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암 땅은 요즘 한창 봄옷으로 갈아입는 중이다. 월출산을 병풍처럼 등진 너른 들판은 벚꽃과 차밭이 어우러져 화려한 봄빛을 내뿜는다. 여기에 분홍빛 벚꽃 봉오리가 터지기 시작하면 헐벗은 월출산 자락은 무지개 색깔을 입는다. 3월 말에 꽃봉오리를 틔워 4월 초에 만개하는 영암 50리 벚꽃은 연분홍 빛깔을 맘껏 뽐낸다.

#봄이 오는 무지갯빛 월출산 자락
영암읍내부터 819번 국도를 따라 왕인박사 유적지를 지나 학산면 독천리까지 장장 20㎞를 지나는 동안 벚꽃이 이어진다. 흔히 '50리 벚꽃길'이라고 부른다. 벚꽃이 만개할 무렵 이 길을 달리면 하얀 꽃비가 우수수 떨어진다. 특히 영암읍에서 독천까지 이르는 6㎞ 구간은 아름드리 벚나무들이 촘촘해 정말 꽃비가 내린다. 영암의 벚꽃이 더 아름답게 느껴지는 것은 월출산 덕분이다.

꽃봉오리를 막 틔우기 시작하는 벚꽃을 뒤로하고 이른 아침에 차밭을 찾았다. 강진, 해남과 가까운 영암은 자연스레 차 문화가 발달했다. 특히 해남 대흥사의 말사인 도갑사에서 월출산 야생차의 맥을 잇고 있다. 덕진면 백룡산 자락 호남다원 차밭에는 야생은 아니지만, 재래종 차나무가 자란다. 월출산 차밭이라고 하면 으레 남쪽 사면에 펼쳐진 강진다원을 떠올리지만, 덕진면 차밭은 한적한 산자락에 자리한 '화장기' 덜한 차밭이다. 보성차밭의 일본 차나무에 비해 재래종은 차나무의 키가 작고 가지는 옆으로 치뻗어 차밭 이랑이 시골 아낙처럼 펑퍼짐하다. 3만5천평 규모의 차밭 중앙에 황톳길이 나 있는데, 사해가 갈라지듯 유난히 도드라져 보인다. 차밭 꼭대기에 서면 멀리 크고 작은 암봉인 월출산 정상과 마주하게 된다. 아침 햇살에 반짝이는 푸른 찻잎과 누런 들판, 월출산의 잿빛 암봉이 어우러져 푸근한 풍경을 연출한다.

월출산에 왔으니 정상에 올라보자. 천황봉(809m)까지가 무리라면 구름다리까지만 가도 좋다. 수석 전시장을 방불케 하는 월출산의 위용을 감상한 후, 벚꽃을 배경으로 열리는 왕인문화축제에 참여해 보자. 도기문화센터에 들러 도자기 한 점 빚어보는 것도 좋다.


#생기 넘치는 구림마을에서 벚꽃도 보고 고택스테이도 즐기고
50리 벚꽃길과 우뚝 솟은 월출산을 빼면 너른 들판의 주인공은 황토다. 물레를 돌리는 도공의 손에는 벌건 황토가 묻어 있다. 국내에서 유일하게 황토를 재료로 그릇을 빚는 영암도기문화센터가 있다. 구림마을은 우리나라 최초로 유약을 입힌 시유 도기의 출토지. 마을에 10여 개의 가마터(사적지 제338호)가 역사교육 현장으로 보존돼 있고, 구림도기를 전시하고 생산하는 도기문화센터(061-470-2566)가 있다. 토속적인 구림마을과는 어울리지 않게 현대적이고 세련된 외양이지만 공방과 실습실, 전시장으로 구성된 내부는 영암의 찬란한 도자문화를 알리는 데 부족함이 없다. 무료 도자기 제작 체험이 가능하고, 구림도기 구매도 가능하다.

