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기붕우(一欺朋友)하면 불신여해(不信如海)하고, 일기부모(一欺父母)하면 기죄여산(其罪如山)이로다." "한 번이라도 친구를 속이면 그 믿지 못함이 바다와 같고, 한 번이라도 부모를 속이면 그 죄가 산과 같다." 이천시 마장면 이평리 복하천을 따라 300여를 내려가다 보면 와룡산 자락의 고즈넉한 풍경 속에 우리 전통의 미를 고스란히 살린 서당이 한눈에 들어온다. 차곡차곡 쌓아올린 돌계단을 오르고, 잘 지어진 한옥 서당의 2층에 다다르고서야 훈장선생님과 아이들을 만날 수 있었다. 661㎡ 서당 안에는 아이들의 또랑또랑한 목소리가 울려퍼졌다. 훈장선생님은 방학을 맞아 서당을 찾은 아이들에게 '사자소학'(四字小學)을 가르치던 중이었다.

서당 안 100여명의 아이들은 무릎을 꿇은 채 양 손을 모아 공손한 자세로 운율에 맞춰 한자씩 한자씩 읽어 내려갔고, 다시 그 의미를 되뇌였다. 긴 수염을 늘어뜨린 훈장선생님은 맨 앞자리에서 가부좌를 틀고는 꼿꼿이 앉아 있다. 눈을 지그시 감은 채 몸을 '좌로, 우로' 흔들며 아이들의 목소리 하나조차 놓치지 않았다. 한 시간 남짓한 시간이 흘렀지만 어느 누구 하나 잡담이나 장난하는 아이 없었고, 몸가짐도 한 치의 흔들림이 없었다.

수업을 마무리하면서 훈장은 효(孝)와 예(禮)에 대해 말했다. 목소리는 낮았지만, 말에는 힘이 실려 있었다. 수업이 끝나자 아이들은 가지런히 손을 모아 훈장님에게 정중히 읍(揖)하고는 조심스럽게 일어나 자리를 빠져나가며, 끝까지 스승에 대한 예를 갖췄다. 청학서당(靑鶴書堂)으로 불리는 이곳을 운영하는 사람은 서재옥(45) 훈장. 그의 얼굴엔 수업 때와는 달리 자상한 미소가 가득하다.

경남 하동의 청학동에서 태어나 자란 서 훈장은 대대로 서당을 운영해 온 부친 계용(桂溶) 옹으로부터 사자소학을 배웠다고 한다. 스무살 무렵에는 전국의 유명한 한학자들을 찾아다니며 주역(周易)을 익혔고, 이후 서울 양천향교와 고향인 청학동에 서당을 열어 아이들에게 한학을 가르쳤다.

서 훈장이 고향과 멀리 떨어진 이곳 이천에 서당을 낸 것은 지난해 7월. 청학동에서 서당을 운영하면서 만난 사람들이 10년 전부터 서울과 가까운 곳에 인성교육을 할 수 있는 전통서당을 낼 것을 제안하면서부터다. 결국 고향을 뒤로 하고 전국을 돌아다니며 서당 자리를 찾았다. 그러던 중에 산과 물이 잘 어우러진 이곳을 택했다. 지난해 사재를 털어 1만3천220㎡ 부지에 본관과 생활관 등 2층의 기와집 두 채를 새로 짓고, 고향의 이름을 따 청학서당이라고 했다.

청학서당의 하루는 이른 아침 6시에 시작된다. 오전에는 사자소학에서부터 사서삼경(四書三經)까지 수준별 한문교육과 인성예절교육이 진행되고, 오후부터는 자연과 벗삼아 체험학습을 한다. 이후 저녁에는 전통예절교육을 배우고 직접 몸으로 익힌다.

최근에는 서 훈장과 서당이 입소문이 나면서 학교나 학원 등 단체는 물론이고 개인수련 등의 이유로 찾는 이가 부쩍 늘었다. 400명을 수용할 수 있는 서당공간이 부족할 지경이다. 가정이나 학교에서도 인성교육을 강조하면서 서당교육에 관심을 갖는 부모나 교사가 늘었기 때문이다.

이곳에서는 일선 학교의 교과 과정으로는 배울 수 없지만, 아이들에게 꼭 필요한 대인관계, 리더십, 자신감 등 인성발달에 관련된 기본적인 소양과 정보를 쉽게 접하고 배울 수 있다.

"예절은 공기와도 같습니다. 인간 생활에 있어 기본이 바로 예절이기 때문이지요. 사람이 숨을 안 쉬고 살 수 없듯이 예절도 마찬가집니다. 자연스레 터득하는 호흡법과는 달리 예절은 어릴 때부터 가정에서 훈련과 규칙적인 습득을 통해 몸에 익혀야 하지만 지금은 현실적으로 가정에서의 역할이 힘들어지면서 전통 서당교육을 찾고 있는 게 아닌가 싶군요."

그가 말하는 서당교육을 한마디로 축약하면 인성교육이다. 서 훈장은 이곳에서 사라지는 우리 전통 문화를 다시 승화시키고 우리 아이들에게 사람의 기본됨을 가르친다.

그러나 요즘 사람들이 소중한 뿌리 정신을 소홀히 하는 것에 서 훈장은 안타까울 따름이다.

"우리나라는 예로부터 뿌리깊은 정신이 있었습니다. 그것이 바로 충(忠), 효(孝), 예(禮)라는 인성 교육이었지요, 이런 아름다운 문화가 있었기에 우리는 세계적으로 동방예의지국이라는 찬사까지 받았지만 지금은 이런 것들이 호사스런 옛 얘기가 돼 버렸어요. 참 안타깝습니다."

그는 늘 아이들에게 배움을 실천하는 언행일치를 강조한다. 아무리 이렇게 입에 발린 소리를 하더라도 행동으로 옮길 수 없다면 의미가 없다는 것이다.

그는 이천으로 서당을 옮긴 후 서울이나 가까운 대도시에서 절대 찾아볼 수 없는 깊은 산록의 기운과 감동, 전통 가옥들과 전통 한복, 전통 생활방식 등을 짧은 기간이지만 아이들에게 직접 몸으로 체험할 기회를 주고 싶어한다. 우리 아이들에게 우리 것을 알게 하고, 우리의 전통을 소중하게 여기는 생각을 심어주고, 어른을 공경하는 예절을 직접 경험을 통해 느끼게 해주고 싶은 것이다.

"서당 교육을 일선 학교에서는 절대 찾아볼 수 없는 살아있는 교육이라고 합니다. 서당은 아이들에게 재미를 가르치는 곳이 아닙니다. 학교에서 배우지 못한 혼을 이곳에서 심어주고 싶은 것이 작은 소망입니다." 문의:(031)637-10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