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땅이 어머니라면, 마을은 어머니의 꿈"
# 숨가쁘게 몰아치는 도시화
"새벽종이 울렸네. 새 아침이 밝았네. 너도 나도 일어나 새마을을 가꾸세. 살기 좋은 내 마을 우리 힘으로 만드세."
1970년대와 1980년대 전국 방방곡곡에 울려 퍼진 새마을노래의 가사다.
그렇게 초가지붕을 없애고 마을길을 넓혀서 조금 살기 좋게 되었는지, 어느 순간부터 그 노랫소리는 우리 귀에서 사라져 갔다.
그 대신에 다른 소리가 우리의 귓전을 울린다. 탕탕, 쾅쾅, 쿵쾅, 드르륵 드르륵. 총소리가 아니다. 대포 소리도 아니다. 그 소리는 아파트를 짓고 도로를 넓히기 위해 산을 파헤치고 바위를 부수는 폭발음이고 거대한 중장비들이 내뱉는 기계음이다.
지금 이 순간에도 경기도 어느 곳에선가는 산과 들을 파헤치는 소리가 끊이지 않는다. 한국 현대사의 특징으로 언급되는 것 중 하나가 도시화다.
특히 경기도는 도시화의 영향을 많이 받은 곳이자 난개발의 대명사처럼 인식되는 곳이다. 개발은 지금도 계속된다. 그리고 거센 개발의 바람은, 유혹의 손길은 사람들이 대대로 터전으로 삼고 살아온 마을을 덮치고 있다. 그로 인해 한때 어촌이던 곳이 간척으로 인해 농촌이나 염전이 되었다가 이제는 다시 택지개발로 인해 도시화되기도 한다.
필자는 한때 이 마을 저 마을을 다니며 마을의 역사와 그곳에 뿌리 내리고 사는 사람들의 삶을 글로 옮기는 일을 주업으로 삼았기에 경기도 이곳저곳을 다닐 기회가 많았다.
좁고 먼지 자욱한 비포장 길을 다녀야 했던 적도 한두 번이 아니었다. 그러다보니 예전에 답사했던 마을을 다시 지나치는 일도 종종 있다.
그럴 때면 이런 생각이 들곤 한다. '어, 예전 그 마을은 어디로 갔지?' 번듯한 아스팔트 도로가 닦여 있고, 아파트단지와 상가의 모습만 눈에 띌 뿐, 한가롭고 정겨운 모습으로 기억되던 마을이 몇 년 사이에 온데 간데 없이 사라져 버렸기 때문이다. 필자의 직장이 있는 지역에도 개발로 인해 사라진 마을이 여럿 있다.
누구는 수십 억 원을 보상받았다더라, 누구는 보상이라고 받았더니 전세방 하나 구할 돈조차 안 된다더라, 보상 문제로 인해 화목하던 형제들이 서로 얼굴조차 안 본다더라.
개발이 진행되는 마을에서 이런 이야기를 듣기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 공동체적 삶이 회복을 꿈꾸며
흔히 땅을 일컬어 만물의 어머니라고 한다. 우리가 어머니의 몸을 빌어서 태어나듯이, 이 세상 만물은 땅을 모태로 나고 자라고 죽는다. 어머니인 땅, 그곳에 사람들이 뿌리를 내리고 살면서 형성한 것이 바로 마을이다. 땅이 어머니라면, 마을은 어머니의 따뜻한 품 같은 곳이다. 생업을 위해, 혹은 다른 이유로 도시로 이주한 이들이 고향마을을 떠올릴 때 애틋한 마음을 갖는 것도 그곳이 어머니의 품처럼 느껴지기 때문이리라.
전통사회에서 사람들은 마을에서 나서 자라고 대부분의 일상생활을 영위하였다. 그렇기에 마을은 더불어 사는 삶터이자 그 자체로서 하나의 공동체였다. 흔히 도시화와 산업화가 가져온 문제 중 하나로 공동체의 해체를 드는데, 공동체 중에서도 가장 기본이 되는 것이 마을공동체다.
사라진 마을을 대신하여 콘크리트 더미로 지어진 아파트 숲이 늘고 있는 것이 경기도의 현실이다. 이는 다른 지역도 마찬가지다.
