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는 기업할 맛 날까'. 새해들어 기업인들의 경영환경 호전에 대한 기대감이 그 어느 때보다 높아지고 있다.

새로 들어설 정부가 연일 기업 관련 다양한 청사진을 제시하고 있는 데다 기업규제 완화를 특히 강조하고 있어 이번에는 수도권규제가 풀리지 않을까 하는 기대로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그동안 정부는 기업들에 투자를 장려하면서도 수도권 기업들 만큼은 수도권 규제라는 족쇄를 채워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게 하는 아이러니한 상황을 연출해 온 게 사실이다. 기업들의 투자의욕을 꺾는 수도권 규제. 과연 규제만이 능사고 대안은 없는 것일까.

#선진국, 규제정책에서 성장정책으로 전환하다!

화성시에 위치한 H사 등 4개 대기업은 몇 년 전 선진국과의 경쟁에서 우위를 점하기 위해 공장증설을 계획했다가 오히려 투자시기 지연에 따른 기회비용 손실로 큰 피해를 입었다. 공장증설을 추진하고 1년이 넘어서야 증설이 허용됨에 따라 시간은 물론 비용적 측면에서도 손해를 본 것이다.

안산에서 광섬유를 생산하는 O사는 첨단기업으로 나가기 위한 설비확충을 위해 공장증설(15만㎡)을 준비 중이었으나 증축이 불가(기존 공장 3천㎡ 이내 증설 허용)하다는 수도권 규제로 인해 아예 도약할 기회마저 꺾여버렸다. 지방으로 이전하면 되지 않겠냐는 의견도 있었지만 이미 기반설비를 갖춰 놓고, 이전비용도 만만치 않은 상황에서 지방행은 사업을 접으라는 말과 다름없었다.

수도권 규제로 인한 기업들의 불만 및 피해는 어제 오늘 일이 아니다. 수도권의 기업투자를 저해해 일자리 창출 억제라는 경제적 비용 손실을 초래하면서도 지방경제의 활성화라는 편익에는 크게 부응하지 못해 그 실효성에 의문이 제기된 게 사실이다.

당초 수도권 기업규제는 형평성 제고를 목적으로 효율성을 희생하는 것이었으나 결과적으로는 형평성과 효율성을 모두 달성하지 못하는 셈이 됐다.

도내 제조업 실태조사에 따르면 경기도의 경우 2006년 10월 현재 수도권 기업규제로 인해 37개 기업에서 4만5천여명의 고용창출이 예상되는 56조원의 투자가 이뤄지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라고 한다.

상황이 이러함에도 정부에서는 지역균형발전이라는 명목으로 수십년간 이를 고집해 왔다.

이러한 수도권 규제는 언제부터 시작된 것일까. 현재와 같은 정부의 수도권 규제정책은 지난 1960~70년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인구집중억제정책을 중심으로 한 행정적 조치로 출발했던 것이 1980년대부터는 입지규제를 중심으로 하는 본격적인 입법화를 거쳐 정립됐으며 1990년대 중반부터는 지역균형발전의 명분과 함께 유지되고 있다.

이런 우리 상황과 달리 선진국들은 이와 반대로 국가경쟁력 제고를 위해 이미 1980년대부터 규제정책을 성장정책으로 전환해 오고 있다. 프랑스와 영국은 1950년대부터 도입된 수도권 규제정책을 1980년대에 대부분 폐지하고 수도권 경쟁력 강화 정책으로 전환했으며, 일본은 2002년 공장 등 설립허가제 폐지 등을 통해 동경권 기능 강화 정책을 펼치고 있다.

이 같은 흐름에 대해 김문수 도지사는 "지금 세계 각국은 더 나은 기업환경을 제공하기 위해 사활을 건 경쟁을 벌이고 있는 상황이고, 이런 면에서 우리나라는 세계경쟁의 흐름에 역행하고 있다"고 꼬집은 바 있다.

#질적 측면이 고려되지 않은 규제, 무엇을 위한 것인가.

정부의 수도권 규제정책은 크게 수도권정비계획법(이하 수정법), 산업집적활성화 및 공장설립에 관한 법률(이하 산집법), 지방세(조세특례제한법 포함) 등 3대 법률에 근거하고 있다.

규제사항을 보면 수도권 토지이용계획상의 최상위법률인 수정법에서는 인구집중유발시설 및 사업, 수도권정비계획의 수립, 권역구분 및 권역별 행위제한, 과밀부담금 부과 및 인구집중유발시설의 총량규제 등을 규정하고 있다. 산집법에서는 권역별 공장 신·증설 전면규제 및 제한적 허용기준을 정의하고 있다.

