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태안 3지구 전경. 화성시 태안읍 화산동의 일부가 태안지구 택지개발로 지정되어 개발의 몸살을 앓고 있다. 융건릉과 용주사로 이어지는 이곳은 정조대왕으로부터 내려오는 효의 표상이기도 해 개발 계획의 수립부터 각종 현안에 부딪힌 채 난관에 봉착되어 있다. /조형기편집위원·hyungphoto@naver.com


# 태안3지구 마을은 사라지고

오랜만에 화성시 송산동 용주사와 융건릉을 찾았다. 용주사에서 융건릉으로 가는 길은 조선시대 정조가 아버지 사도세자의 묘 융릉을 찾을 때 지나다닌 '효행길'이다.

원래 용주사를 지나 길 양쪽으로 오래된 나무가 서 있는 효행길에 들어서면 오른쪽으로 15가구 남짓한 마을이 있었다. 마을 입구를 지나면 융건릉까지 이어지는 나지막한 구릉이 있어 제법 볼만한 경관이 펼쳐졌다. 그런데 다시 찾은 효행길은 답답했다. 길 양쪽으로 어른 키를 훨씬 넘는 공사 가림막이 쭉 세워져 있어 구릉이 전혀 보이지 않았던 것이다. 그것은 바로 대단위 택지를 개발하는 태안3지구의 공사 가림막이었다.

태안 3지구 전체를 한 장의 사진에 담기 위해서 인근 고층 아파트 지붕에 올랐다. 썩 반기지않는 아파트관리소 직원을 설득해서 올라 간 14층 아파트 지붕에는 바람이 꽤 불었다. 45도 경사의 기와 지붕에서 내려다 본 아파트 주차장은 까마득해 보여서 약간 겁이 나기도 했다. 그런데 함께한 편집위원은 곡예를 하듯이 굴뚝에 의지해 사진을 잘도 찍는다.

아파트 지붕에서 건너다 본 융건릉과 용주사 주변의 택지개발지구는 황량하기만 했다. 택지개발공사는 기초정리 공사가 진행된 후 중단되었기에 녹지로 덮여있던 구릉은 파헤쳐져 황토만 누렇게 드러나 있었다. 물론 예전에 있던 마을은 이미 사라지고 없었다.



# 드라마 이산과 정조의 효

▲ 효행길. 용주사에서 융건릉에 이르는 옛길로 지금은 개발의 펜스가 둘러 싸여 있다.

요즘 드라마 '이산'이 인기리에 방영중이다. 지금은 정조의 집권 초기에 일어난 일들이 방영되고 있다. 적대적인 노론 세력에 둘러싸인 정조가 왕권을 안정적으로 행사하고, 개혁정책을 실시하기 위한 기초를 다지는 시기가 배경이다. 조금 더 시간이 지나면 정조가 불우하게 돌아가신 아버지 사도세자의 묘를 천하의 명당 자리인 인근 화산동으로 옮기는 내용이 방영될 것이다.

사도세자의 능은 처음에는 현륭원으로 불렸으나 뒤에 융릉으로 격상되었다. 정조는 1790년 용주사를 중창하여 사도세자의 명복을 비는 원찰로 삼는다. 효심이 지극한 정조가 왕권이 안정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한 조치이다. 그는 1798년에는 제방인 '만년제' 개축공사를 단행한다. 인근 민전과 둔전에 농업용수를 안정적으로 공급하고 현륭원과 용주사의 보수에 필요한 재원을 안정적으로 확보하기 위해서이다.


▲ 용주사 오층탑. 용주사는 신라 문성왕(854)때 길양사로 창건된 역사 깊은 도량으로 정조대왕에 의해 부모은중경이 모셔진 효행의 본찰로 오늘에 이르고 있다.
# 조선왕조 그 자체인 역사적 공간 화산동

화산동은 조선시대 수원부 읍치가 있었던 지역이고, 융건릉, 용주사, 만년제를 품고 있다. 화산동은 오늘날에도 조선시대 역사가 살아숨쉬는 공간이다. 더욱이 융건릉과 용주사 사이를 이어주는 구릉은 정조의 능인 건릉의 재실이 있던 곳이고, 융건릉의 숲과 이어져 있어 융건릉의 경내라 해도 과언이 아닌 곳이다. 이러한 역사를 간직한 구릉지를 포함한 화산동 일부 지역이 1998년 태안3지구 택지개발지구로 지정됐다. 이어 토지 수용이 이루어졌다.

시민단체와 문화재 전문가, 인근에 위치한 용주사까지 태안3지구를 개발하는 것은 심각한 문화재 훼손행위라며 개발에 반대를 했다. 결국 공사가 중단됐다. 그리고 이 후에 융건릉과 용주사 사이의 구릉에 효를 주제로 하는 박물관이 건립되고 주위를 역사공원으로 조성하려는 계획이 한때 추진된 바 있다. 그러나 현재는 이 일대가 효를 주제로 하는 역사 공원이 조성될지, 아니면 택지 공사가 재개될지 소문만 무성할 뿐이다.


# 다시 고향으로 돌아가기를 기다리는 주민들

▲ 보상을 받고 주변으로 이주한 주민들이 생업을 잃은 채 철거를 앞둔 경로당을 찾아 무료한 세월을 보내고 있다.