이중삼중으로 자물쇠를 채우는 아파트, 그런 아파트가 늘어나다 보니 이웃 사이의 소통은 자연히 차단될 수밖에 없다. 그래서일까. 이웃 간에 정이 점점 메말라 간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여기저기서 터져 나온다. 공동체로서의 마을이 사라졌으니 어쩌면 당연한 결과일 듯싶다.
그러나 마을이 사라진다고 하여 실망하거나 아쉬워만 할 필요는 없다. 아직도 우리 주변에는 농촌, 어촌, 산촌 등으로 불리며, 도시의 소음과 아파트 숲속에서 살아가는 이들에겐 수십 년 전으로 시간여행을 온 것처럼 느끼게 하는 마을이 적지 않게 남아 있다. 또한 다른 한편에서는 과거와 다른 모습의 마을이 조금씩 늘고 있다. 변화에 적극 대처하면서 마을의 소멸을 막고 활로를 모색하는 마을이 있는가 하면, 아름마을, 한우리마을, 햇빛마을, 달빛마을처럼 그 이름도 살가운 마을들이 아파트 숲 속에 생겨나고 있기도 하다.
그리고 그곳에서 공동체적 삶의 회복을 꿈꾸는 주민도 늘고 있다. 이렇게 새로운 모습의 마을에서 희망을 찾자고 하면 단순한 욕심일까?
표준국어대사전에서는 마을의 뜻을 두 가지로 풀이하고 있다. 그 하나는 '주로 시골에서, 여러 집이 모여 사는 곳'이고, 다른 하나는 '이웃에 놀러 다니는 일'이다. 마을이라고 하면 대체로 전자의 의미로 사용되고, 이 글에서도 주로 그런 의미로 사용했다.
그런데 '주로 시골에서'라는 설명이 타당할까?"하고 반문하게 된다. 이 정의에 따른다면, 언젠가는 마을이라는 말이 사라져 버릴지도 모르겠다. 이제는 '주로 시골에서'라는 수사를 떼어 버려야 타당할 듯싶다. 그렇게 한다면 새로운 모습의 마을에서 희망을 찾자는 바람도 단순한 욕심만은 아닐 것이다.
"산과 들 파헤치는 개발삽날 추억도 파묻어 자물쇠 채우는 아파트에도 소통희망 움터"
# 손이아닌 발로쓰는 현장답사 기대찬 첫발경인일보는 '다시 보는 경기산하'와 '길, 그곳으로 가다'를 연재한 바 있다. 그리고 이번 호부터는 주 1회씩 '마을 & 삶'을 연재한다. 산하와 길, 마을을 사람에 비유하면, 아마도 산하는 뼈와 살, 길은 핏줄, 그리고 마을은 심장으로 비유할 수 있겠다. 심장이 멈추면 사람은 죽는다.
이번 시리즈가 마을에 주목하는 까닭은 꺼져가던 심장이 다시 살아나서 생동하듯이 그렇게 생동하는 마을의 모습을 보고자 함이다. 그리고 그 속에는 어느 동네 무슨 아파트에 사는가가 가치척도가 되어버린 지금, 마을이 삶의 터전으로서, 공동체로서 제 역할을 해주기를 기대하는 바람도 깃들어 있다.
경기도의 마을을 찾아가는 여정은 우선 도시개발이 광범위하게 이뤄지고 있는 경기도 남부지역에서부터 시작하여 31개 시군에 소재하는 다양한 유형의 마을을 대상으로 진행된다. 다만, 모든 마을을 다룰 수는 없기에 이 시리즈의 기획방향에 부합하는 유형의 마을들을 선정해서 진행할 예정이다. 이를 위해 여러 분야의 전문가가 필진에 참여해 손이 아니라 철저한 현장 답사를 통해서 발로 쓰는 시리즈를 만들어갈 것이다.
이번 시리즈에는 강진갑(경기문화연구소장, 한국외대 겸임교수), 염상균(역사탐방연구회 문화유적답사 연구위원), 이상열(군포시 시사편찬위원회 상임위원), 조형기(경인일보 편집위원)씨 등 고정 필진과 함께 때론 또 다른 전문가들을 초빙할 계획이다. 이번 시리즈가 독자들에게 마을의 역사와 문화, 그곳을 터전으로 삼고 살아가는 사람들의 삶으로의 여행이 되길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