여기에 지방세법은 과밀억제권역에서의 공장 신·증설, 본점 또는 주사무소용 부동산 취득시 취득·등록세 3배 중과, 공장 신·증설시 재산세 5배 중과 등의 규정사항을 정해 사실상 수도권 기업 활성화의 발목을 잡고 있다. <표 참조> 이뿐이 아니다. 수도권을 이유로 규제하는 것은 아니지만 군사시설보호법 등에 의한 군사시설보호구역 규제나 팔당수계법에 의한 팔당상수원지역 규제 등은 규제대상이 주로 수도권에 있어 또 다른 수도권 규제로 작용하고 있는 현실이다.

이 같은 수도권 기업규제의 근본적 문제점은 경직적인 법적 체계에 근거해 질적 측면을 고려하지 않은 채 획일적인 양적 규제를 강제하는 것에 있다. 이에 따라 기업이 급격하게 변동하는 국내외 시장조건 변화에 유연하게 대응할 수 없게 만들어 결과적으로 기업경쟁력을 저하시킨다.

경기개발연구원 김은경 책임연구원은 "수도권 기업규제는 산업별 특성을 고려하지 않은 채 기업의 투자행위 자체에 대해 획일적이고 인위적으로 강제돼 규모의 경제가 중요한 산업들의 발전을 저해한다"며 "특히 기업의 핵심적 생산요소인 토지를 공급측면에서 규제함에 따라 효율적이고 유연한 생산활동을 위축시킨다"고 지적했다.

더욱이 이해당사자인 수도권 거주민들의 경제적 이해관계를 고려하지 않고 중앙정부에 의해 일방적으로 결정되고 집행되는 반분권적 정책으로 불만이 높다고 강조했다.

OECD(경제협력개발기구)는 한국의 경제규제에 따른 손실이 약 48조6천억원에 이르고 기업환경 순위가 30여개 회원국 중에서 최하위인 30위로 평가한 바 있다. 국가 GDP(국내총생산)의 5.7%, 총 국세의 35.1%가 규제로 사라지고 있는 셈이다.

#투자촉진을 위한 기업규제 개선 시급하다!

 
 
     
수도권은 전 국토의 12%에 불과하지만 전체 인구의 45%, 국내총생산의 46%가 집중돼 있다. 또 전국 공장의 56%, 전국 대학의 43%, 공공기관의 85%, 연구기관의 69%가 위치해 국가경제의 심장부를 이루고 있다.

산업분야에서 수도권은 외환위기 이후 IT 등 첨단 산업분야의 외국인 투자기업 및 벤처기업이 대량 유입돼 지식기반산업이 집적돼 있고 구조고도화가 진행 중이다. 외국인 직접투자기업의 87%, 벤처기업의 70%가 수도권에 집중돼 있고 수원~용인(기흥)~이천을 연결하는 IT벨트에는 세계적 수준의 기업들이 입지한다.

특히 수도권에는 고급인력이 풍부하고 금융·지식서비스, 교육·문화 등 소프트 인프라가 양호해 앞으로도 지식기반산업의 유입이 계속될 전망이다. IT, SW솔루션, BT 등 신산업에 필수적인 인적 네트워크가 활성화되고 있어 향후 국가경쟁력 강화를 위해서는 수도권이 중핵적 역할을 담당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하지만 이천 하이닉스반도체 사례에서도 드러났듯이 수도권 규제는 국가경쟁력 향상에 걸림돌이 되고 있다. 지난 2006년 공장증설을 요구한 것이 2년이 다 돼서야 조건부로 일부 허용되는 등 규제일변도인 상황에서 세계 유수기업과 경쟁하기에는 한계가 있다.

이제 새 정부도 들어서고 수도권의 기업규제개혁 기본 방향이 설정돼야 하는 시기가 왔다. 이와 관련, 경인일보는 오는 29일 한국협업기업협회, 경기도경제단체연합회와 공동으로 '새정부·새로운도약·새로운수도권-투자촉진을 위한 기업규제 개선방안'을 주제로 세미나를 개최한다. 오는 2월 출범하는 새 정부에서 기업관련 정책변화를 준비하고 있는 이때, 이번 세미나에서는 수도권과 비수도권이 상생할 수 있는 다양한 대안이 논의될 예정이며 도내 기업들의 목소리도 한 데 모아 의견을 반영할 방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