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하면 이제껏 신사임당만 부각된 게 사실이다. 정녕 '훌륭한 여성'이라고 하면 현모양처 외엔 없을까. 그렇지 않다는 것을 이제 누구라도 안다. 애초에 그런 여성들이 없었던 게 아니라 관심을 가지지 않았을 뿐이라는 것. 예컨대 일제강점기 독립운동을 한 여성들 중에서도 위인 '유관순'뿐 아니라 3·1 만세 운동을 앞장서 선동한 '수원기생'들도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경기도가 추진하고 있는 '경기여성 재조명 사업'이 더욱 빛난다. 역사속에서 철저히 감춰져 있던 여성들이 이 사업을 통해 비로소 '햇빛'을 받고 있는 것이다.



경기도는 우리 나라 역사문화의 중심무대로서 후세에 길이 빛날 여성인물들을 많이 배출했다. 하지만 과거 남녀의 구분이 엄격했던 남성 중심의 문화로 인해 공적 영역에의 참여가 어려웠던 여성들의 삶이 역사 속에서 소외되고 기록화되지 못한 것은 매우 안타까운 일이다.

이러한 의미에서 여성의 역할과 중요성을 인식하고 잊혀진 여성인물을 발굴하여 여성사를 재조명하는 작업은 시대적 소명이자 편협된 우리의 여성관을 회복하는 좋은 기회라고 할 만하다. 경기도는 지방자치단체로서는 전국 최초로 2000년부터 역사적 여성인물 발굴사업을 실시해왔다. 2001년에는 도내에서 출생, 성장 또는 우거생활하였거나 유택이 있는 인물로서 문헌에 많이 실린 인물 또는 지역주민에게 널리 전해져온 인물 등을 선정해 그 동안 수집한 자료를 집대성한 책자 '그대의 맑은 향기 사라지지 않으리'를 편찬하기도 했다.

이는 학술적으로 연구의 불모지라고 할 수 있는 여성사 특히 경기지역 여성사 연구의 활성화에 크게 기여하고 경기지역 여성의 역사적 정체성 확립을 위한 원천자료로 활용되는 등 높은 평가를 받은 바 있다. 경기여성인물을 재조명하는 사업은 지난 2001년부터 매년 집중조명할 인물을 한명씩 선정해 진행돼 왔다. 2001년에는 여주대 주최로 조선 정치사에 큰 족적을 남긴 풍운의 여걸 '명성황후'를 주제로 심포지엄을 개최하고 여성국극 명성황후를 올리기도 했다. 2002년에는 경기도향토사연구협의회 주최로 농촌 계몽에 젊음을 바친 인간 상록수 최용신을 주제로, 2003년에는 안성문화원 주최로 예술혼으로 여성의 잠재성을 일깨운 남사당패의 꼭두쇠 '바우덕이'를 주제로, 2004년에는 경기도향토사연구협의회 주최로 고려 여성 '염경애'를 주제로 재조명해왔다. 이어 2005년에는 정월 나혜석 기념사업회 주최로 우리나라 최초의 여성 서양화가이자 여권운동의 선구자인 '나혜석'을, 2006년에는 경기도향토사연구협의회 주최로 철학을 담은 태교의 소중함을 가르친 참어머니 '사주당 이씨'를, 작년에는 강남대 경기문화연구소 주최로 한국광복군의 당당한 여군 '오희영'을 조명했다.

성과도 많았다. 첫째, 역사 속에서 다양한 여성 인물을 발굴하여 경기도 여성사 연구와 여성정책 수립에 기여하고, 경기도 여성들에게는 자긍심을 고취시켜 주었다. 조사발굴 대상 시기도 고려시대부터 일제시대까지이고, 대상인물도 왕실 인물부터 지식인, 예술가, 독립운동가에 이르기까지 매우 다양하다. 명성황후의 경우 시아버지인 대원군과의 권력 다툼이라는 혹평 속에서 명성황후의 정치적 역할을 제대로 평가하였고, 아들마저 어머니의 존재를 부정하고 싶어한 화가 나혜석을 근대적인 선각자로 재평가하였다. 그리고 대중에 거의 알려지지 않은 인물을 발굴하여 역사적 인물로 자리매김 하였다. 고려여성 염경애와 조선시대 이사주당 등이 그 중 일부이다.

둘째, 여성사적 시각에서 자료를 발굴하여 여성사 연구에 기여하였다. 여성사 관련 자료는 매우 부족하며, 정리된 자료라 할지라도 남성의 관점에서 정리된 사료가 태반이다. 또 여성사 연구의 문제점의 하나가 연구성과와 연구자의 부족이다. 그런데 경기도가 사업을 추진하면서 많은 연구성과를 생산하였고 연구자 층을 두텁게 하였다.

하지만 문제점 역시 존재한다. 지속적으로 재조명 사업이 이뤄지지 않는다는 점이 그 첫째이다. 재조명하는 해가 끝나버리면 후속 세미나조차도 열리지 않는다는 것. 도가 이 사업을 지속적으로 하려면 이미 한 번 다루어진 인물에 대해 지속적으로 학술회의나 혹은 다른 형태의 어떤 사업을 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이 필요할 것이다. 다음으로는 과거의 여성인물들에 대한 현재화 작업도 필요하다. 그것은 한편에서는 지금 이시대의 여성상에 대한 고민이 될 것이고 또 다른 한편에서는 다양한 형태로 도민들과 접촉할 수 있는 영역을 늘리는 일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