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 중구가 12일 우리나라 첫 서구식 공원으로 조성된 자유공원에서 '만국공원 축제'를 연다. 일제 강점기를 거쳐 한국전쟁, 미국식 근대화로 귀결되는 근대 질곡의 역사가 고스란히 담긴 만국공원에서 개항장의 당시 문화예술과 현재 관광자원을 연계시킨다는 취지다. 체험·전시, 콘서트 등 다양한 프로그램은 지역 주민들의 문화갈증을 풀어주는 동시에 신포시장, 차이나타운 등 침체된 상권에 외부 소비자를 유치함으로써 구도심의 경제 활성화에도 기여할 전망이다.

인천 중구 응봉산(鷹鳳山)에 위치한 자유공원. 산 일대를 일컫는 공원은 1897년 만들어진 서울의 파고다공원보다 9년 앞선다. 고종 20년, 1888년 11월 미·러·일·청국이 공동성명을 내고 각국공원을 짓기로 한다. '각국'은 단순하게 여러 국가들을 뜻한다. 관리·운영을 외국인 거류민단이 맡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시민들은 만국공원(萬國公園)으로 불렀다. 세계의 모든 나라를 의미하는 '만국'은 주권국가를 지향하는 대한제국의 의지가 담겼다.

그러나 점차 일본의 세력이 커지면서 1914년 지계제도(地契制度) 폐지와 함께 서공원으로 개칭됐다. 현 인천여자상업고 자리의 신사(神社)를 앞서 동공원이라 부른데 따른 것이다. 이후 1945년 광복의 기쁨과 함께 만국공원으로 본래 이름을 되찾았다. 지금의 자유공원은 1957년 10월 3일 개천절때 부터다. 인천상륙작전을 지휘한 전쟁영웅 맥아더 장군의 동상이 이곳 정상에 세워진 시기다.

본 행사의 막은 12일 오후 6시부터 열리지만 축제 분위기는 종일 계속된다. 공원 일대에 마련된 전시회가 대표적이다. 관내 문화를 한눈에 볼 수 있는 '백년의 기억' 사진전을 비롯해 지역예술인이 공동 참여한 시화전, 설치미술 프로젝트 등으로 꾸며졌다. 여기에 각종 체험행사의 즐길거리도 빼놓을 수 없다. 개항시기 운영된 인력거를 직접 타보고 페이스페인팅, 거리의 마술, 코스프레 포토존도 경험할 수 있다.

오후 1시30분엔 한중문화관 개관 3주년을 맞아 야외 퍼레이드를 준비했다. 무대를 온통 붉은 빛으로 수놓는 용춤은 실제 춤을 추는듯해 보는 이들의 어깨가 절로 들썩인다. 사자춤과 풍물판굿으로 분위기를 한층 돋우고 '자장면 먹기' 이벤트로 흐름을 이어간다. 식전 1부 프로그램으로 영국 백파이프 연주, 미국 민속댄스, 중국 변검, 러시아 전통무용 등 해외공연이 열린다.

오후 6시, 공식 개회선언과 동시에 오케스트라의 웅장한 현악연주와 가곡이 울려 퍼진다. 곧장 바통은 에메랄드 캐슬, BMK, 바다 등 인기 가수들이 연출하는 수준급 콘서트로 전달된다. 오후 9시 폐회 선언에 앞서 형형색색의 축포가 하늘 높이 쏘아 올려지며 축제의 대미를 장식한다.

아쉬움이 남는다면 자유공원과 그 주변의 볼거리·먹거리로 눈을 돌려보자. 이맘때면 공원으로 오르는 길은 벚꽃이 만발한다. 인천관광공사가 최근 4월의 여행지로 선정한 바 있다. 1982년 한·미 수호통상 조약을 맺은 지 100년을 맞아서 세운 기념탑과 같은 시기에 준공된 맥아더 동상은 교육적으로 유익하다. 공원 정상에 올라 인천항과 멀리 월미도를 바라보는 운치는 독특하다.

한국문화관광연구원 자료에서 이곳에는 과거 인천각, 청광각(淸光閣) 등의 건조물이 들어서 있었으나 6·25전쟁 때 없어졌다. 충혼탑 및 석정루(石汀樓), 연오정(然吾亭)이 오랜 세월을 지켰고, 학익고인돌을 옮겨서 보존 중이다. 공원 내에는 소규모 동물원과 팔각정, 연오정 등 쉼터를 구비해 평소 주민들의 휴식공간으로도 이용된다.

중구는 우리나라 근대 건축물 박물관이라고 해도 손색이 없다. 구청 주위로 도로변에 이국풍의 건물이 즐비하다. 걸어서 개항문화를 접한다. 한국 자장면의 발상지로 옛 공화춘이 위치했던 차이나타운과 옛 일본 제58·18은행, 화교 중산학교 등을 만난다. 공원 남쪽으로 내려가면 인천의 명동으로 불리는 신포시장으로 연결된다. 원조 신포만두와 지역의 대표 먹거리로 꼽히는 매콤달콤한 닭강정은 쉽게 발걸음을 지나칠 수 없다.

구 관계자는 "개항장의 역사 및 문화예술과 인근 관광자원, 지역상권을 한데 묶은 풍성한 잔치마당에 광범위한 시민참여를 유도해 축제를 정례화시키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