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명의 인명을 앗아간 이천 냉동창고 화재 참사는 안전수칙을 지키지 않고 공사를 밀어붙인 시공사와 현장 관리자의 고질적인 '안전불감증', 현실에 맞지 않고 실효성도 떨어지는 소방관련 법, 제도 장치 등이 맞물려 빚어낸 전형적 '인재(人災)'라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특히 이번 참사에서 드러났듯이 공장과 건설현장, 물류창고 등 각종 대형시설이 밀집해 있는 경인지역의 경우 화재 등 대형사고에 취약한 '사각지대'가 많아 시급히 예방책을 마련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경인일보에서는 '연례행사'처럼 되풀이 되는 대형 참사의 악순환을 벗어나기 위안 대책과 대안을 제시하는 시간을 마련했다. <편집자주>

 
 
이번 이천 냉동창고 화재는 최근 경기지역에서 잇따라 발생한 각종 안전사고를 '반면교사'로 삼았다면 충분히 막을 수도 있었다는 게 전문가들의 한결같은 지적이다.

지난해 12월 26일 안산의 불법 영업 성인오락실에서 불이나 5명이 숨지고 2명이 부상을 입었고, 앞서 지난해 8월9일에는 의왕시 고천동 모 화장품케이스 제조공장에서 케이스 코팅기가 폭발하면서 작업중이던 직원 6명이 사망하고 2명이 중상을 입었다.

이렇듯 최근 경기지역에서 대형 사고가 빈발하고 있는데도 당국이나 지역주민들은 안전사고 예방의 필요성을 절감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불이 났던 안산의 성인오락실은 불법 영업중이었으며 비상구도 마련되지 않은 밀실구조여서 이곳을 찾은 시민들이 속수무책으로 화를 당했다는 것이 소방관계자들의 설명이다.

의왕 폭발사고도 경찰과 소방당국의 조사결과, 당시 공장에는 세척용 시너 등 인화성 물질과 유독가스를 배출하는 플라스틱 용기 등이 가득 쌓여 있었던 것으로 드러났다.

전문가들은 먼저 현행법상 안전 관련 조항의 실효성이 떨어지는 문제점을 지적한다.

산업안전보건법은 공사 사업주와 현장근로자의 안전관리에 대해 '작업수행상 위험발생이 예상되는 장소에는 위험을 방지하기 위해 필요한 조치를 취해야 한다'고만 정하고 있을 뿐, 이를 위반했을 경우 명확한 처벌규정이 없다. 소방법은 방화관리자가 안전교육을 실시하지 않았을 때 과태료 200만원을 부과한다고만 정하고 있으나 처벌효과가 약하다는데 문제가 있다.

소방시설 설치유지, 안전관리법 시행규칙은 신축, 증축, 개축, 용도변경되는 건축물은 준공한 뒤 30일내에 방화관리사를 선임하도록 하고 있다. 하지만 소방 완공검사가 통상 준공일보다 2주 정도 일찍 이뤄지는 게 현실이어서 최장 45일 동안 방화관리사의 공백이 발생할 수 밖에 없다.

여기에 시공 주체와 감리 주체를 실질적으로 '이원화'해야 한다는 지적도 있다. 이번 사고에서 보듯 시공사와 감리사가 사실상 같은 회사일 때는 실질적인 감리가 전혀 이뤄질 수 없다. 따라서 시공사와 감리사가 별도 회사라 하더라도 실제 소유주가 누구인지를 따져 '동일인'일 때는 감리하지 못하도록 해야 한다고 소방 전문가들은 입을 모으고 있다.

공사 과정에 대한 소방감리 문제도 간과할 수 없다. 현행 소방시설공사업법 시행령은 연면적 20만㎡ 이상이거나 40층 이상 공사현장에는 소방기술자 '1명 이상'을 배치해야 한다고 정하고 있다. 하지만 비용 때문에 대부분 현장이 소방감리사를 단 1명만 배치하고 있는 게 현실이다.

 
 
   
 
 
아울러 규제완화와 공직비리 제거를 위해 개정된 '소방필증 교부방식'에 대한 재검토도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지난 93년까지는 소방관이 직접 공사현장을 둘러본 뒤 소방시설 완공필증을 교부했으나 소방공무원과 업주간 비리 때문에 감리사가 현장검증을 대신하도록 변경됐다.

도 소방본부 관계자는 "규제를 풀어달라는 현장 사업주들의 과도한 요구 때문에 현장검증 주체를 감리사로 바꿨지만 이로 인한 문제도 적지 않다"면서 "필요한 규제는 반드시 존속돼야 한다"고 말했다.

이와 함께 대형 사건, 사고가 발생했을 때 책임문제를 회피하기 위해 관련 부처들이 '나몰라라' 식으로 안이하게 대처하는 관행도 개선돼야 한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도관계자는 "물론 일각에선 각 부처에 산재돼 있는 재난 관련 업무를 특정기관으로 일원화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지만 업무를 조정할 수 있는 '컨트롤 타워'를 구축하는 등 통합 대응체계를 구축하는 것이 최선이다"고 강조했다.

특히 경기지역의 경우 수도권 규제와 맞물려 대형 사업장은 줄어든 대신 안전시설을 제대로 갖추지 않은 소형 사업장이 큰 폭으로 증가하고 있기 때문에 화재 등 사고에 취약하다는 게 전문가들의 시각이다.

도에 따르면 지난해 말 현재 도내 50인 이상 기업체수는 2천560개로 5년 전보다 794개 줄었으나 소기업(50명 이하)은 4만650개로 5년전 2만6천346개보다 두배 가까이 늘었다.

실제로 도소방당국이 2002년부터 5년간 도내 공장에서 발생한 화재건수를 분석한 결과, 전체의 17%인 6천160건이 영세공장에서 발생한 것으로 나타났다.

고원헌 안전실천 시민연대 사무총장은 "이번 이천 냉동창고 화재 사고에서보듯, 우리 국민의 안전의식은 여전히 제자리걸음을 면치 못하고 있다"며 "철저한 단속과 강력한 처벌도 중요하지만 안전사회를 만들려는 국민 모두의 노력이 선행돼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