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년 전 소설 창작 공부를 해보겠다고 중앙대 예술대학원에 원서를 냈었다. 구두시험을 보는 날이었다. 복도에서 내 차례가 되기를 기다리면서 몹시 떨었던 생각이 난다. 예제로 문학이란 무엇인가, 당신은 소설을 무엇이라 생각하느냐 등등의 질문이 나와 있었다. 소신껏 대답하면 된다고 앞서 시험을 보고 나온 이들이 귀띔을 해주었지만 내 차례가 다가올수록 까마득하기만 했다. 그 광범위하고 포괄적인 질문에 나는 무엇이라 답해야 하는가, 아니 그것을 한 번이라도 깊이 고민해본 적이 있었던가. 소신은커녕 이제껏 나름대로 문학이란 것에 대해 생각해오고 있었던 것들이 한꺼번에 휘발되어 버리는 것 같았다. 나는 말을 조리 있게, 체계적으로 할 줄 아는 재주도 없다. 마주 앉은 사람과 똑바로 눈 맞추는 것도 버거워하는 타입이다. 그때 나의 시험관은 신상웅 선생님이셨다. 그런데 선생님은 아무것도 묻지 않으셨다. 소설의 '소'자도 문학의 '문'자도 일절 내비치지 않았다. 편안하게 웃으시면서 떨지 말라고 말씀하셨고, 지원 양식에 표기된 자료를 보시고 그쪽(내 태생지)은 바다가 참 아름다운데, 그 중에서도 바다를 끼고 달리는 7번 국도가 아름답더라는 말씀을 하셨다. 거기에 나는 웃는 얼굴로 답변을 했던가, 경직된 얼굴을 했었던가?

면접관 앞을 물러나면서 "아, 나는 떨어졌구나!" 생각했다. 결국 내겐 아무것도 묻지 않으신 거나 다름없다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지금 생각해 보니, 그 '아무 말 없음'이 내게 주어진 하나의 화두가 아니었나 하는 생각이 든다. 2년 동안의 과정을 수료하고 난 뒤에도 그 '아무 말 없음'이 늘 나를 괴롭혔다. 네 속으로 더 깊이 내려가라는 말처럼 생각되기도 했고, 삶을 똑바로 직시하라는 말처럼 생각되기도 했고, 때로 나의 심리적인 상태와 방황의 시간들 속에서 그것은 전방위로 나를 둘러싸고 놓아주질 않았었다.

이제 당선 소식을 들었다고 해서 그 답이 명쾌해졌을 리 없음을 안다. 어쩌면 더욱 다양하고 잔혹하게 나를 괴롭힐지도 모를 일이다. 그 속에서 내가 가야 할 길을 찾아야 할 것이다. 거기에 기꺼이 나를 던져야 할 것은 두말할 필요도 없다.

멋진 당선 소감을 한 번도 생각해보지 않았던 게 사실이다. 그만큼 나는 자신감을 잃어가고 있었던 것이리라. 얼떨떨한 기분으로 당선소감을 쓰자니 손끝이 아직도 떨린다. 함께 창작 공부를 하는 마음으로 내 작품에 질책과 더불어 용기를 주었던 이들의 애정에 감사드린다. 열심히 해보라고 사랑으로 응원해준 남편에게도 고마움을 전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미욱한 작품을 뽑아주신 심사위원 선생님들께도 감사드린다.

# 약 력
1967년 경북 영덕 출생
중앙대학교 예술대학원 문예창작 전문가과정 수료
전태일 문학상 소설부문 최우수상 수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