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정희 대통령 집권 당시 대통령 경호실에서 작전차장보로 근무했던 전두환 전 대통령(오른쪽 두 번째).
지난 6일 대통령실 경호처(옛 대통령 경호실)는 중대 결심을 했다. 2004년부터 2천600억원 예산 규모로 추진 중이던 '경호안전교육원' 건립 사업을 포기한 것이다. 상반기로 예정됐던 신입 직원 공채도 없던 일이 됐다.

또한 대통령직 인수위원회에서는 독립 조직이던 대통령 경호실을 신설 예정의 대통령실 산하 경호처로 직제를 낮춘다는 개편안을 내놨고, 한나라당 안상수 원내대표 등은 이 같은 내용을 담은 '대통령 경호실법 일부 개정 법률안'을 발의했다. 결국 이명박 대통령 취임과 함께 2월 29일 정부조직법 개정 및 '대통령 등의 경호에 관한 법률' 통과로 위상 추락은 현실이 됐다.

대통령 경호실은 그간 40여년간 '권부의 핵심'으로 자리해 왔다. 일명 '나는 새도 떨어뜨린다'는 권세를 자랑했던 경호실이 경호처로 격하되고, 부처 사업에도 잇따라 제동이 걸리는 근본 이유는 과연 무엇일까?

■ 태생적 한계
▲ 1974년 8월 15일 서울 장충동 국립극장에서 문세광에 의해 육영수 여사가 피살될 당시 박상범 경호원이 단상 앞을 막아서고 있다.
경호처는 1963년 12월 17일 창설된 대통령 경호실에서 출발한다. 일부에서는 '청와대 경호실(처)'이라 표현하기도 하지만 공식 명칭은 '대통령실 경호처'와 '대통령 경호실'이다. 1961년 5·16 군사쿠데타와 함께 편성된 국가재건최고회의의장 경호대가 박종규 소령 지휘 아래 박정희 소장을 경호하기 시작했고, 이후 중앙정보부 경호대로 흡수됐다 박정희 대통령 취임날에 대통령 경호실로 출범했다.

제3공화국 이전까지 대통령·국무총리 등의 경호 업무는 전적으로 경찰의 몫이었다. 이에 따라 이승만 대통령 때는 경무대 경찰서가, 2공화국에선 서울시 경찰국 경비과 소속 청와대 경찰관 파견대에서 경호를 담당했다. 그러나 1공화국 당시 경무대 경찰서장이었던 곽영주 경무관이 군 정보 차단 등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르면서 군의 반발을 샀고, 이것이 군부로 하여금 경찰 경호시대에 종지부를 찍게 하는 결정적 빌미가 됐다.

■ 권부의 상징
초대 홍종철 (육사 8기)실장에 이어 2대 실장에 오른 박종규 경호실장은 '대통령 신변 보호'란 이유로 10년간 말 그대로 대단한 권력을 휘두른다. 박 대통령에 의해 하사관에서 장교로 임관했던 그는 '피스톨 박'이란 별명답게 맹목적 충성을 펼쳤다. 하지만 1974년 육영수 여사 경호 실패에 따라 차지철 경호실장 체제로 바뀐 경호실은 더욱 막강한 파워를 갖는다. '대통령 경호위원회'라는 특별기구를 설치, 국방·내무장관, 검찰총장 등도 손쉽게 움직였고, 청와대 안에는 탱크와 장갑차, 전투헬기까지 갖춘 경호부대도 보유, 직접 지휘하고 사열했다.

1979년 10·26 사태로 잠시 힘이 빠진 경호실은 그러나 전두환 대통령 취임과 함께 다시 힘을 얻는다. 스스로가 경호실 작전차장보를 지낸 바 있는 전 대통령은 1983년 아웅산 사태 이후 경호실을 적극 활용했다. 경호실은 경호 업무 외 비자금 관리 등 전두환·노태우 전 대통령의 특명에 충실했다. 이러한 막강 경호실 체제는 1993년 문민정부 출범으로 서서히 그 권위가 사그라들기 시작했다.

■ 여전한 문제점
김영삼 대통령 취임과 함께 경호실장에 임명된 박상범 전 국가보훈처장은 최초 내부 승진이라는 점에서 큰 주목을 받았다. 육 여사 피살, 12·12사태, 아웅산 사태 등 3번의 지옥에서 모두 살아남아 '불사조'란 별명을 얻었던 그도 그러나 결국 민주계 쪽의 경호원 특채 압력에 저항하다 단명되는 등 정치적 외풍을 겪어야만 했다. 이후 경호실장들은 다시 전직 장성들로 임명됐다.

특히 2000년 6·15 남북정상회담은 경호실에 일대 충격을 주었다. 평양에서 김대중 대통령이 경호실 직원들을 물리친 채 김정일 국방위원장 차에 동승, 장시간 경호동선에서 사라졌기 때문이다. 이에 반발한 일부 직원들이 경호실에서 나가는 일까지 벌어졌다. 이러한 사정을 잘 알았던 노무현 전 대통령은 취임과 함께 경호실 개혁 작업에 착수했다. 최초로 경찰 출신인 김세옥 전 경찰청장을 경호실장에 기용했고, 경호처 격하로 마지막 경호실장이 된 염상국 전 실장 역시 내부 승진 케이스였다. 이어 경찰이 경호의 중심을 맡는 경호실 선진화 방안을 추진했지만 경호실에서 자체적으로 탈권위 작업에 들어가면서 이내 흐지부지되고 말았다.

 
 
▲ 미국 S.S(Secret Service)의 부시 대통령 및 로라 여사 도보 근접경호 모습. S.S 요원들은 미국 국토안보부 소속으로 수사권을 가진 수사관(Agent)들이다.
■ "선진국에선 경찰이"

하지만 군사정권 당시 좀체 드러나지 않았던 경호실의 문제는 세월이 바뀌면서 점점 표면에 드러나고 있다. 2003~2007년간 경호실 내 징계 21건 중 절반 이상인 12건이 음주운전, 더구나 취소는 무려 8건이었던 사실이 지난해 11월 밝혀지기도 했으며, 전체 직원수 525명에 불과한 경호실에서 일명 '묻지마 예산'으로 불리는 특수활동비만 2006년에 123억원을 사용, 국방부와 경찰청, 법무부에 이어 4번째 규모를 기록하기도 했다.

이러한 사정들이 과거 군사정권 시절의 권위주의 행태와 맞물리면서 결국 '경호실 힘 빼기' 수순에 들어갈 수밖에 없다는 분석이다.

현행 경호처 체제를 장기적으로 경찰청 내부로 이관하는 방안을 연구해 온 동국대 경찰행정학과 임준태 교수는 "영국과 일본, 프랑스, 독일 등 선진국들은 모두 경찰이 국가원수 경호를 담당하며, 미국의 S.S(Secret Service) 역시 국토안보부 산하 조직으로, 사실상의 연방경찰이 경호하는 것으로 봐야 한다"면서 "현재로선 경호처 격하에 그쳤지만 경찰 고유사무 환원 측면에서 선진국 사례를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