구림리 마을 자체도 황톳빛이다. 마을 한가운데 자리한 왕인박사와 도선국사가 태어났다는 국사암 가는 길은 정감 어린 황토 담벼락이 양옆으로 도열하고 있다. 수백 년 묵은 버드나무 아래서 봄볕을 맞고 있는 황토 흙담이 보는 이의 마음을 환하게 한다. 또한 국사암 주변의 100여 곳이 넘는 민박집 중 20여 곳은 흙과 나무로 지은 전통 가옥이다. 구림은 호남의 오래된 양반 마을. 그동안 양반집 체면에 민박을 열지 않았지만 새로운 체험거리로 고택스테이가 지금은 인기다.

벚꽃이 흩날리는 풍경을 배경으로 전남 영암군은 4월5~8일 왕인공원에서 '2008 영암왕인문화축제'를 개최한다. '왕인 상징 조형물 천인 천자문' 등을 특별 행사로 마련할 계획이다. 또 2천200년의 역사를 간직한 유서 깊은 구림마을 일원에서는 '2천200년 역사마을 구림 스테이', '구림마을 전통 문화 체험존', '왕인 도일 문화체험', '상대포 뗏목 타기' 등 전통 문화체험 행사가 열린다. 문의는 영암군청 문화관광과 061-470-2350

여행수첩/
■ 가는 길=영암은 호남고속도로 광산 IC에서 빠져나와 나주를 경유해 13번 국도를 타는 게 가장 빠른 길. 4시간 정도 걸린다. 천안~논산간 고속도로를 탈 경우 30분 정도 단축된다. 서해안고속도로를 탈 경우 목포 IC에서 빠져 2번 국도를 타고 가다 독천과 영암읍을 잇는 819번 지방도를 탄다. 목포에서 들어가면 819번 '50리 벚꽃길'을 만난다.

■ 맛집=영암엔 해남과 강진 못지않게 유명 음식이 많다. 제일 유명한 것이 갈낙탕. '소가 쓰러지면 산낙지를 먹여라'라는 말에서 알 수 있듯, 갈비와 낙지가 만나 환상의 궁합을 자랑한다(청하식당 061-473-6993). 두 번째는 기름진 갯벌이 만들어낸 천혜의 산물 짱뚱어탕. 아쉽게도 영암은 이제 갯벌이 사라져 무안과 신안 등지에서 사들여온다. 짱뚱어(망둥어)를 뼈째 갈아 우거지된장국으로 끊여낸다. 개운한 맛이 일품(중원식당 061-473-6700).

■ 잠자리=영암은 숙박시설이 많지 않은 곳이다. 월출산온천관광호텔과 영암 읍내에 있는 모텔(여관), 월출산 인근의 민박 등이 전부. 왕인문화축제 때는 방 구하기가 쉽지 않으므로 예약할 필요가 있다. 도기문화센터가 자리한 구림리 민박이 좋다. 황토와 흙벽이 어우러진 건강한 민박을 체험할 수 있다(대동계사 062-472-0174). 좀더 편안한 여행을 하고 싶다면 월출산온천호텔(061-472-6311)이 좋다. 도갑사 바로 옆에 있는 민박집 도갑사 가는길(061-471-5123)도 한적하다.

여행tip/
■ 영암의 별미 갈낙탕 맛보세요!
한우와 낙지로 만든 갈낙탕은 영암의 별미. 동락식당(061-473-2892)은 낙지로 소문난 맛집이다. 8시간 동안 우려낸 쇠갈비 국물에 산낙지를 넣어 살짝 끓여내 맛이 시원하면서도 깊다. 집 주인이 무안 갯벌에서 직접 가져온 낙지를 즉석에서 요리해 맛이 신선한 것도 특징. 살아 있는 세발낙지를 젓가락에 감아 양념해 살짝 구워서 내놓은 낙지구이도 연하게 씹히는 맛이 일품이다. 창젓(전어), 토하젓(민물새우), 파래무침 등 남도 특유의 젓갈과 반찬도 푸짐하게 나온다. 갈낙탕 1만2천원, 연포탕 1만원, 낙지구이(개당) 3천5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