈북자 문제도 단순한 지원 수준을 뛰어넘어 사회통합의 측면에서 접근해야 한다.

탈북자 뿐 아니라 외국인 노동자, 결혼이민자 등이 우리 사회에서 새로운 사회적응을 필요로 하고 있기 때문이다.

#김영수 교수=중앙정부와 지자체 관계자들이 참석하고 있지만 우리에게 더욱 중요한 건 새터민을 보는 우리의 시각이다. 하나원 들어온다고 반발했다가 지역경제 활성화에 효과가 있으면 지지하는 게 우리네 현실이다. 우리 마음은 여전히 새터민들을 받아들일 준비가 안돼 있는 듯하다. 사람 마음이 통일이 안 된 상태에서 정책과 주무부처가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역대 대통령이 하나원을 방문한 적도 없다. 국정운영자의 관심이 없는 만큼 정부가 싫어하는 탈북자를 위한 어떤 정책도 효과를 거둘 수 없다. 정책보다는 탈북자를 끌어안는 우리 마음의 동의가 우선돼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