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일 정부는 국무회의를 열어 '성폭력 범죄의 처벌 및 피해자 보호법'을 개정하겠다고 발표했습니다. 13세 미만의 아동을 납치·유인해 성폭행한 뒤 살해하는 반인륜적 범죄에 대해 사형이나 무기징역을 선고토록 법 조문에 못박겠다는 겁니다. 살인하지 않더라도 성폭행범에게는 집행유예가 불가능하도록 법정형을 7년 이상으로 강화한다고 합니다. 성범죄에 대해서는 인정을 베풀지 않겠다는 거지요. 뒷북행정이니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형국이니 비판도 많지만, 국민 정서는 법 개정에 동의하는듯 합니다. 사형제도를 반대하는 시민단체들마저 잠잠한 것도, 잇단 아동 성폭행 사건으로 인한 우리 사회의 트라우마가 매우 심각하다는 사실을 알고 있기에 그럴 겁니다.

좋습니다. 예비 성범죄자들의 준동을 막을 수만 있다면 뒷북도 치고 외양간도 고쳐야 합니다. 법이 물렁하면 칼날같이 벼리고, 국민 인권을 위해 성폭행범의 인권을 유보할 수 있다고 봅니다. 또 아이들이 안전할 수만 있다면 전국을 CCTV로 도배한들 어떻겠습니까. CCTV가 로보캅 아닙니까. 이참에 아예 대통령이 경찰청장을 겸직하는 것도 좋겠습니다. 불호령 한마디에 제꺽 범인을 잡아들이는 눈부신 우리 경찰의 활약상, 통쾌하지 않았습니까.

그런데요…. 개정 법안을 '혜진·예슬법'으로 작명하겠다는 법무부의 발상에는 선뜻 동의하기 어렵습니다. 개정 법안의 홍보 효과를 높이기 위해 법 앞에 이름을 붙이겠다는 것인데 두가지 이유에서 불가합니다. 첫째는 '혜진·예슬법'으로 성범죄를 근절할 수 있느냐는 겁니다. 혜진이, 예슬이 사건보다 더욱 악독한 범죄가 발생할 수도 있고, 앞으로도 성범죄는 끊임없이 발생할 것이 확실합니다. 그때마다 희생자들의 이름을 붙여 더욱 강력한 처벌법을 만들어야 할 겁니다. 오히려 혜진이, 예슬이의 희생을 초라하게 할 수 있습니다. 둘째는 사형제도 찬반 논란의 중심에 '혜진·예슬법'이 거론될 가능성입니다. 건조하고 소모적인 사회적 논란에 무참히 희생된 혜진이, 예슬이 이름이 오르내리는 일이 영 불편할 것 같습니다.

혜진이와 예슬이의 비극은 한국의 모든 부모 마음에 각인됐습니다. 굳이 법의 이름으로 남기지 않아도 혜진이, 예슬이는 오래 기억될 겁니다. /경인플러스 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