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의 축소판이자 사람들 삶의 '희로애락'을 모두 담고 있는 곳은 어디일까? 이 질문에 가장 적절한 답은 법원일 것이다. 민·형사상 사건, 이혼 등 저마다의 사연을 가슴에 품은 사람들이 억울한 심정을 하소연하고자 법원을 찾고 있다. 인구 680만명의 경기남부지역을 관할하는 수원지법에도 조용할 날은 거의 없을 정도로 사람들로 붐빈 다. 15개 법정 107명의 판사들이 억울한 사람들의 대변자 역할을 하고 있는 수원지법. 경인일보에서는 수원지법에서 벌어지는 모든 일을 하룻동안 밀착 취재했다.<편집자주>

입춘이 20여일이나 지났지만, 여전히 입김이 뿜어져 나오는 쌀쌀한 날씨를 보이는 지난 19일 오전 수원지법 앞.

가슴이 답답하고 억울한 사연을 가지고 있는 민원인들이 많아서인지 법원은 더 춥게 느껴졌다. 그러나 유일하게 사람들이 붐비며 뜨거운 열기로 가득 찬 곳이 있다.

바로 경매법정이다. 아직 경매시간인 오전 10시가 되지도 않았는데 경매정보지를 손에 쥔 사람들로 법정밖은 경마장을 방불케 했다.

"용인 수지 가봤어요? 그곳 물건 낙찰받으면 괜찮을 것 같은데…." "오늘은 화성지역건만 잘 보면 될 것 같아요."

 
 
경매지가 무슨 교과서라도 되는양 밑줄을 긋고 외우는 사람, 신문을 보며 작전을 세우는 사람 등 참가한 사람들 모두 한건(?) 건지기 위해 열정을 쏟아붓고 있었다.

30대부터 머리가 희끗희끗한 중년 남녀까지 다양한 사람들이 여기저기서 전략을 짜느라 은밀한 대화가 오가고 있고, 은행 영업사원들도 대출을 받으라고 명함을 돌리느라 분주해 마치 장터같은 분위기다.

경매에 참여한 주부 이모(44·여)씨는 "수원지역이 재건축을 많이 하고 있는데 특히 재건축 예정지중 다가구 주택을 찾고 있다"며 "요즘은 아파트보다 다가구 다세대 주택이 인기를 끌고 있다"고 말하는 등 경매 전문가를 능가하는 얘기를 술술 풀어냈다.

박모(38)씨는 "아침 일찍 나와 경매지를 계속 보고 있다"며 "학창시절에 이렇게 공부했으면 명문대는 쉽게 입학했을 것 같다"고 쓴 웃음을 지어보였다.

경매 열기를 뒤로하고 이혼을 하려는 사람들이 모여있는 1층 협의이혼실 앞을 찾았다. 오늘 협의이혼을 하기 위해 법원을 찾은 부부는 모두 40쌍이었다. 이혼을 하기위해 온 부부들이라 서로 얼굴을 보지 않고 등을 돌리고 있는 등 살벌한 분위기가 연출된다.

판사앞에 가기전, 대기실에서는 가족의 소중함을 일깨워주는 비디오가 연거푸 방영되고 있지만 이들의 귀에는 모두 '쇠 귀에 경읽기'로 들리는 것 같았다. 생판 모르는 남녀가 만나 한 가정을 꾸리며 살아온 가족이라는 울타리가 무너지는 지금. 과연 저 사람들은 무슨 생각을 머릿속에 그리고 있는지 궁금해진다.

한때 죽도록 사랑했던 사람과의 이별, 조금만 더 심사숙고해 소중한 가정을 지킬수 있기를 법원 '정의의 여신'은 간절히 바라고 있는 것 같다.

설 명절 등이 끝나면 이혼을 결심한 부부들이 늘어난다는 언론보도를 보면 마음 한 구석이 더 쓰려온다. 수원지법 관계자는 "꼭 명절 다음날에는 이렇게 이혼하는 부부들이 많다"면서 "명절기간중 시댁에 가느냐 마느냐를 놓고 싸움을 벌이거나 고부간의 갈등 등 문제를 갖고 있던 부부들이 명절을 기점으로 폭발해 이혼하는 사례가 많은것 같다"고 아쉬워했다.

점심시간이 되자 법원과 검찰에 거주하는 사람들이 썰물처럼 빠져나온다.

오후 햇살도 여유롭게 대지를 비추면서 우울하고 살벌한 법원에도 오랜만에 웃음과 활기가 넘친다. 오후 법정도 이와같다면 얼마나 좋을까?.

꿀맛같던 점심시간이 끝나고 일상으로 돌아온 수원지법 법정에 다시 긴장감이 감돈다.

갑자기 주차장 입구에서 큰소리가 들려오고 주변사람들은 이들에게 시선을 돌린다. 그러나 이들은 주변사람들의 시선에는 아랑곳하지 않고 목소리를 높인다.

 
 
"야, 너 ×× 다시는 내 눈앞에 나타나지마 알겠냐 다시 나타나면 죽는다."

"웃기고 있네. 너나 조심해." 두 사람 사이에 막말이 오가고 이들의 다툼을 말리려 인근 사람들뿐만 아니라 방호원까지 가세해 비로소 이들의 싸움은 끝이 났지만 분이 풀리지 않았는지 두 사람은 다시 서로에게 다가가 욕을 해댄다.

한참동안 소란을 피우던 이들의 사연은 이렇다. 한 동네에서 둘도 없는 이웃으로 살던 양씨와 홍씨는 경기도 외곽에 땅을 투자했는데 땅값이 올라 서로 돈을 더 챙기려고 다툼이 붙어 소송까지 갔다고 한다.

돈 앞에는 형제·자매·이웃도 없다는 말이 있는데 이 말을 실감할 수 있는 상황이 눈앞에서 펼쳐지고 있었다. 이들을 말리던 방호원은 하루에도 이런 일이 몇번씩 있다며 아쉬움을 표시했다.

오후 6시 제소자들을 실은 버스가 다시 구치소로 향하며 수원지법의 하루도 서서히 마무리된다.

수원지법 관계자는 "하루 일과는 마무리 됐지만 저녁에 벌어지는 사건 등으로 당직실은 여전히 바쁘게 돌아간다"며 "수원지법은 언제나 정의의 편에 서서 시민들에게 봉사하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