화산동 주민들은 본인들의 의지와 상관없이 이리저리 옮겨다닐 운명을 지녔나보다. 1789년 정조가 사도세자 능을 화산으로 옮길 때 이 곳에 살던 주민들은 팔달산 아래, 지금의 화성으로 집단 이주했다. 1998년에 화산동 일부가 태안3지구 택지개발지구로 지정되고 토지 수용이 시작되면서 태안3지구에 속한 주민들은 살던 곳을 떠나게 됐다.

이 곳을 떠난 주민들의 삶은 여러 가지 모습을 띠고 있다. 마을회관에서 만난 최정권(77)씨는 "이곳 주민들은 대부분 평생 농사만 짓거나 목축업을 하면서 한 곳에서만 오래 살았던 사람들이어서 고향을 떠나 먼 곳으로 이주하기가 쉽지 않았다"며 "화산동과 주변의 아파트에 입주한 이들이 상대적으로 많은 편이다"고 말했다. 또 "주민들이 새로운 생활에 적응을 하고 있으나 노인들은 새로운 일을 시작하기가 어려워 마을회관에서 시간을 보내는 이들이 많다"고 덧붙였다.

주민 중 일부는 태안3지구 개발이 완료되면 이주자 단지와 상가를 분양받기로 했기 때문에 여러 곳에 흩어져 살며 개발이 완료되기를 기다리고 있다. 20여년간 남의 땅을 빌려 목장을 운영한 한 주민은 얼마 되지않은 보상금으로는 다른 지역에서 목장을 하기가 어려워 택지개발이 마무리되기만을 기다리고 있다. 그런데 현재 공사가 중단되어 매우 답답해하고 있다.

태안3지구는 지금 표류하고 있다. 국보급 문화재인 융건릉과 용주사 사이의 구릉은 보존되어야 할 역사적 공간인데 택지로 개발하려 하였으니, 첫 단추를 잘못 끼운 셈이다. 그러나 법적으로 필요한 행정절차를 거친 주택공사 입장에선 지금의 공사 중단 상태가 매우 난감할 것이다.

태안3지구에서 벌어지는 일은 문화재 보존과 개발이 조화를 이루지 못해 발생한 전형적인 사례이다. 이로 인해 애매한 주민들만 고향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피해를 입고 있다.


■ 문화재 보존·개발의 조화 해법은

현상변경 허가지침 엄격하게, 비상근 문화재위원 상근화를…

현재 태안3지구 택지개발공사는 중단된 상태다. 과연 문화재 보존과 개발을 둘러싼 첨예한 대립을 슬기롭게 조화시킬 방안은 없는가.

우리나라는 택지, 도로, 산업단지, 신도시 등 개발 수요가 많아 전국 곳곳이 공사중이다. 2006년 전국에서 2천682건의 문화재 조사가 이루어졌는데 조사 면적이 650㎢에 달한다. 이 숫자는 2006년에 2천건이 넘는 개발행위가 전국에서 추진되고 있었음을 의미한다. 2천건이 넘는 개발 사업중 하나인 태안3지구에서 일어난 일이 다른 지역에서도 얼마든지 발생할 수 있다는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문화재 주변지역을 개발하려면 문화재위원회로부터 현상변경 허가를 받아야 한다. 중앙 및 광역자치단체 단위에 조직된 문화재 위원회가 독립적으로 운영되며 개별적으로 심의를 하고 있다. 그런데 문제는 동일하거나 비슷한 사안이 문화재 위원회에 따라 다른 결정이 내려진다는데 있다.

▲ 태안지구 문화재 조사현장.
이같은 일이 벌어지는 원인은 문화재청의 현상변경 허가 지침이 너무 포괄적이고, 심의를 하는 위원들이 문화재 전문가이기는 하나 비상근이어서 심의에 전념할 수 없다는데 있다. 법대 교수가 강의를 하다 1달에 한번씩 재판을 하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이러다보니 심의 결과가 예측이 되지 않아 많은 어려움이 발생하고, 전문가들조차도 승복하지 못하는 결과를 낳고 있는 것이다.

이같은 혼선으로 인해 문화재가 엄격하게 보존되지 못
▲ 만년제. 정조22년 농업 용수의 안정적 보급을 위해 조성된 저수지였으나 방치돼 있다.
하고 국가의 경제적 손실도 적지 않다. 그렇다면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우선 국민적 합의에 의한 문화재 보존과 개발 원칙을 정하고, 이 원칙에 따라 구체적이고 엄격한 지침을 마련해야 한다. 또 문화재와 법률 지식을 갖춘 전문가로 구성된 상근 문화재 심의위원제도를 두고 심의를 전담케 해야 한다. 지금의 비상근 문화재위원은 재판정에서의 배심원 역할과 같은 일을 하면 될 것이다.

이와함께 모든 문화재의 현상변경 1차 심의는 시·도 문화재위원회에서 하고, 문화재청 문화재위원회는 상급

심 역할을 하도록 한다. 상급심에서 이루어진 심의 사례를 법원 판례처럼 모든 문화재 심의시 적용한다면, 비슷한 사안에 대해 다른 심의 결과가 나올 수 없을 것이다. 문화재 심의 결과는 권위를 지닌 것이고, 문화재 주변 지역의 현상변경 심의결과도 예측 가능하기에 불필요한 경제적 손실도 줄일 수 있을 것이다.
/ 강진갑 경기문화연구소장 kanghis@unitel.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