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혼은 손상된 가족 기능을 회복하고 가족의 건강과 행복을 새롭게 도모할 수 있다는 긍정적인 면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재혼가정을 불완전한 가정으로 보는 사회적 인식과 제도, 새로운 가족관계 형성시 모범이 되는 모델 부재 등으로 재혼가정이 뿌리를 내리는 데 여전히 어려움이 남아 있다. 가족 역할의 혼란과 이전의 결혼과 관련해서 죄책감이나 슬픔을 겪으며 계부모와 계자녀간의 애정 형성에 어려움이 있는 등 재혼가정 만의 숙제도 있다. 올해부터 호주제 대신 자녀의 성(姓)과 본관을 바꿀 수 있는 가족관계등록제가 시행, 재혼가정을 위한 희소식도 있지만 여전히 '친부 동의'등의 문제점이 남아 있는 상태다. <편집자주>
"제 딸이 갈수록 도벽이 심해지는 등 자꾸 비뚤어져 가는 모습을 보면 속상하고 남편과 같이 살기가 싫어져요."
김은혜(37·가명)씨는 요즘 어렵게 다시 시작한 결혼생활이 힘에 겹다. 김씨는 2년전 이혼 후 자신의 딸(8세)과 함께 어머니, 큰아들(15), 작은 아들(8), 딸(14)과 살고 있는 지금의 남편을 만나 재혼, 새로운 인생을 살고 있다. "당시만 해도 남편이 좋아 남편에게 딸린 식구들은 생각지도 않고 재혼했다"는 김씨. 그러나 요즘 "남편의 아이들에게 나름대로 한다고 해도 정이 가지 않는다"고 말했다.
결혼 후 처음에는 화목하게 지냈지만 갈수록 남편의 아이들과 김씨의 딸이 자주 다투게 되면서 부부관계에도 변화가 생기기 시작했다. 김씨는 "제 딸과 남편의 작은아들이 동갑내기이다보니 시시콜콜 싸움을 해요. 당연히 큰아들과 딸은 남편의 작은아들을 감싸구요. 제 딸은 요즘 불평불만이 너무 많아요"라며 어려움을 털어놨다.
최근 이혼이 급증, 재혼으로 새롭게 구성된 가정비율이 늘어나면서 김씨처럼 어려움을 겪는 사례를 주위에서 쉽게 볼 수 있다. 지난 2005년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재혼이 24.7%로 지난 95년 13.5%에 비해 두배 가까이 증가했다. 전체 결혼 4쌍 가운데 1쌍이 재혼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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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형도 다양하다. 재혼가정은 9가지 유형으로 분류된다.
▲무자녀 계부모가족(둘다 자녀가 없는 경우) ▲비동거 계부가족(재혼한 여성이 아이가 있으나 함께 살지 않는 경우) ▲비동거 계모가족(재혼한 남성이 아이가 있으나 함께 살지 않는 경우) ▲동거 계부가족(재혼한 여성이 아이가 있고 함께 살고 있는 경우) ▲동거계모가족(재혼한 남성이 아이가 있고 함께 살고 있는 경우) ▲동거 계부모가족(부부 둘 다 재혼 이전에 아이가 있고 함께 살고 있는 경우) ▲혼합 계부형 계부모 가족(부부 둘 다 재혼 이전에 아이가 있으나 여성의 아이와 함께 사는 경우) ▲혼합 계모형 계부모 가족(부부 둘 다 재혼 이전에 아이가 있으나 남성의 아이하고 함께 사는 경우) 등이다. 이 중 갈등이 자주 발생하는 유형은 가족과 가족의 만남인 동거 계부모가족에서다. 위의 김씨 사례에서 볼 수 있듯 이미 형성된 가족과 가족이 새롭게 만나 새가정을 형성, 적응해 나가는 과정에서 갈등이 생기는 것이다.
가장 많이 나타나는 갈등 요인으로는 이들 가족의 자녀들이 무엇보다 가족의 규모가 갑자기 커지는데 대해 혼란스러워 한다는 점이다. 새엄마나 새아빠의 자녀가 2명 이상일 경우에는 특히 더하다. 또 이혼한 부모가 각각 재혼해 가정을 꾸릴 경우 함께 사는 새로운 형제자매도 있지만 함께 살지는 않지만 한쪽 부모를 통해 연결되는 또 다른 형제자매도 생긴다.
즉, 새롭게 구성된 형제자매 사이에 재정적, 상호적 그리고 거주상의 갈등 등 많은 요인들이 생기게 된다.
고등학교 2학년인 최민형(18·가명)군에게는 두 살 터울의 남동생이 있다. 그러나 남동생 강재훈(16·가명)군은 최군과 성부터 다른 계형제 사이다. 7년전 병으로 남편을 떠나보낸 최군의 엄마는 재혼정보회사를 통해 지금의 남편을 만나 재혼했다. 최군은 엄마와 경제적으로 힘들게 살았던 반면 새아빠는 개인사업을 하면서 안정적으로 살아왔다. 재혼을 하면서 새아빠의 주택으로 들어간 최군의 고민은 동생에 대한 열등감이다. 학원이나 과외 등 사교육을 꾸준히 받은 동생은 공부도 잘하고 옷도 잘 입고 성격도 쾌활한 편이다. 신발 하나만 봐도 자신과 동생은 너무 다르다.
