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에 외국인 친구나 소중한 가족에게 '추억'을 선물하고 싶다면 어디로 가야할까. 북적거리지 않고 호젓한 여행지로 '전주 한옥마을'이 떠올랐다. 판소리를 비롯한 전통문화와 상다리가 부러질 정도로 푸짐한 밥상에 마음까지 훈훈하게 해주는 전주야말로 안성맞춤 여행지다. 여기에 막걸리 한 사발이면 누구나 친구가 될 수 있는 정이 살아있는 전주로 출발!

# 시간이 멈춰 있는 한옥마을 여행
▲ 한옥마을 체험관
전주에 도착하자마자 곧바로 목적지인 한옥마을로 향한다. 한옥마을의 중심지 '태조로'의 거북이가 여행의 시작을 알린다. 타임머신을 타고 간 듯, 시간이 멈춰있는 전주 한옥마을은 입구부터 '문화의 도시'라는 수식어가 낯설지 않다.

전주 한옥마을은 빠르게 변하는 시대에도 오랜 세월을 두고 보듬어야 할 것들을 지키며 고향의 넉넉한 모습으로 우리 곁에 있다. 한옥마을 안, 곱게 단장한 꽃담 너머로 시골집처럼 정겨운 한옥의 곡선이 한껏 멋을 풍긴다. 방문을 열면 툇마루 너머로 마당이 펼쳐진다. 작지만 마음을 넉넉하게 해주는 공간이다. 비라도 내리는 날이면 아궁이에 불을 지펴 온기를 피워내고, 기와를 타고 내리는 낙수 소리와 빗방울 떨어져 흙 튀는 소리를 들으며 밖을 내다보는 운치가 그만이다.

세월의 무게를 피해 갈 수 없었는지 기와지붕에는 잡초가 돋아나고, 집안 구석구석에는 옛것과 새것이 뒤섞인 혼란함이 엿보인다. 어찌 보면 초췌한 모습일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겉모습만 번지르르한 사각형 건물보다는 시간의 흔적이 묻어 있는, 그래서 사람 냄새가 짙게 밴 모습이 솔직해서 좋다.

직접 아궁이에 불을 지피고, 따뜻한 온돌방에서 담소를 나누는 가족들의 모습이 보기 좋다. 총 면적 7만6천320평 900여 채의 전통 한옥으로 구성된 이곳 한옥마을의 대부분은 1920~30년대에 만들어졌단다. 일제강점기에 일제가 성곽을 헐고 도로를 뚫은 뒤 일본 상인들이 성 안으로 들어오자 이에 대한 반발로 자연스럽게 형성되었다니, 당당하고 고귀한 기품이 흐르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일지도. 또 기차를 타고 이곳을 지나던 이승만 대통령이 한옥 풍경이 너무 아름답다 하여 개발제한 구역으로 지정했다는 재밌는 일화도 있다.

대청마루에 앉으면 지붕 위에 걸린 하얀 구름이 눈에 와 닿고, 날렵한 처마 곡선을 훑고 지나는 바람에 조심스레 울리는 풍경 소리가 귓전에 울린다. 밤이면 창호에 은은한 달빛이 새어든다. 별빛이 가득 쏟아지는 마당으로 내려와 돌담을 따라 거니는 일은 전통 한옥에서 경험하는 독특한 매력이다.

탁 트인 마당은 전통놀이의 장. 투호를 하거나 윷을 놀아도 흥겹고 공중 높이 널을 뛰어도 신이 난다. 만사가 귀찮을 때는 툇마루에 걸터앉아 처마 끝에 걸린 하얀 구름을 보며 한가로운 시간을 보내도 좋다. 밤이 내리면 마당 구석에 모기를 쫓는 화톳불이 피워진다. 널찍한 멍석에 앉아 옥수수나 감자를 구워 먹으며 도란도란 이야기꽃을 피운다.

한옥마을에서는 거문고, 가야금, 대금 등의 전통 악기 공연과 체험 등의 프로그램이 무료로 운영된다. 체험관 프로그램의 하이라이트는 매월 음력 보름 저녁에 펼쳐지는 '보름 산조야'. 시나위 음악을 모태로 하고 판소리를 골간으로 탄생한 산조는 연주자가 현장의 분위기를 최대한 반영해 즉흥성을 발현시킬 때 그 묘미를 느낄 수 있다.

세월의 흐름은 우리로 하여금 생활의 먼 구석 어딘가에 방치해 두었던 고향, 향수 같은 그리움의 어휘들을 의식의 수면 위로 건져 올리게 한다. 한옥에서 하룻밤을 보내고 나면 어둠의 터널을 뚫고 나가듯 위태롭게 느껴지던 기차 밖의 풍경이 어느덧 빛의 세계로 바뀌는 신선함을 느낄 수 있다.


 
 
# 민속놀이, 전통차, 막걸리 한사발은 덤!

한옥의 섬세함을 새롭게 발견하고 닥종이 인형과 같은 민속공예품도 덤으로 볼 수 있다. 어느새 한옥마을 거리 등에 불이 들어왔다. 어스름한 저녁 빛에 저 멀리 보름달도 환히 떴다. 시간이 멈춰있는 곳에서의 즐거운 동행, 골목길을 걸으며 함께했던 시간도 거기 한옥마을에 멈춰져 있는 것만 같다. 쉬이 가시지 않는 여운이 발걸음을 붙잡는다. 전주는 당일 여행도 좋지만 동부시장의 막걸리 골목을 찾아 훈훈한 인심을 느껴보는 것도 좋다.

