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폴리페서(polifessor·정치교수)'의 계절이 돌아왔다.
한달여 앞으로 다가온 총선에 이들의 발걸음도 빨라지고 있다.
지난해 치러진 대선 때도 많은 활동을 벌였던 정치교수들은 대선이 끝나자마자
4·9총선을 위해 활발하게 움직이고 있다.
이들의 정치참여를 두고 대학사회도 찬반으로 나뉘어 들끓고 있다.
자신이 갈고 닦은 학문으로 국가와 국민에게 봉사할 수 있어 지식인의 사명이라
정치 참여는 당연하다는 측과 수업에 충실해야 할 교수가 정치활동 때문에
휴강 등을 자주하면 그 피해는 고스란히 학생들에게 돌아가고 대학교육의 질을
떨어뜨리는 원인이 된다고 주장하는 측의 입장이 팽팽히 맞서고 있다.
대선과 총선 등 정치적으로 큰 행사가 있을때마다 대학가는 이 문제로 몸살을 앓고 있는 게 작금의 현실이다.
총선에 입후보하는 폴리페서의 허와 실 논란을 해부했다. <편집자 주>

신학기를 맞아 새내기 등의 입학으로 활기가 넘치는 대학가. 겉으로 보기에는 평온하고 역동성을 띠고 있지만 4년마다 한번씩 찾아오는 '금배지'를 달기 위한 폴리페서들의 총성없는 전쟁이 한창이다.

A대학 정치외교학과 교수로 재직중인 B(43) 교수는 지금 대학 강의실보다는 여의도를 더 들락거리고 있다. 그는 이번 총선에 C당 후보로 서울의 한 지역구에 출마하기 위해 출사표를 던졌다.

그는 최근 여의도에서 살다시피하면서 지난 2월부터 학교에는 거의 못가고 있는 실정이다. 이번 학기에 전공과목 등 총 6시간의 강의를 맡은 B교수는 공천심사 결과가 다가오면서 학교에 신경쓸 여유가 없어 3일과 6일 수업 모두 휴강했다.

학교 일부에서는 학문의 현실정치 적용보다 학문을 통한 정치적 출세에만 관심을 쏟는다는 비난도 받고 있지만 B교수는 신경쓰지않고 오로지 금배지만 생각하고 있다.

그는 "일부에서 나의 행동을 두고 오늘도 밤늦게까지 연구실에서 불을 밝히는 교수들의 연구 의욕을 꺾는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는 걸 알고 있다"며 "그러나 국회에 진출해 내가 배운 지식과 경험을 국가와 지역민들에게 전달해 봉사하는 것도 후학 양성만큼 보람된 일이라고 생각해 출마를 결심했다"고 설명했다.

B교수는 아울러 "교수들의 출마가 아카데미즘의 파괴로까지 이어질 수 있다는 주장은 폴리페서들의 단점을 너무 과대평가하는 것 같다"고 덧붙였다.

경기도 한 지역에 출마를 준비중인 서울 모대학 경영학과 교수 D(55)씨는 외부활동을 오래하면서 정치를 하기로 결심하고 이번 총선에 출사표를 던졌다. 그는 학교측에서 알게 모르게 밀어주고 있다며 금배지에 자신감을 드러냈다.

D씨의 말대로 일부대학들은 교수들이 장기간 휴직하고 외부 활동을 할 수 있도록 보장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평상시에 가산점을 줘 대외활동을 장려하고 있다.

또 대부분의 대학은 교원 인사규정에 사외이사 등 겸직을 금지하고 있지만 예외조항을 둠으로써 총장의 허가만 받으면 교수가 어떤 활동이든 할 수 있게 길을 열어 놓고있다.


# 폴리페서의 찬성 및 반대
이와같이 총선을 준비하는 교수들이 늘어나면서 이들에 대한 찬·반양론도 뜨거워지고 있다.

찬성하는 쪽은 이들이 정치에 참여했다가 다시 학교로 돌아와 생생한 수업을 진행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정치교수들은 정치인 시절 겪은 현장 경험을 토대로 이론만으로 접할 수 없는 교육을 제공할 수 있다는 측면에서 학생들에게 큰 도움을 줄 수 있다는 얘기다.

K대학 이모(25)씨는 폴리페서는 장점이 많다는 믿음을 가지고 있다. 지난 학기에 도시공학 수업을 수강한 이씨는 매주 도시계획 현장을 찾아가 책임자의 설명을 듣는 현장학습을 통해 이해가 높아졌고 전공지식 실력을 키울 수 있었다. 이 수업을 진행했던 F 교수가 정치인 시절 쌓아두었던 인적·물적 네트워크가 한 몫 했다.

이씨는 "그동안 정치에 참여하는 교수님들을 색안경 끼고 본 게 사실이다"며 "그러나 책으로만 공부하는 현실속에서 현장에 나가 직접 배울 수 있는 기회는 매우 소중한 시간이었다"고 회상했다.

그는 또 "연구중심의 학구파 교수, 현장과 관련된 프로젝트를 많이 하는 교수, 정치성향이 있어 정치를 하는 교수 등 다양한 교수들이 대학가 구성원을 이루고 있으면 대학이 더 발전할 수 있다"며 "음식도 편식하면 안 좋듯이 대학도 다양성을 존중하는 인식이 자리잡았으면 좋겠다"고 주장했다.