"문화적인 충격이 너무 컸어요. 동생과 제가 살아온 환경이 많이 다르니까요. 동생과 비교하면 저는 점점 더 초라해져요. 성적까지 비교되니까 정말 엄마나 새아빠 볼 면목도 없고, 한편으로는 짜증이 나기도 해요."
아이들 문제가 부부문제로 확산되면서 다시 한번 이혼을 겪는 경우도 있다. 나우미가족문화연구원 인터넷 사이트(www.nowme.co.kr)에는 이같은 고민을 털어논 글들이 수천건씩 올라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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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씨는 "어쩌면 좋죠. 친정엄마는 이혼하라고 하는데. 그럼 이제 막 낳은 저 어린 것은 또 어쩌구요. 큰 애는 지금 방학중이라 친정에 있습니다. 이제 곧 사춘기라 걱정이 태산입니다. 저에게는 너무 사랑스러운 아이인데 이미 중학교 배정 받아 친정에서 다니기도 어려운 상황인데. 남편은 큰애 얘긴 꺼내지도 못하게 하니…"라며 고민을 털어놨다.
재혼가정을 대상으로 실시된 설문조사에서도 이들이 겪는 갈등요인과 이들을 바라보는 사회의 편향된 시각정도를 그대로 보여준다. 이 설문조사에 따르면 '재혼 가정에서 가장 큰 어려움은 무엇이겠는가'라는 질문에 '의붓자녀의 문제'라고 대답한 수가 전체의 58.4%로 가장 많았고, 다음이 '외부 사람들의 시선이나 편견'과 '가족간의 신뢰감 문제'로 각각 17.7%와 16.8%로 나타났다.
한편 계부모 가족이 정상가정이 되도록 하는데 역할을 저해하는 가장 큰 요소는 '이해와 의사소통 노력의 부족'이 32.7%로 가장 많았고 다음으로 '신뢰감 형성의 어려움'과 '가족간의 선입견'이 각각 26.5%를 차지했다. 그리고 '재혼 가정에서 가장 어려움을 겪는 사람은 누구'라고 생각되는지에 대한 질문에 73.55%가 '자녀'라고 응답했고 '친부모(12.4%)' '계부모(10.6%)'순으로 나타났다.
설문에서 가장 두드러지게 나타난 특징은 많은 사람들이 의붓자녀는 불쌍히 여기고 계부모는 가족의 문제원인으로 인식하는 편향된 시각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이경숙 건강가정지원센터 팀장은 "계모가족은 아직까지 부정적인 사회문화적 선입견이나 편견이 가장 많은 가족"이라며 "여러 재혼가정의 유형 가운데 차지하는 비중이 큰 현실을 감안 할 때 계모에 대한 편견, 선입견을 불식하며 개인적으로나 사회적으로나 계모 및 계모가족에 대해 보다 열린 마음으로 인정하고 지지해주는 자세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처럼 재혼가정에 대한 바르지 못한 인식에는 한국사회의 전통적 편견이 한몫 한다. 특히 새엄마를 부정적으로 그려온 전통과 대중문화의 영향이 크다. '장화홍련전', '콩쥐팥쥐', '신데렐라', '백설공주', '백조왕자' 등 새엄마를 한결같이 사악하게 묘사하고 있다.
이같은 문제점을 인식한 듯 최근에는 중년의 재혼가정을 통해 진정한 가족의 의미를 밝고 경쾌하게 그린 드라마도 등장했다. 매주 월~금 저녁 8시25분에 방영하는 KBS드라마 '미우나 고우나'다. 시청률이 40%대다. 핏줄도, 살아온 환경도, 가치관도 전혀 다른 재혼가정을 주제로 한 이 드라마는 아들 없는 집안에 여자쪽에서 데리고 들어온 의붓아들 백호가 그 집안의 아들로 인정받기까지의 과정을 통해 진정한 가족의 의미가 무엇인지를 생각해보자는 취지에서 기획됐다.
가족이라는 게 성씨나 핏줄로만 이뤄진 게 아니라 진심으로 서로의 아픔을 나누고 마음과 정을 나누는 것이 진정한 가족이라는 것을 일깨워준다.
이경숙 팀장은 "초혼의 경우 신혼기 갈등이 많듯이 자녀가 딸린 재혼가정의 경우 적응과정에서 갈등이 많을 수밖에 없다"며 "그렇다고 재혼가정에서 나타나는 좋지 않은 면만 단편적으로 비춰지면서 확대해석되는 것은 지나치다"고 말했다. 이 팀장은 그러면서 "상담과정에서 한번의 실패를 겪은 재혼가정 당사자들이 재실패를 경험하지 않기 위해 나름대로의 노하우를 토대로 한 긍정적인 노력을 보면 놀라울 따름"이라고 덧붙였다.
그는 특히 "계모에 대해 나쁜 선입견을 갖게 하는 우리 전래동화와 외래동화를 비판적으로 바라볼 수 있는 교육을 해야 하며, 더 나아가 계모에 대해 긍정적인 시각을 갖게 하는 새로운 동화의 보급이 필요하다"고 말했다.편집자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