한옥생활체험관 옆에 있는 전통술박물관(063-287-6305). 막걸리(탁주)와 청주가 같은 술독 안에서 얻어지는 과정, 청주가 불을 만나 소주가 되는 절차 등을 상세히 공부할 수 있다. 매월 첫째·셋째주 토요일 오후 3시에 술밥 비비기, 소주 내리기 등 술 만드는 과정 등을 시연하며 둘째·넷째주 오후 3시에는 무료 술 시음회를 열고 있다.

전통찻집 한옥마을의 운치를 더하는 것은 마을 골목에 숨어 있는 전통찻집들. 공예품 전시관 뒤편의 교동다원(063-282-7133), 교동다원 맞은편의 다문(063-288-8607)이 그런 집들이다. 한옥을 그대로 쓰고 있다. 호젓하게 차 향기에 빠져들 수 있다.

전주 한옥마을은 반일 또는 하루 정도 일정을 잡고 느긋이 걸어 다녀야 제 맛을 느낄 수 있다. 풍남동, 교동에 걸친 한옥마을은 사방 500여m 밖에 안 된다. 전주역(063-243-7788)이나 전주고속버스터미널(063-277-1572)에서 평화동, 남부시장, 구이방면 버스를 타면 20~25분 만에 한옥마을에 갈 수 있다. 역과 터미널에서 택시를 타면 15~20분 거리다. 한옥마을 쪽에 도착하면 우선 경기전 옆의 관광안내소(063-232-6293)를 찾아간다.

안내소는 매일 오전 9시~오후 6시에 열려있다. 이곳에서 '전통으로의 초대'라는 제목의 안내책자를 얻으면 여행길이 훨씬 편하다. 한옥마을 내의 명소, 찻집, 식당 등의 위치를 담은 상세한 지도가 들어있는데 아주 요긴하다. 한옥생활체험관에서 자전거를 빌려 한옥마을을 돌아도 좋다. 대여료는 반나절에 2천원이며 투숙객에게는 무료로 빌려준다.

여행수첩/
■ 가는 길=호남 고속도로 전주IC에서 빠져나와 좌회전한다. 남원 가는 방향으로 계속 직진해 금암로터리에서 기린로로 직진하다 시청을 지나 오른편에 자리한 리베라호텔을 보고 좌회전해 들어가면 전주 한옥마을이 나온다. 전주한옥체험관은 리베라호텔 후문 쪽에 있다.

■ 잠자리=한옥마을을 제대로 체험할 수 있는 한옥생활체험관(063-287-6300)은 옛 양반 가옥의 생활 문화를 현대의 삶 속에서 재발견할 수 있는 전주의 문화 명소다. 신축 건물이라 고풍스런 멋은 없지만, 전통 한옥이 갖고 있는 시설의 불편함을 보완해 이용하기가 편리하다. 방이 8개 있으며, 숙박료는 5만~10만원(조식 포함).

여행 tip/
■ 전주 토박이가 뽑은 별미 명가
맛의 고향 전주는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맛의 고장이다. 깊은 맛과 풍성한 상차림은 여타 남도 지역의 음식과 다름이 없지만 전주의 음식에는 이에 전통과 정성을 더했다. 장인 정신으로 전주 전통의 맛을 이어가고 있는 별미집을 소개한다.

전라회관(063-228-3033) 한정식은 3대를 이어 60여 년 넘게 손맛을 이어오고 있다. 20여 가지 반찬과 음식이 풍성히 차려져 나온다. 특히 3년 정도 묵은 김치는 별미 중의 별미. 갈비찜과 낙지볶음, 홍어찜의 풍성한 맛도 좋다. 석화를 땅 속에 2∼3년 묵혀 만든 굴젓과 민물새우로 만든 토하젓은 쉽게 맛볼 수 없는 귀한 맛이다. 한정식 한 상 11만원(4인 기준).

가족회관(063-284-2884)은 전주 시민이 최고로 손꼽는 전주비빔밥의 명가다. 비빔밥 하나를 시켜도 맛깔스러운 밑반찬이 10여 가지 정성스레 차려진다. 한 상 가득 메운 음식 어느 것 하나도 그냥 대충 놓인 것이 없다. 실고추, 잣, 깨, 지단 등 고명이 살포시 얹어져 나온다. 비빔밥의 맛 또한 일품이다. 고추장 양념에 골고루 비벼 맛을 보면 밥알이 고슬고슬하다. 특미비빔밥 1만원, 비빔밥정식 8천원.

왱이해장국집(063-287-6979)은 줄을 서서 먹는 맛집이다. 국밥의 시원한 맛은 국물 자체에 있다. 콩나물 끓인 물에 멸치와 미역, 다시마, 무, 황태 등을 우려 만든 육수를 넣어 국물을 만든다. 여기에 새우젓으로 간을 하고 매콤한 청양고추를 곁들여 시원하면서도 알싸한 맛을 내는 것이다. 국밥을 맛있게 먹기 위해서는 묵은 김치를 얹어 먹거나 구운 김에 싸서 먹는 것이 방법. 콩나물국밥 3천5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