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감독의 국가대표 사령탑 확정으로 이제 국내 축구계도 새로운 변화를 예고하고 있다. 우선 국내 지도자가 7년만에 월드컵 대표팀을 잡게 돼 시험대에 올랐고 감독 영입 과정에서 드러난 대한축구협회의 졸속 행정도 지적받아야 된다.
▲대한축구협회 사령탑 확정
허정무 감독이 사령탑으로 선임됨으로써 7년 만에 국가대표팀의 국내파 감독 시대를 열었다. 허 감독은 취임 기자회견에서 "저를 선택해준 대한축구협회 기술위원회에 감사드린다. 대한민국 모든 팬들께도 감사드린다. 개인적으로 영광이지만 그 이상으로 책임감과 사명감을 느낀다. 축구인으로서 제 인생의 모든 것을 걸고 해보겠다"며 결연한 의지를 내비쳤다.
또 그는 "2002년 이후 한국 축구는 성적이 좋지 않았는데 총체적인 흐름이 아닌가 생각한다. 모두에게 책임이 있다. 선수, 지도자, 혹은 협회 모두 책임을 면할 수 없다. 다시 한번 시작하는 마음으로 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영무 축구협회 기술위원장은 "대표팀 운영 경험에 있어 충분한 자격이 있다고 판단해 허 감독을 선택했다"며 "현 대표팀의 핵심으로 활약 중인 선수들을 지도한 경험이 있고 해외파, 국내파를 막론하고 한국 축구에 대해 깊이 숙지하고 있다는 점을 높이 평가했다"고 선임 배경을 설명했다.
▲대한축구협회가 허 감독을 택한 이유
궁지에 몰린 대한축구협회가 이른바 'B플랜(차선책)'으로 허정무 카드를 꺼내들었다. 그렇다면 축구협회는 왜 위기상황의 소방수로 허정무 감독을 내세웠을까.
축구협회는 영입 1, 2순위 후보로 접촉해온 마이클 매카시 울버햄프턴 감독과 제라르 울리에 프랑스축구연맹(FFF) 기술이사가 모두 한국 감독직을 거부하겠다고 선언하자 큰 충격에 휩싸였다.
외국 감독이 성사 단계에서 한국 사령탑을 맡지 않은 이유는 무엇일까. 의외로 간단했다. 2002년 한일월드컵 전후만 하더라도 외국인 지도자들 사이에 상당한 매력을 느끼게 한 '최고의 직장' 중 하나인 한국대표팀 사령탑 자리가 더 이상 명장들의 귀를 솔깃하게 할 만한 경쟁력이 없어졌다는 것이다. 또 월드컵 4강 신화 이후 한국 축구가 박지성을 비롯한 몇몇 선수들의 유럽 빅 리그 진출에도 불구하고 대표팀 경기력 면에선 아시아권에서조차 뚜렷한 인상을 남기지 못했고 정체 또는 퇴보하고 있다는 평가를 받아온 것도 적잖은 부담으로 작용했다.
이로 인해 축구협회는 해외파를 접고 '안정성'을 내세워 K-리그 현직 사령탑을 후보로 물색했다. 현직이란 점은 그만큼 국내 선수 파악에 유리한 조건이기 때문. 대표 선수 대다수가 K-리그에서 배출되는 상황에서 리그에서 매주 경기를 치러온 감독이라면 여러 팀 선수들의 장단점과 능력치를 정확히 재고 있을 것이란 판단이다.
축구협회의 이런 행보를 바라보는 팬들은 '지나치게 현실에 안주하는 조치 아니냐'는 지적을 내놓고 있다. 리그가 대표팀의 토양이라고 볼 때 리그에서 인정받는 감독이라면 경력과는 관계없이 과감하게 대표팀에 발탁하는 용단도 필요하지 않았느냐는 목소리도 분명히 존재한다.
▲국내지도자 실험대
그 동안 국내 지도자가 대표팀 지휘봉을 잡은 것은 허 감독이 레바논에서 열린 아시안컵을 치르고 2000년 11월 물러난 뒤 7년여만이다. 2001년 네덜란드 출신 거스 히딩크 감독에게 지휘봉을 맡긴 뒤 대표팀 사령탑은 줄곧 외국인 지도자의 몫이었다. 이후 움베르투 코엘류(포르투갈)에 이어 요하네스 본프레레, 딕 아드보카트, 핌 베어벡(이상 네덜란드) 등이 대표팀을 이끌었다.
이 기간 국내 지도자로는 김호곤 현 대한축구협회 전무와 박성화 올림픽대표팀 감독이 잠시 감독 대행의 임무를 수행했을 뿐이다.
그 동안 한국 축구의 최고 수장 자리를 외국인에게 빼앗기면서 국내 지도자들의 상실감은 컸다. 특히 한·일 월드컵 4강 성적을 제외하고는 외국인 사령탑이 대표팀을 이끌면서 이렇다할 성적을 올리지 못하고도 계속 이방인에게 지휘봉이 넘어가자 불만은 더욱 커졌다.
▲허정무 감독
1974∼86년 국가대표 선수로 활약한 허정무 감독은 1989년 월드컵대표팀 트레이너로 지도자 생활을 시작해 포항 아톰즈 코치와 감독, 전남 드래곤즈 감독, 올림픽대표팀 감독, KBS 해설위원 등을 지냈다.
2005년부터 두 번째 전남 지휘봉을 잡은 허 감독은 올해 FA컵에서 파리아스 감독의 포항을 물리치고 전남을 2년 연속 정상에 올려놓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