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7일 충남 태안 앞바다에서 사상 최악의 기름유출 사고가 발생한지 2주가 넘어서고 있다.

기름이 유출된 태안에는 하루에도 수천명의 자원봉사자들이 방제작업을 벌이고 있지만, 현장에서 나온 타르 덩어리들이 계속 남하하면서 전북 최대 어장인 고군산군도 해역에 유입돼 방제작업의 범위가 점차 확대되고 있다.

순식간에 죽음의 땅으로 변해버린 절망의 현장에서 또다시 희망을 심기위해 구슬땀을 흘리는 사람들을 만나기 위해 지난 11일 태안 신두리해수욕장을 찾았다.

충남 태안군 원북면에 위치한 신두리해수욕장.

총 면적 60㏊로 백사장 길이만 3.7㎞에 이르는 거대한 해수욕장은 기름으로 얼룩진 바다와 기름 찌꺼기로 가득한 백사장으로 흉물스럽게 변해있었다. 지독한 기름 냄새가 코끝을 스치고 지나갈 땐 속이 울렁거리고 머리까지 어지러웠다.

그렇지만 신두리해수욕장은 그 어느 여름 성수기때보다 많은 사람들로 넘쳐났다.

뜨거운 햇살을 받으며 일광욕을 하고, 커다란 튜브에 몸을 맡긴채 한가로이 해수욕을 즐기는 사람들은 아니었지만, 방제복을 입고 장갑을 낀 많은 사람들이 한 손에는 조그만 삽과 또다른 손에는 흡착포를 들고 해수욕장 곳곳에 거대한 인간띠를 형성하고 있었다.

너도나도 백사장에 쪼그려 앉아 기름으로 가득한 모래를 걷어냈으며, 파도가 밀려오는 곳에는 흡착포를 든 사람들이 계속해서 바다에 떠있는 기름을 제거하고 있었다.

이날 하루동안 신두리해수욕장 기름 제거 작업에 참가한 인원은 대략 3천여명. 이중 태안에 사는 주민 300여명을 제외한 나머지 사람들은 문화관광부 등 정부단체와 환경운동연합, 현대건설 등 민간단체에서 건설업체에 이르기까지 전국 각지에서 몰려든 자원봉사자들이다.

이 가운데는 경기도청 공무원 100여명을 비롯해 팔당수질개선본부와 도내 소방서, 자원봉사지원센터 등 400여명의 경기도민이 노란 방제복을 입고 기름제거 작업에 알토란 같은 땀방울을 흘리는 모습이 눈에 띄었다.

경기도청 환경정책과에 근무하는 서연희(37·여)씨는 "아침에 현장에 도착했을 땐, 온통 검은 기름으로 가득차 걱정을 많이 했는데, 점차 깨끗해져가는 걸 보니 새삼 인간의 힘이 대단하다는 것을 느꼈다"며 "앞으로 더 많은 사람들의 관심과 참여가 있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밀려드는 바닷물에 내일이면 또다시 백사장이 검은 기름으로 가득찰 것"이라며 안타까워했다.

특정 자원봉사단체 소속이 아닌 개인들이 그룹을 이뤄 기름 제거 현장을 찾은 이들도 많았다.

제주도에서 왔다는 박갑철(56)씨는 "같은 어민으로서 너무 마음이 아파 인근 상인들끼리 모여서 왔다"면서 "비록 한 삽의 기름을 퍼내는 것에 불과하지만 이런 작은 노력들이 모여 결국은 바다가 정화되지 않겠나"라고 말했다.

할아버지부터 손자까지 3대가 자원봉사자로 참석한 유은수(42)씨는 "의정부에서 태안까지 오기위해 새벽 5시에 일어났다"며 "연로하신 아버지와 5살배기 아들을 데리고 오기가 쉽진 않았지만, 함께 구슬땀을 흘리는 과정에서 어민들의 시름을 조금이나마 덜어주고 진한 혈육의 정을 느낄 수 있었다"고 뿌듯해 했다.

기름 제거 작업은 모두 사람의 힘으로 진행됐다. 사람들이 기름이 가득한 모래를 퍼담은 봉지 수만도 수천개가 넘었으며, 기름을 빨아들인 흡착포의 양도 실로 엄청났다.

검은 기름은 퍼내고 날라도 끝이 없어 보였지만 조금씩 조금씩 검은 때가 벗겨져 나갔다.

경기도청 최원호(51) 회계과장은 "기름 유출 사고는 태안뿐 아니라 대한민국 전체의 재앙"이라며 "오늘 우리 경기도민들이 퍼낸 작은 한 삽 한 삽이 태안 주민들에게 큰 힘이 되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최 과장은 쉬지않고 작은 삽으로 백사장 모래를 덮은 기름을 퍼내면서 "오늘 우리 경기도민들이 퍼낸 작은 한 삽 한 삽이 태안 주민들에게 큰 힘이 되길 기대한다"면서 "오늘은 경기도에서 400여명이 왔지만 내일은 1천명 이상의 경기도 자원봉사자들이 함께 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한편 줄을 잇는 자원봉사자들의 온정에 대해 푸른태안추진협의회 임효상 회장은 "경기도 등 전국의 자원봉사자들이 자기 일처럼 도와줘 고마울 따름"이라며 "국민들의 사랑으로 태안 바다는 반드시 아름다운 모습을 되찾게 될 것"이라고 감사의 뜻을 표했다.

그렇지만 신대리해수욕장 주변에 있는 많은 숙박업소들은 문을 굳게 걸어잠그고, 주차장 입구에서 봉사자들이 타고온 차량이 들어오지 못하도록 통제를 해 눈살을 찌푸리게 했다.

자원봉사자 장소형(45·여)씨는 "작업을 하다 장갑에 구멍이 나 인근 펜션 가게에 갔지만, 모두들 문을 닫아놓아 사지 못했다"면서 "모두가 한데 똘똘 뭉쳐 열심히 봉사하는데, 자신들의 영업장에 더러운 기름이 묻을까봐 통제하는 모습을 보니 힘이 빠진다"고 말했다.

이런 숙박업소의 행태와 관련해 한 숙박업소 관계자는 "모두들 태안을 위해 봉사를 해줘서 고맙지만, 펜션 안까지 기름이 묻어 피해가 더 커질 것 같아 부득이하게 출입을 통제했다"며 "넓은 아량으로 이해해 달라"고 하소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