또 민주주의 사회에서 정치교수는 자신의 정치적 소신을 가지는 것이 사회발전에 긍정적인 역할을 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대부분의 여론은 폴리페서의 장점보다, 우리정치 현실에서는 부작용이 더 많다는 입장이다.

K대학에서 지난학기 대선때 정치학 강의를 들었던 강모(22·여)씨는 후배들에게 이 강의 수업 추천을 망설였다.

당시 주임교수는 특정 대선후보 사단에서 자문교수로 일하면서 학생들에게 특정한 정치적 견해를 주입시켰다. 스승의 가치나 사고를 학생들이 맹목적으로 흡수할 수밖에 없기 때문에 이런 강의는 위험하다고 강씨는 주장한다.

시민단체들은 또 교수는 교수 본연의 직무에 충실해야 하는데, 정치교수들은 강의에 소홀하기 쉬워 대학공부의 질을 떨어뜨리는 하나의 원인이 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총선연대 관계자는 "교수들은 학생들을 위한 학문적 소양을 다하든지, 아니면 자신의 신분을 버리고 정계로 진출하든지 결정해야한다"고 주장했다.

시민단체들은 교수들이 강의에 참석하지 못하면서 대학들은 폴리페서 대신 강사들을 충원함으로써 학생들은 열악한 강의에 내맡겨지고 있다고 주장한다.

고원헌 YMCA 실천연대 국장은 "남아있는 교수들의 강의 부담도 벅찰 것이고 이로 인해 피해는 결국 학생들에게 돌아간다"며 "이는 대학의 국제경쟁력을 추락시키고, 대학의 경쟁력 저하는 곧바로 국가경쟁력 저하로 이어진다는 것을 관계자들은 심각하게 고민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선거에 직접 출마하는 일부 폴리페서 중에는 아예 자신의 선거운동에 제자들을 동원하는 일도 있다. P교수는 지난 17대 총선에 출마하면서 자신이 재직중인 학과 학생 30여명을 전담 선거 운동원으로 활용했다.

과 선배의 부탁 등으로 '차출'되다시피 한 이들은 조를 나눠 일부는 선거캠프 인근 여관에 숙식하며 선거운동을 했고, 나머지는 대학 캠퍼스 등에서 P교수를 간접적으로 지원하는 일을 해야 했다.

당시 선거운동을 도왔던 S씨는 "이때 이후로 교수님에 대해선 스승으로서의 존경심이 싹 사라졌다"며 씁쓸해 했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이제는 학부모들까지도 정치교수에 대해 비판하고 나섰다. 뉴라이트학부모연합은 지난달 19일 성명을 통해 "지금 대학 교육현장은 폴리페서 때문에 아수라장"이라며 "강의와 연구에 충실해야 하는 직업의식을 망각한 일부 교수들 때문에 그 시간을 대신한 시간강사의 강의로 학생들의 수업권 피해가 막대하다"고 질타했다.

특히 학부모연합은 출마시 일정 시한까지 소속 기관을 떠나야 하는 공무원 등 다른 직역과 달리 출마해도 교수 신분을 보장하는 현행 교육공무원법에 문제를 제기했다. 이들은 "현행 교육공무원법은 교수들에게는 든든한 보호막이 아닐 수 없다"며 "자기의 본분을 내팽개치고 정치판에 뛰어들어 한자리 하다가 다시 학교로 돌아간다"며 이러한 법은 마땅히 개정돼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학부모연합은 또 "전문지식을 국가 정책에 반영하고 참여하는 것은 찬성하지만 다만 학생, 학부모들에게 피해가 가지 않도록 처신해야 한다"며 "벼슬이 탐나는 교수는 즉시 사임하고 정치를 하라"고 촉구했다.

# 통계로 본 폴리페서
지난 2004년 17대 총선에서는 여야 합쳐 대학교수 54명이 출마해 비례대표를 합쳐 26명이 당선됐다. 정치권에서는 18대 총선에 이보다 더 많은 교수가 출마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 일러스트/박성현기자·pssh0911@kyeongin.com  
 
서울신문 보도에 따르면 현재 한나라당과 통합민주당에 공천을 신청하고 금배지에 도전하고 있는 폴리페서는 101명이고 이중 공천 신청 때문에 2008학년도 1학기 수업을 맡지 않겠다고 밝히거나 안식년 등을 이용해 공천에 도전한 '양심적인 교수'는 10명에 불과한 것으로 드러났다.

조성준 학교를 사랑하는 시민연대 이사는 "대학교수에게 명예와 자존심은 사회적 지위가 아니라 자기 분야에서 쌓은 전문지식과 연구실적으로 학생들에게 존경받는 것이다"며 "폴리페서들은 이점을 명심하고 대학교육 발전에 힘써야 한다"고 밝혔다.

# 폴리페서란
정치를 뜻하는 영어 'politics'와 교수를 뜻하는 'professor'의 합성어.
적극적으로 현실 정치에 뛰어들어 자신의 학문적 성취를 정책으로 연결하거나 그런 활동을 통해 정관계 고위직을 얻으려는 교수를 일컫는 한국적인 용어.
정권 필요에 의해 발탁된 관료인 테크노크라트(technocrat)와는 구별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